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예순여덟, 나는 블로거가 되기로 했다

by 늦봄

"어머니, 이제 취업 안 하세요?"


마흔다섯 아들의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또다시 떨어진 면접 결과 문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그저 핸드폰 화면만 응시할 뿐이었다.

예순여덟의 나이에 다시 이력서를 쓴다는 것.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무너진 일상


2년 전, 정년퇴직을 했다. 삼십 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떠나는 날, 동료들이 준비해준 작은 송별회에서 나는 웃었다. "이제 좀 쉬어야죠."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정말 그럴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퇴직금은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고,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했다. 손자 용돈도 제대로 못 쥐어주는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이력서를 넣었다. 아파트 경비, 주차 관리, 급식 보조. 그러나 돌아오는 건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정중한 거절뿐이었다. 때로는 연락조차 없었다.


'나는 이제 필요 없는 사람인가.'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었다. 깊게 패인 주름, 힘없이 처진 어깨.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렇게 작아진 것이.


우연한 만남


그날도 여느 때처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채용 사이트를 뒤적이다 지쳐서, 무심코 유튜브를 켰다. 알고리즘이 띄워준 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50대 주부, 블로그로 월 300만 원 버는 방법"


처음엔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것도 다 사기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려다가, 문득 멈췄다. 영상 속 여자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평범한 얼굴, 소박한 배경. 사기꾼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한 번만 볼까.'


재생 버튼을 눌렀다. 15분짜리 영상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남편의 사업 실패, 생계를 위해 시작한 블로그, 처음 받은 수익 3천 원에 울었던 이야기까지.

영상이 끝났을 때, 내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두려움이라는 벽


'나도... 할 수 있을까?'

가슴 한구석에서 작은 불씨가 살아났다. 하지만 곧 현실적인 생각들이 물을 끼얹었다.


'컴퓨터도 잘 못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닌데.'

'젊은 사람들도 힘들다는데, 내 나이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이력서를 내도 떨어지고, 나이 때문에 거절당하는 현실. 그렇다면 나이를 보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블로그는 화면 너머의 독자들이 내 얼굴을 보지 않는다. 중요한 건 글의 내용, 진심이라고 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결심했다.


서툰 첫걸음


"티스토리... 가입..."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검색창에 입력했다. 노안 때문에 화면의 글씨가 작게 보여, 돋보기를 꺼내 썼다.

회원가입 버튼을 찾는 데만 10분이 걸렸다. 이메일 인증, 닉네임 설정. 하나하나가 낯설고 어려웠다. 손자에게 전화해서 물어볼까 하다가, 괜히 창피해서 유튜브 강의를 다시 찾아봤다.


두 시간을 씨름한 끝에, 드디어 내 블로그가 생겼다.

허름한 빈 공간. 그저 하얀 화면만 있는 블로그였지만,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이게 내 공간이라니. 예순여덟 생에 처음으로 가진 '나만의 온라인 공간.'


떨리는 첫 글


첫 글의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쓰기로 했다.


"예순여덟 할머니, 블로그를 시작하다"


손이 떨렸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는 느렸지만, 마음은 급했다.


'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썼다. 맞춤법이 맞는지, 문장이 이상하지 않은지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한 시간 반 만에 완성된 글. 겨우 500자 정도였지만, 내게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발행 버튼.

'누가 볼까? 욕하면 어떡하지? 너무 형편없으면?'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우스 커서가 발행 버튼 위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래도, 시작은 해야지.'

눈을 질끈 감고, 클릭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발행되었습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기쁨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작지만 확실한 시작


그날 밤, 블로그 통계를 열어봤다.


방문자 수: 2명

조회수: 3회

두 명. 아마도 실수로 들어왔다가 바로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웃음이 났다.


'누군가 내 글을 봤다.'


예순여덟 해를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내가 쓴 글이 온라인이라는 공간에 떠 있고, 누군가 그걸 읽었다는 사실.


아들에게 말했다.

"나 오늘부터 블로거야."

"네? 블로거요?"

아들은 어리둥절한 표情이었지만, 나는 진지했다.


"응. 취업은 안 되니까, 나만의 일을 만들기로 했어."

아들은 잠시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힘드시면 말씀하세요."

걱정하는 마음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예순여덟의 출발선


그렇게 나는 예순여덟에 블로거가 되었다.

세상은 젊은이들의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나만의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았다. 서툴러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


매일 아침 일어나서 블로그를 켜는 게 일상이 되었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발행 버튼을 누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한 달은 방문자가 하루 평균 다섯 명도 안 됐다. 수익은커녕 광고도 달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것을.

그리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 이야기: "1,200원에 울고, 5만 원에 웃던 날들"에서 계속됩니다.*

작가의 이전글2화: 1,200원에 울고, 5만 원에 웃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