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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인도사 Jul 29. 2021

무인도 생활기 연재_팔라완무인도8

내집마련

# 내집마련      


ᅠ단층 주택인 제 텐트하우스의 마당엔 많은 생명들이 세도 내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섬에 사는 나비가 쉬었다 가기도 하고 어떻게 용하게 다시 찾아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낚시배와 함께 바다를 떠다니다 돌아오는 파리도 두어마리 있고요. 모래 속에 있다가 새벽이면 소리없이 침입, 내 발가락을 집게로 물고 도망가는 게들도 있습니다. 해가 쨍쨍하면 나무에서 울지만 울음소리만은 내 마당에 머물다 가는 매미가 있고 바닥에 떡 눌러붙어 도통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더위도 끈적하게 살고 있지요. 때때로 그림자인척 텐트 안 깊숙한 곳까지 햇빛이 파고듭니다. 경고를 받고도 천천히 빠져나가는 그들의 뻔뻔함에 속이 타기도 하고 바닥부터 자라는 싹들은 텐트 밑에서도 날마다 자라는지 허리를 쿡쿡 찌르기도 합니다.      


ᅠ이들의 무단점거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어 2주나 벼뤘던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평평하게 한 뒤 물을 뿌려 단단하게 다졌습니다. 몇 몇 끈질기게 뿌리내린 것까지 뽑으며 그동안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집주인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려는데 순간 '내가 너무 극악무도한가'란 생각이 듭니다.ᅠ 


ᅠ 

ᅠ생각해보면 다들 나와 같이 외딴 곳에서 고군분투 하는 이들입니다. 텐트를 걷고 2층집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마당과 1층을 침입자들과 공유하겠다고 선언을 한 것인데 이렇게 공사가 길어질 것이란 상상은 또 못했습니다. 먼저 땅의 기운을 느끼고 빛이 들어오는 각도와 바람의 방향을 따지며 밀물일 때 파도가 어디까지 올라오는지를 살펴야 합니다.ᅠ집을 짓는 것보다 정작 숲에서 나무를 해오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려 3일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틈틈히 사냥을 가고 외로움을 달래며 배를 채우고, 불을 지피며 장작을 해오면 어떻게 또 하루가 금방 가는 곳입니다. 이뿐인가요, 수평선의 노을을 가슴에 담고 별똥별이라도 떨어지면 그 궤적을 따라가봐야 하기도 하고요.ᅠ      


ᅠ곧고 긴 나무를 골라 정글도로 내려친 후 대여섯개가 모이면 해변까지 나릅니다. 기둥과 1층을 끈으로 엮고 층을 만든 뒤 지붕을 올리는데 필요한 40개 정도의 나무, 지붕과 바닥에 깔 바나나잎, 집 옆을 덮을 코코넛잎도 옮깁니다. 나무와 잎이 자란 시간에 비하면 그들의 삶을 끊는 것은 너무나도 순간적이어서 어떤 원시부족은 일부러 칼날을 날카롭게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사실 이곳에서 집을 짓는 것은 재료를 구하는 것이 일이지 나무를 엮고 잎을 올려 고정시키는 것은 금방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ᅠ      


ᅠ집이 이렇게 뚝딱 만들어진다 한들 서울이란 섬에서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누군가 지하 창고라도 내어주면 잠시 앉았다 갈텐데요. 새벽이면 떠나는 밤이슬처럼 눈만 붙이고 떠날 수 있을텐데요.ᅠ그믐달처럼 한달에 가끔씩만 찾아와 쉬었다 가도 마음은 풍요로울텐데 그러고 보면 서울이야말로 발디딜틈이 없는 섬입니다. 20살부터 8년을 살았던 서울은 혼자이진 않지만 늘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에 가까웠습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팔라완 무인도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에서의 충분한 연습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ᅠ      


ᅠ같은 나이에 저처럼 서울 생활을 시작한 친구와 쉐어하우스라는 주거공동체를 작게 만들었던 것도 이런 이유때문인데 함께 살게된 친구들은 매일밤 혼자인채로 둥둥 떠서 방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 다같이 청소를 하고 소주를 마시는 날엔 왜 이 많은 집들 중에 우리의 집은 없냐는 의문으로 시작해 그래도 몸기댈 방 하나쯤 있는게 다행이라는 말로 마무리하곤 했습니다.ᅠ  

    

ᅠ바닥으로 둥근 나무를 깔아 울퉁불퉁한 1층의 바닥에 잎을 깔고 지붕을 얹혔습니다. 바다가 보이게 창을 내고 모래에 박은 기둥에 물을 뿌려 땅을 몇번 더 다졌습니다. 바람이 잘 통하게 벽면의 잎을 바람길로 엮어주고 빛이 잘 들어오면서 비는 세지 않도록 결도 내주었습니다. 지하엔 게들이 세들어 살고 1층엔 그늘과 귀뚜라미가, 2층과 지붕엔 각각 저와 햇빛받은 나비들이 살고 있습니다. 파도가 불면 사르르르 잎 사이로 바람이 부는 소리가 좋고 비가 오면 지붕의 잎을 따라 양쪽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좋은 이곳에서도 다시 서울에 돌아갈 생각을 하는 저는 결국 집 밖을 나서지 못합니다. 처음 느끼는 나만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야 했거든요. 생각보다 집을 짓는 것은 오래 걸려서 벌써 내일이면 섬을 나가야 할 시간입니다. 아직 알전구를 달고 액자를 거는 인테리어도 하지 못했는데말이죠. 대신 비가 그친 마지막날의 밤은 지붕을 걷어내 별이 되는 꿈을 꾸기로 했습니다.ᅠ      


ᅠ지나고보니 제가 지었던 집은 정문과 뒷문으로도, 창문으로도 석양이 지는 것은 볼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너무 급하게 지었나 봅니다. 맺혀있는 것만 보아도 기쁠 파인애플과 사과를 심을 생각도 못했고요. 다음에 이 집에 다시 온다면 잘때는 머리를 숲속으로 하고 잘 생각입니다. 조난당한 사람이든 원숭이든 숲에서 내려오면 덮어줄 담요 하나도 가지고 가야겠습니다. 누구나 필요하면 꺼내갈 수 있도록 나무를 쌓아둔 창고 열쇠도 현관에 걸어두고 현관의 발은 선물받은 조개로 만들예정입니다. 다음 번엔 작더라도 죽은 나무만을 모아 짓겠다면 무리일까요.      


ᅠ다시 돌아가 서울의 아파트 단지를 본다면 이곳이 더 그리워질것 같습니다. 새로 집을 구한다한들 이곳에 남겨둔 집을 상상하겠지요. 쉐어하우스에 함께 사는 친구들과 그래도 이번달은 다른 결말로 이야기를 마칠 수 있을 것 같고, 문을 열어 저를 살게해준 단칸방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스물 여덟에 처음 가진 내 집에 대해 앞으로 몇 십년은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ᅠ 

ᅠ원하는 꿈을 꿀 수 있는 저는 저녁마다 습기를 제거하고 환기를 시킬겁니다. 오늘 밤엔 파도에 부쳐 보냈던 책 몇 권과 와인이 담긴 박스가 잘 왔는지 확인하러 가겠습니다.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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