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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면의 형과 태와 상으로부터, 분노하고 깨닫는 질

All Mirrors - Angel Olsen /탐구생활

by 감상주의

Step 1: "All Mirrors"


Billboard

2019년 7월 22일, 그녀가 새로운 싱글 및 뮤직비디오를 예고하며 SNS에 업로드한 사진 한 장이다. 2집 <My World>의 커버에서 보았던 정갈한 이미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타이틀과 함께 삼면을 이루고 있는 자화상은 '반영'의 모티프를 표상한다.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흑백 톤은 고전 필름만 흉내 낸 것이 아니다. 프랑스 옛 문화양식에서 비롯된 듯 훨씬 무겁고 '고딕'하다.


여기에는 포토그래퍼 카메론 맥쿨(Cameron Mccool)의 센스가 돋보인다. 소품 하나 없는 단색의 배경 안에서도 그녀의 권위적인 어둠에 공간이 정서적으로 맞물려 있는 느낌이다. 특히 전신을 비추고 있음에도 정면을 응시하는 그녀의 근엄하고 매서운 표정은 별도의 클로즈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드러난다.


반면, 기존에 그의 스타일과 차별되기도 한다. 가령 다양한 스타들을 촬영한 다른 흑백 작품들은 인물의 자유로운 포즈와 제스처에 따라 감각적으로, 때로는 퇴폐적으로,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게 비추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 그녀의 곧은 자세와 화려한 풍채로부터 오는 인상은 첫째로 위화감이다. 평소 어떠한 규칙도 두지 않는 카메론이지만, 이는 분명 그녀의 거대한 변신을 반영하기 위한 그의 대담한 변용이었다.


결정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의상이다. 무수한 술과 비즈가 늘어진 프린지 드레스를 보면 어느 저주받은 고원에 보송한 덩굴이 한가득 드리운 아주 오래된 나무를 보는 것 같다. 섬뜩함과 우아함을 오가는 가운데 확실히 드는 인상이 있다면, 그것은 '초현실주의적'이며 '분열적'이라는 것이다.


New Comute

"All Mirrors" 뮤직비디오에는 앞서 이미지를 통해 암시했던 톤과 테마에 스토리라인이 부여돼 있다. 또한 거울 이외에도 여러 모티프--대표적으로 계단과 탈태(脫態)--가 전개별로 등장하여 장을 구분하고 있다. 이미지에서 보았던 초월적인 여신상은 분열하던 자아의 최종적인 형상이자 변신의 완전함에 대한 상징이었으며, 영상은 그 종착지로 향해 가는 과정이었다.


디렉터 애슐리 코너(Ashley Connor)의 능력은 여러 대작 영화를 담당한 시네마토그래퍼답게--그리고 엔젤 올슨을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하고 있는 절친답게--촬영에서 극도의 세심함을 발휘했다. 코너는 한 인물로부터 저마다의 '태'들이 주는 드라마틱하면서도 개인적인 의미를 명확하게 포착하려 했다. 이에 따라 각 모티프마다 절묘하게 교차하며 카메라 각도와 동선, 그리고 인물의 구도를 설계했다.


연출 외에 시시각각 존재감을 자랑하는 또 다른 요소는 역시나 의상이다. 하층에 위치해 있던 인간계의 순백한 공주를 묘사하기 위해 구현된 디자이너 시드 네이검(Sid Neigum)의 나선면 실크 드레스는 아마도 2019년 스프링 컬렉션 모델을 약간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마녀와 유령들의 손길에 융화된 뒤 탈태를 드러내는 블랙 바디콘 드레스는 우리에게는 반전의, 그녀에게는 해방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녀가 기대에 부응하며 마침내 마주한 이면의 분신은 화려하고 주술적인 코코슈닉을 쓰고, 마녀에 걸맞은 아이 메이크업을 바르며, 롱 슬리브 맥시 블랙 드레스를 입고 있는 이계의 여왕─1924 SF 영화 <Aelita - Queen of Mars> 레퍼런스─이었다. 마녀와 손을 맞대며 곧 사진 속 프렌지 드레스를 입은 여신이 돼, 올랐던 계단으로 다시 내려오며 막을 내린다.


Stereogum

비주얼과 캐릭터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그녀의 기존 이미지를 반전시킨 극적인 연출을 꾀했다. 그녀는 유년 시절에 극장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관람한 때부터 아직까지도 뇌리에 새겨져 있는 심포니를 언급한 바 있다. 벤 배빗(Ben Babbitt)이 클래식과 아방가르드 사이를 조율하는 방식에 신뢰가 있던 올슨은 그에게 현악 편곡을 맡기고 여기에 한 가지 실험을 덧대기로 했다.


그것은 70~80년대의 신스 팝을 융합하는 것이었다. 드물게 관현악적인 신스 팝이 탄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20~30년대의 흑백 SF 시네마, 이를테면 매트로폴리탄 및 아르데코적인 스타일고전 환상극 희곡이 어우러지며, 또 다른 예술양식을 마주하는 듯한 감흥도 선사했다. 훨씬 바로크적이면서, 역설적이게도 극도로 무채색적인 글램/뉴로맨스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비할 데 없이 화려한 편곡이지만 보컬 멜로디는 의아할 정도로 단조로움을 고수했다. 겸손일지는 모르겠으나 본인은 이를 '문제점'이라며 자조적인 평을 내렸다. 주제의 전달을 위한 노래로서의 희생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 단조로움을 단조로움으로 느끼지 않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작곡에서 종종 보이던 습관을 더 이상 '문제점'이라고 규정하지 않기로 했거나, 혹은 그 문제점조차 오롯이 나의 일부인 이상 어떻든 상관없다는 자기 확신에 의해 가능한 것일 테다. 그녀는 더 이상 '척하는 것'에,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맞추는 것'에, 더 구체적으로는 '자의가 아닌 컴포지션의 통념에 의해 요소를 변주하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파워풀하고 장엄하며 초월적인 확신은 단조로운 멜로디를 임팩트로 승화시켰다.




Step 2: "Lark"


UPROXX

9월 12일, 다음으로 공개된 동일한 감독의 비디오 "Lark"는 "All Mirrors"와 정반대로 풀 컬러다. 좁은 룸이 아닌 드넓은 자연을 배경으로 삼았다. 장르는 미스터리도, SF도, 필름누아르도 아닌 독립영화 풍의 지극히 인간적인 숏 필름 드라마(어쩌면 로드 무비일 수도 있다). 내러티브는 더욱 영화적이며 촘촘해졌다. 클로즈업은 물론, 드론을 이용한 익스트림 와이드 샷까지 변칙적으로 병치해가며 올슨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그러면서도 철저한 구조적 설계가 아닌 우연에 의존한 촬영을 통해 내추럴함을 부각시켰다.


여러모로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핵심적인 부분들은 그대로다. 핸드헬드와 트래킹샷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했지만, 중심에 있는 올슨 한 명만을 비추며 따라가는 것은 같다. 모든 내러티브와 모티프가 그녀 단 한 명의 경험과 내면, 총체적으로 해방과 변화를 주제화시키고 있다.


"All Mirrors"에서 그녀가 탈태를 결심하고 실천하게 된 계기를 "Lark"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영상의 인트로는 가정된 상황이 아닌 촬영 기준으로 그녀가 겪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은 사건을 재연한 것이다.


KNOTORYUS

즉 일련의 이야기는 그녀를 둘러싼 지독한 현실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Lark"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의상, 편집, 조명, 색감 등 여러 측면에서 현실의 경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가령 그녀가 인어공주처럼 수중에서 일종의 무희를 하는 동안, 그녀의 의상은 "All Mirrors"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 실크 드레스로 다시금 바뀐다.


올슨이 우연히 모닥불 캠프에 참여하는 장면에서도 일상적이기보다는 몽롱한 느낌이 부각된다. 코너는 이미지를 '녹이는(melting)' 방식이라고 했다. 그녀는 공동체와 연대가 지니는 가치를 통해 상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함께 작업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동료들을 가리키던 것일 테다. 현실로 나아가기 위한 교훈을 얻은 그 과정은 분명 일종의 비현실적일 만큼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한편 플롯 및 시간성도 비정형적으로 변조되기 시작한다. 마치 드니 빌뇌브의 영화 <컨택트>의 일부 장면처럼, 그녀가 어느 시간과 공간에든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감정이 현재의 것인지, 한 때의 것이었는지, 앞으로 느낄 것이 될지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그녀가 어쨌든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지막 시퀀스에서의 의상을 통해 알 수 있다. 형태는 다르지만 이전까지의 의상들에 반전된 블랙 색감으로써 그녀만을 위한 자아의 어느 진화된 상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앞서 블랙 바디콘 드레스를 입은 그녀와 같아진다.


그리고 그녀가 들어선 해변가에 보이는 야생마는 <자화상-새벽 말의 여인숙>를 비롯해 레오노라 캐링턴의 회화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던 녀석들과 같은 의미를 상징하는 것일 테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구속된 뮤즈가 아닌 드넓은 초원의 이곳저곳을 마음껏 누비며 자유롭게 자연과 교감하고 일체화되는 독립된 여성상.


Good Records

곡으로서는 "All Mirrors"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고동에 가까운 힘찬 퍼커션과 극적인 관현악으로 시네마틱한 웅장함을 연출한다. 해방을 좇는 여성상에 관한 내러티브를 가사 안에 담아낸다. 그리고 그 내러티브의 주인공은 역시나 올슨 자신이다.


그러나 "All Mirrors"에서 케이트 부시, 혹은 <Heroes> 시절의 데이비드 보위를 일부 포착했다면, "Lark"에서는 <Sea Change> 시절의 벡, 혹은 <Hunky Dory> 시절의 보위가 엿보인다. 카멜레온같은 페르소나보다도 인간적인 경험에 기초한 싱어송라이터적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특유의 더 방대한 우주로 뻗어나가는 듯 대곡적이고 드라마틱한 전개는 절정 파트를 훨씬 일찍이 둠으로써, 더 스펙터클해진 버전의 "Lonesome Tears"를 듣고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두 곡의 화려한 편곡은 그들의 갈등과 좌절에서 막 벗어나 가장 감정적이면서도 여린 자기 고백을 바탕에 둔 것이다.


그럼에도 결정적으로 벡과 달리 올슨은 영상과 곡 코러스에서 알 수 있듯이,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내밀어 혼자가 된 순간을 열렬히 환영하는 순간을 포함시켰다. 마지막에 여전히 슬픔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듯 촉촉해진 눈가로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분명 어느 순간에 카타르시스가 만개하여 올슨을 고독과 전혀 다른 차원에 갖다 놓기에 이른 것이다.



Step 3: Angry Record


Vogue

10월 5일. 처음으로 선공개를 했던 싱글과 동일한 타이틀 <All Mirrors>로 올슨의 3집이 정식 발매됐다. 그녀는 타이틀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는 관계"라는 주제를 따랐다고 설명했다.

더 구체적인 그녀의 설명으로는, 타인에게서 확인하고픈 모습은 곧, 자신에게 찾고픈 지극히 개인적인 무언가라는 것이다. 이는 평생에 걸쳐 싸워 온 자기 자신의 갈등이기도 했다. 그녀가 진정 원하던 것은 반사된 내 형질이 아닌 진실된 내 본질이기 때문이다.


오랜 투쟁의 연속에 관한 일인 만큼 실현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인정했지만, 그녀가 좇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 복잡한 논리를 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로서의 나를 바로 이해하고픈 마음'에 대해서 우리 역시 결코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본작을 'angry record'라고 축약한 바에 대해서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Lark"의 비디오에서 보여줬던 만개한 미소도 환희임과 동시에 한편 다른 의미로서 분노였을 테리라. 나에 대해 재인식하고, 재탐구하고, 재구성하고, 가감 없이 모든 표현을 다하며 새롭게 나를 좇고자 하는 실존적인 선언이자 애찬으로서의 정의로운 분노 말이다.


지금부터는 'angry'란 키워드에 대해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여러 단서들을 확인하고 대입해 볼 것이다.

모티프와 테마에 대한 설명, 그리고 우리가 지금 보고자 하는 키워드에 대한 설명 모두 올슨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 안에서 다이얼로그처럼 늘어놓았던 코멘터리를 빌려 온 것이다. 고맙게도 그녀는 친절하며 소통에 매우 적극적인 편이다.


Buscadero
"Lark" is a song that took many years to finish. The disjointed feelings and verses of this song began to make sense as a way for me to exercise a kind of journey through grieving, a kind of personal struggle. The message of the song developed at first from an argument I once had with someone about trust and support. Later, I pulled from recurring themes in my life as a musician and as a human that dreams for a living. It’s easy to promise the world to those we love, but what about when our dreams change and values split?


방향에 대한 계기가 'Lark'에서 암시했던 옛 인연과의 언쟁이나 그녀를 옭아매왔던 끊임없는 번뇌에 있음은 그녀가 직접 공언한 사실이다. 당신은 과연 진짜 내 모습을 바라봐주고, 신뢰해 주고, 지지해주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당신은 내 꿈과 가치관에 대해서도 진정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가? 심지어 그것들의 변화까지도 한없이 수용하고 격려해 줄 준비가 돼있다고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인까?


이로부터 갈등이 존재했다는 것은 이 질문들에 대한 상대의 긍정, 혹은 대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 테다. 그리하여 나는 그 상대와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멀어지는 동안의 부정과 혼란 속에서도 그녀는 방금의 질문들을 자신에게로 돌려 새로운 대답을 찾기 시작했다.


"Lark" 영상에서 그녀가 처음 문을 박차고 나온 순간은 흡사 당겨진 트리거의 모습과 같다. 시간이란 트럭에 몸을 맡기며 생각을 정리하는 휴지 기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리쇠가 공이를 때린 직후 내부에서의 충격이 점차 외부로의 탈출과 확고한 전진으로 그 의미를 변화시키기 위한 신호가 발동된 시점이기도 한 것이다.


In every way — from the making of it, to the words, to how I feel moving forward, this record is about owning up to your darkest side, finding the capacity for new love and trusting change even when you feel like a stranger.
I am so happy we could make a record again, and I am so incredibly grateful for the way that you execute what you do, I loved catching up with you after this 6 years of time and music and change. I am so fucking pleased. Thanks also to all my friends and fam for the shout outs, believe it or not I need your love and I love you back, after all this is done let’s fucking go on a hike shall we?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힘이 있었기 때문에 총격에 비유할 수 있고, 그리고 분노로 귀결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생을 관통하는 다이내믹하고 드라마틱한 힘. 이제 그 분노의 힘을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고, 나를 격려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환영하며, 나의 모든 면을 인정하고 믿음을 관철함으로써 여전히 내가 나와 내 세상의 주인으로 서기 위해 행사하기로 다짐했다.


Billboard

그리하여 정식 커버에서 그녀는 갈기를 방사형으로 펼친 검은 사자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분노한 여성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고고하게 표현해냈다. 어쩌면 그녀의 분노는 <선셋 대로>의 노마 데스몬드처럼 극도로 자의식적이고 광적인 모습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데스몬드 역시 자신이 그리는 완벽한 자아상에 관해 무서울 정도로 몰입했다.


물론 올슨이 좇는 자아상이란 완벽해야 하지도, 과거에 얽매여 있지도 않은 것이다. 또한 그녀는 도취나 망상에 빠지지도 않았고 타락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올슨은 분명 그녀에게 영감을 받았다. 눈빛과 아우라에 포커스를 둔 자화상은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으로 나오는 충격적이고 메타적인 클로즈업을 연상케 한다. 그 역시도 환희와 동시에 그간 영광 뒤편으로 밀어둔 채 자신의 가치에 대한 존중을 포기한 세상에 향햤던 회심의 분노였음으로 해석해 보리라.



Step 4: <All Mirrors>


Pitchfork

그런데 작품의 실체를 펼쳐보면 우리가 생각하던 방향, 이를테면 앞서 본 두 비디오나 커버를 포함한 많은 포토그래피에서 위풍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검은 화신'의 외관이 앞으로 다른 트랙들에서도, 그로 말미암아 앨범 전체를 완전히 지배할 것이라는 예측과 다소 어긋나 있다. 그녀를 둘러싼 매혹이 굉장히 퇴폐적이고 우악스러우며 화려하게 다루어질 것을 기대하기 쉽다.


일부 트랙에서의 사운드는 확실히 그렇기도 하다. 가령, "New Love Cassette"의 간주 부분에서 현악은 천둥번개처럼 갑작스럽게 귀를 강타하고 폭발한다. 도도하면서도 차분하게 스텝을 밟으며 드림팝이 메시아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What It Is"는 올슨의 코멘트대로 현악기에서 활시위가 당겨지거나 총알이 빗발치는 듯한 괴이하고 폭력적인 소리가 들리는 웨스트월드 사운드트랙풍 행진곡이다.


그러나 올슨은 자아의 '이미지'를 다루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분명 그녀가 적극적으로 모티브와 레퍼런스를 활용함으로써 의도한 형태이긴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던 것은 결국 진실이나 본질 따위가 아니다. 트랙들을 차근히 감상하고 그 속의 콘텍스트를 이해해야만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녀는 여전히 사랑을 향한 헌신과 노력에 관해 깨달음과 변덕 사이의 어딘가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전작들보다 더 부드럽고 섬세하며 연약하다. 이제 막 관계에 대해 깨달은 것들, 그러면서 어른이 돼가는 것들--이를테면 'Spring'에서 자식을 갖는 것에 대해 가치관이 달라진 친구를 이해하게 된 모습처럼--에 대해 소회를 늘어놓는 그녀의 모습은 커버상의 근엄한 여왕보다 오히려 트럭에 탄 채 방금 전의 일을 돌아보던 수수한 여인에 가깝다.


The Fader

여전히 위 사진처럼 마음속의 블루스를 안은 채 비애감에 젖어 웅크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분노가 결코 복수나 저주 따위로 말미암은 바깥이 아닌 사려와 성찰로 말미암은 안으로 향해야 하는 그녀는 더욱 그러한 비애와 숙고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요컨대 '잔다르크식의 분노'라고 해야 할까.


"Impasse"가 앨범의 다이내믹한 전개 안에서도 절정을 차지한다고 했을 때, 다음 "Tonight"부터는 "All Mirrors"의 비디오에서 다시 아래를 바라보며 내려오는 장면처럼 비애를 향해 간다. 불완전했던 스스로와 덧없는 사랑에 관해 일종의 묵념을 하듯이.


그럼에도 그녀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 나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당신의 시선으로부터 이제는 나만의 공간으로 독립해, 다른 인연들을 점차 만날 것이고 새로운 환경에서 영감을 얻어나갈 것이다. 나의 변화에 스스로 관심을 갖고 몰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제야 작품에서 환상적이고 비장하게만 보였던 클래식 미학이 과잉에서 휴머니즘의 영역으로 와닿기 시작한다. 맥시멀리즘에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인 것이다. 참으로 사려 깊은 분노와 황홀감이다.


작품으로서의 성취를 꼽자면 "All Mirrors"와 "Lark" 사이의, 혹은 이후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함으로써 둘 사이에 간극이 아닌 동질을 꾀하고, 이미지와 본질 사이의 예술가 및 인간에 대해 되묻게 하며, 콘셉트와 콘텍스트를 긴밀하게 연결함으로써 양쪽 모두를 균등하게 반영하는 법을 보여줬다는 데 있겠다. 타자에 의해 정해진 나에 관한 관념을 멋지게 타파하는 방식이다.



Step 5: Whole New Mess


whole%20new%20mess_angel%20olsen.jpg Pitchfork

프로젝트로서의 [All Mirrors]는 <Whole New Mess>까지 감상해야만 완성이다. 일 년이 약간 안 되는 텀을 두고 공개된 <All Mirrors>의 소위 '두 번째 버전'은 말하자면 오리지널 버전이다. 즉, 우리는 그녀의 출발에 돌아간 뒤에야 여정을 끝맺을 수 있다.


목소리는 더욱 몽롱하게 들리지만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환상에서 벗어난 듯한, 달리 말해 자연이나 속세에 가깝게 있는 듯한 인상이다. 어쩌면 팬들의 입장에서는 기존에 알던 올습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전반적으로 어쿠스틱하며 더욱 친숙하게(intimately) 다가섰기 때문이다.


의상 역시 고전적인 드레스가 아닌 현대적인 회색 수트 재킷이다. 아트워크 역시 말끔하게 차려입고 근처 사진관에서 새롭게 증명사진을 찍은 듯하다. "Whole New Mess"의 비디오에서도 그녀는 "Lark"와 마찬가지로 숲을 거닐고 있지만, 더 이상 탈태를 거듭하지 않는다. 조명 역시 잔상이 가득하지만 꿈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 그저 차량의 백라이트가 뿌옇게 둘러싸인 안개 사이로 올슨을 비추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는 다시 현실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아니, 처음부터 현실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오케스트럴 버전 역시 환상에 갇힌 채 무의식적인 내면과 감정만을 노래하던 작품은 아니었다. 그간 다뤄왔던 분노는 과거를 향한 미련과 허상이 아닌 미래를 향한 실존적 물음이었으니까. 어쩌면 이 어지러운 감정을 그저 정리할 때가 왔다고 여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격정적이던 오랜 순회가 어느덧 이음매를 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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