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기 싫어.
자유로움이 아니라 내겐 외로움으로부터 탈출이었다.
"쪼그만 것이 겁도 없이 싸이카를 타고 달렸다니까~ "
나는 어디든 매달렸다.
그것은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아빠의 허리춤이 될 때도 있었고, 다리를 세로로 꼬아 서서 오토바이 손잡이가 될 때도 있었다.
가끔은 연장이 가득 실려 닫히지 않는 오토바이 의자 한편에 의지해야 할 때도 있었다.
엄마가 논과 밭으로 일하러 가면 아빠는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했다.
성인이 되어서 아빠의 나를 태우고 달렸던 싸이카 일화를 들으면 거북했다.
왜 아빠가 돌봐야 했을까?
왜 엄마는 밖으로 돌아야 했을까?
엄마에게 부는 바람은 땀을 식혀주었지만,
아빠에게 부는 바람은 머리를 식혀주었다.
나에게 부는 바람은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싸이카를 타며 겁도 없이 누볐던 건 덜 외로고 싶기 때문이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묻곤 했지만 어린 나는 대답이 없다.
막연히 떠오르는 단상들을 붙잡으며 물어보길 반복했다.
아빤 울고 있는 나를 달랠 방법이 없어 장롱에 가둬버렸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아빠의 성정으로 충분히 가능했고, 웃으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현재를 살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일 거다.
아빠는 기분 좋아 달렸고,
술에 취해 달렸고,
화가 나서도 달렸다.
나는 혼자 있기 싫어 함께 달렸다.
가깝고도 먼 거기를 달리고 집으로 돌아와 오토바이를 세워두면 달아오른 열기가 쉽사리 식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소리를 듣고 싶었다.
달리고 나서 고르는 뜨거운 숨소리를.
홀린 듯 다가갔을 땐 아차 싶었고 이미 늦어버렸다.
오토바이 머플러가 품고 있던 열기는 고스란히 나에게 전이돼버렸고 빨갛게 달아오름과 동시에 눈물샘이 폭발했다.
울지 않아야 한다.
여자들이 많은 우리 집에서 언제부터 울지 않아야 한다는 묵시적 규칙이 존재했지만 그날의 뜨거움에 규칙은 압도당하며 소리를 잃었다.
달려 나온 아빠는 괜찮냐는 말 대신 "뭣한다고 가까이 갔냐"였다.
(아빠는 지금도 다정한 말을 할 줄 모른다.)
뜨겁고 싶었던 마음을 몰라주었다.
외로움을 녹이고자 했던 마음이 호되게 당해버렸고 그날 쓰디쓴 된장이 무릎 위에 올라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