brunch

책장을 뒤집다가 책을 생각하다

by 캐리소



책장을 뒤집으면

우주의 먼지도 함께 뒤집힌다


출간의 사연을 품은

교훈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땅으로 내려앉을 때

읽은 자는 다른 챕터의 문을 열고

어떤 형태 속으로 배어든다


고독하지 않은 존재는 아무도 없으므로

책의 고독도 저 혼자 누워 있다


여기저기 버려진다 해도 종내엔

최후의 사람에게 발각되어

고독한 이유를 핑계 댈 것이다


현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의 향방

색에 그림자를 칠한 것처럼

덧입혀지는 명분


그림자의 윤곽을 드리우면

더 깊은 표정이 풍성하게 피어나니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될 이유와

존재함으로 완전한 존재의 발돋움


별 것 아닌 이야기들 오고 가는 오후의 골목처럼

햇살이 지나가며 부드럽게 쓰다듬으면

간섭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날개를 두드리는 빗방울이 거미줄 위를 구를 수 있게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24화묵직하고 따뜻하고 커다란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