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나의 취향
나는 행복하고 싶었다.
지금에서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내 지나온 삶들이 불행한 삶의 연속이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난, 가족의 불화, 믿었던 사람들로부터의 상처... 지나온 삶이 우울하고 불행했으므로 앞으로 삶에서 나는 행복하고 싶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늘 내게 어린 시절이 힘들었으니 앞으로는 행복하기만 하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강박처럼 어딘가에 있을 행복을 찾아다녔다.
퇴사 후에 몇 년씩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을 보니 멋지고 매일이 행복해 보여서 그렇게 되고싶었다. 현실적인 이유들로 이루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삶이 불행하다고 여겼다. 한 번은 미친 듯이 가슴이 뛰는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살라기에 그런 삶을 사람들의 이야기 부지런히 읽고 들었다. 그러면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내 삶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인가를 소비하고 SNS이 자랑할만한 곳에 가서 여행하고 즐기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막상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어려움과 내 삶을 비교했을 땐 어땠을까? 솔직하게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기쁘거나 내가 더 행복하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행복, 대체 그게 뭘까?
불행의 반대말이 행복이긴 한 걸까?
만약에 건강이 나빠지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거나, 인간관계에서의 문제와 같은 일이 불행이라면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 행복감에 어쩔 줄 몰라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떤 감정의 변화도 없다가, 반대로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나를 뒤덮기도 한다. 불행이라 여겨지는 요소들을 없애보려 애썼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런 글을 읽게 되었다.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 행복의 기원, 서은국
책 속에서 저자는 행복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금세 적응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순간 속에서 행복감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고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는 말이 퍽 위로가 된다. 더 많이 가지고 성과를 내어 남보다 앞서나가거나 부러움이 대상이 되도록 노력해야만 행복의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내 마음속에서 느끼는 좋다. 즐겁다.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좋음의 순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행복한 일이 매일 있었는데, 너무 사소하고 시시하게 생각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 어렵다는 운동화 신고 밖에 나가기를 해냈다는 뿌듯함. 비 오듯 흘린 땀을 씻어내며 느끼는 개운함. 비가 개인 맑은 하늘을 보는 즐거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얼음 가득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다정히 나의 안부를 묻는 내 사람...
이런 기쁨의 순간들이 더 자주 마주하는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행복하기를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더 자주 눈치채기를..
그리고 나는 불행했던 삶을 살았던 불쌍한 내가 아니라 오늘을 잘 사내는 기특한 사람으로 나를 바라봐 주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