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달려라

by 한여름

"정자야, 정자 밖에 있나?" 이웃집 산파 할머니께서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자를 애타게 부르신다.



이제나 저제나 아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문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7살 정자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답한다. "할매, 저 밖에 있어라."



"퍼뜩 뛰가 너그 아부지 데려 온나, 언능." 재촉하는 할머니의 먹소리가 다급한데도 정자는 잊지 않고 할머니께 여쭈었다.



"할매. 아들이라요? 딸이라요?" 여쭙자, "아들이데이~ 아들. 그라이 퍼뜩 뛰가 너그 아부지 데불고 온나." 하신다.



정자는 뛸뜻이 기뻤다.

'뭐라고?, 내 동생이 아들이라고. 잘 됐데이~참말로 잘 됐데이~' 정자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이 기쁜 소식을 아버지께 일분 일초라도 빨리 전하려 정자는 고무신이 벗겨지지 않도록 단단히 발에 힘을주며 달리려하자 가지런히 땋은 뒷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며 앞마당을 뛰쳐 나갔다.








정자는 동그랗고 복스러운 얼굴형에 전형적인 동양 여자 아이처럼 생겼다. 쌍거풀이 없는 홑거풀임에도 눈매가 시원시원하니 작지 않았고, 오똑하진 않지만 작고 귀여운 코, 새까만 검은 머리는 숱이 어찌나 많은지. 작은 체구 마른 아이였지만, 달리기 만큼은 키큰 또래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재빨랐다.



집밖으로 뛰쳐나온 정자가 마을 어귀를 지나려니 몇몇 동네 어르신들과 눈이 마주 다. 정자는 한시라도 소식을 빨리 전해야겠기에 일일이 멈춰 인사하는 대신 눈인사를 건내는데, 바쁜 정자의 뜀박질에 무슨 일이 생겼나보다 눈치챈 이웃 어른들이 한사코 정자에 뛰는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정자야, 와 무슨 일이고? 뭔데 그리 바삐 뛰가노?" 하고 물으니 하는 수 없이 정자는 다급한 마음에도 뛰는 발길을 멈출 수는 없어 제자리에서 뜀박질을 하듯 종종 뛰며 마치 확성기에 대고 냅다 자랑이라도 하듯 큰 소리를 지리듯 답한다.



"아지매요. 아들이라 안합니까, 아들. 울 어매가 아들을 낳았어라. 퍼뜩 가 아부지한테 전해야 합니데이." 하며 연신 숨찬 호흡을 씩씩거리면서도 얼굴에는 싱글벌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달리던 정자가 이제는 마을 밖을 빠져 나오자 동네 자그마한 장터를 지나쳐 마을과는 함참 동떨어진 뒤로는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쌓인 곳 허허벌판 위에 집을 짓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정자의 눈에 들어 온다.







정자는 달리던 발걸음을 서서히 줄였지만 멈추지는 않고 인부에게 다가가 "울 아부지 어디 있습니꺼. 저 정자라요. 울 아부지 어딨어라?" 하고 묻자, 인부는 정자에게서 다급함이 느껴졌는지 말보다 먼저 손가락으로 뒷편을 가르키며 "저짜 계신다" 답한다. 정자는 인부의 손끝을 따라 냅다 한걸음에 달려갔다.



"아부지요. 엄마가 아를 낳았심더. 퍼뜩요. 퍼뜩." 어서 오라 손짓을 해도 정자의 아버지는 하던 일에서 쉬이 빠져 나오지 못하신다.



"뭐라꼬? 느그 어매가 아를 낳았다고?".

"하머요. 아들이라요. 아부지를 어서 데불고 오라했어요." 하자 그제서야 정자의 아버지는 인부들에게 "마누라가 아를 낳았다 안하나. 아들이라카네, 아들. 내 버뜩 집으로 가봐야 하니 여기 일 뒷처리 잘 하고 드가레이." 하며 달릴 채비를 하신다.



그리고는 아직 어린 딸 정자에게 다가가 다정히 어깨에 손을 짚고서 "정자야, 아부지가 퍼뜩 뛰갈테니 니는 인자 더 뛰지 말고 걸어 온네이. 알긎제." 하며 정자보다 더 빠른 달리기 실력으로 집을 향해 냅다 달려가는 아부지의 뒷모습을 멀그러니 바라보는 정자의 마음에는 기쁜마음 한편 왠지모를 씁쓸한 마음이 들며 저만치 달아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달려오던 길을 홀로 걸었다.



'잘 됐데이~ 참말로 잘 됐데이. 아들이라카이 이제 마 아무 걱정 없데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정자는 저멀리 뛰어가는 아버지 뒤를 쫓아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