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명랑한 수영

텃새를 마주하며

by 노래

수영수업을 마치면 아이들 등교 때문에 급하게 샤워하고 쏜살같이 집으로 와야만 한다. 누가 잠시 말을 걸어 몇 분 늦게 집에 도착하면 몇 분이 아니라 몇십 분이 늦어질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늘 샤워와 머리 손질만 간단히 하고 최대한 서두른다.


오늘도 수업 마치고, 내가 사용하는 샤워기에 왔다. '요즘 낯선 소쿠리가 있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샤워했다. 머리에 샴푸칠을 한참 하고 있는데 누가 쑥 내 앞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나는 순간 놀라 뒤로 물러섰다. 샴푸가 눈에 들어와 옆자리 샤워기를 틀어 급히 거품을 씻었다. 이 무슨 일인가? 싶어 끼어든 사람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여기보다 거기가 물 더 잘 나와. 거기서 해. 그기가 훨씬 좋아" 한다.

"예?" 놀라고 어이없어 나도 모르게 위아래로 그 사람을 훑어봤다.


나이는 70이 넘어 보였고 깡마르고 고집도 세게 보였다. 새까만 얼굴에 심술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 좋으면 본인이 하면 될걸 왜 굳이!'라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당황하면서도 상당히 불쾌했다. 나이도 많은 어른을 상대로 잘잘못을 말하기가 사실 좀 뭐 했다. 시간도 바빴기에 물러선 자리에서 샤워를 끝냈다. 나오면서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이런 일이 최근 이 이모님을 통해 몇 번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동료에게 이야기했다.

불쾌함과 무례함에 대응하지 못하고 어벙벙하다가 급히 나온 게 속상했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 왜 그러시냐고? 고 당돌하게 말할 수 없는 것도 속상했다며 말했다.

그러자 동료가 웃으며 , "아예 다른 자리로 가서 샤워하든지, 아님 기분이 나빴어요.라고 말해" 라며 슬쩍 웃었다.


사실 심각할 만한 일이 아니다. 다른 자리에서 샤워해도 별 문제없긴 하다. 그러나 이 기분 나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냥 넘어가도 전혀 문제없다. 하지만 속상해 있는 나를 외면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 한편에 묘한 그 무언가가 남아 있을 때가 있었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살아있는 생물의 세계에서는 늘 갈등이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지는 본인의 몫인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이 상한데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기로 했다. 일방적인 무례함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오늘도 수영장에 왔다.

내 샤워자리에 바구니를 두었다.

나의 수영수업이 끝나면 그분의 수영수업이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서로 샤워 중에 만나게 된다.

수영 후 샤워기에 늦게 도착할 때는 그분이 내 소쿠리를 치우고 내 자리에서 샤워를 하기도 했다. 그분이 먼저 하고 있으니, 나는 옆자리를 이용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샤워하고 있고, 샴푸 칠까지 하고 있는데 쑥 들어와 밀어내는 건 아니다 싶었다. 1주일 동안은 서로 눈인사하고 별일 없이 지나갔다.


어 이렇게 조용하면 안 되는데 싶어 오늘은 내가 작정했다.

더 일찍 수영을 끝내고 그분 보다 먼저 도착해 샤워를 하고 있었다.


그분이 왔다.


수영장 나온 사람과 들어갈 사람이 교대로 샤워하고 있어서 이 순간만은 북적대고 좁았다. 내 옆자리에 누군가 샤워를 끝내고 가니 빈자리가 나왔다. 나는 여전히 내 자리에서 샤워하고 있었다. 속으로 오늘 올 것이 드디어 오는구나 생각했다.


"옆에 자리가 물도 많이 나오고 훨씬 좋아. 옆에 가서 해" 하며 내 자리에 쑥 들어온다. 이번엔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모님 저는 물 많이 나오는 것 싫어해요. 물 많이 나오는 것 좋아하시면 이모님이 이 자리하세요" 하며 또박 말했다.


내 속으로도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젊은 내가 어른한테 그러면 되나? 하는 양심도 쑥 올라왔다. 하지만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기에 계속 진행했다. 이모님이 "내가 20년 이 자리를 사용했어. 이 자리 내 자리야." 한다.


순간 뇌리를 스쳤다. '텃새!, 그래 이걸 텃새라 하는구나.' 수영 처음 배울 때 주워에서 수영장 텃세 심하다 했든 것들이 이런 거였구나 생각했다.


"앞으로 저는 30년 할 자리인데요." 능글 웃으며 말했다. 이모님이 멈칫하시길래 또 말했다. "새벽 5시 30분에 도착하시면 그땐 아무도 없어요. 제가 새벽 5시 30분에 와서 이 자리에서 샤워하고 수영장 갑니다."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모님이 웃으며, "아우야, 이 자리보다 옆자리가 물 많이 나온다. 나는 생각해서 그랬는데 , 이 자리해라 해라!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자리 문제가 아니었다. 무례함과 예의 없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든 거였다.


나의 뜻이 전달되었지 이모님이 다시 말을 걸었다. "난 김 씨다. 니는?"

" 하 씨인데요. 물에서 굴도 못생기고 마음도 못생긴 사람 확 물어버리는 하마인데요." 말했더니 김여사님이 막 웃으셨다."


수영 마치고 샤워를 하러 가면 요즘 김여사님이 "아우 왔네! 하씨 아우. 여기서 해라." 하며 자리를 내주신다. 다른 분들의 눈치가 보인다.



김여사 님이 깡말랐어도 요즘 따라 마른 게 아니라 날씬하게 보인다. 고집이 센게 아니라 자기표현을 확실하게 하는 거다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니고 교통정리를 하는 거다.


최근들어 혼자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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