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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인도사 Jul 30. 2021

무인도 여행기

무인도로 함께 떠나보아요

                                                                 무인도 여행기     

ᅠ     


[무인도에 가기까지]      


ᅠ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면 조용한 곳들을 찾았습니다다. 한적한 동네 카페 2층이나 도서관의 구석진자리. 새벽이라면 문을 걸어잠근 내 방도 좋았고요. 때론 이유없이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저 한없이 혼자이고 싶을 때. 핸드폰을 끄고 멀리 떠나버리면 어떨까. 세상과 나 단 둘만 있는 곳은 없는지를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ᅠ키르키스탄 대초원이나 이란의 황무지, 사막과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지금은 무인도로 떠납니다.ᅠ      

ᅠ당신은 왜 무인도 찾아다니냐는 질문을 참으로 많이 받았습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곳, 온전히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수 있는 곳. 전화의 시그널 자체가 잡히지 않으니 누구에게 연락이 왔는지 급히 확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조용히 또 느릿느릿 해변의 작은 조개를 주워 우표 자리에 붙이면 그 자체로 훌륭한 엽서가 되는 곳이지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내가 매번 그림자로 체크를 하지 않으면 모를 일입니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지 또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를 잊는 것은 2-3일이면 족하고요.ᅠ      



ᅠ무인도를 가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것들을 버리고 가야 합니다. 한동안 일정을 잡지 않아야 하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없어야 합니다. 무인도에서까지 일에 쫓겨 초조해할 필욘 없지않을까요.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해야 하는 것도 섬의 일부라 생각하고 적당한 외로움만 챙겨야 합니다. 먹을 것도 최소화해야 하고요. 얼마간 마실 물과 간단히 요기를 할 음식들만 있으면 됩니다. 다만 있으면 좋은 것들이 있는데요. 사두고 미처 다읽지 못한 책과 시집 두어권, 멜로디가 좋아 다시 듣고 싶었던 음악들을 가지고가면 좋습니다. 잔잔하되 규칙적인 파도소리는 책을 더 술술 읽히게 하고 무인도에선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때마침 비라도 오면 담아간 음악의 멜로디가 진가를 발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ᅠ      

ᅠ한편으로는 거친 생존을 기대했습니다. 모든 문명을 내려두고 오로지 나와 자연만이 공존하는 곳. 대자연 속에서 내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 인간인지, 얼마나 이제껏 편하게 살았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면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을테니까요. 별 일 아닌 일에 걱정하고, 작은 일에 상처받고, 너무 큰 것에만 기뻐했던 저를 직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ᅠ

      

ᅠ정말 무인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건 생뚱맞게도 게임을 하면서였습니다. 모노폴리로 더 유명한 부르마블이라는 보드게임입니다. 주사위를 굴려 말을 움직이고 말이 멈추는 곳의 땅을 사고요, 다른 사람이 제가 사둔 땅에 오면 돈을 받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보드판에 무인도가 한 칸이 있는 것입니다. 무인도에 걸리면 한 턴도 아니고 세 턴이나 쉬어야 하는 것이 게임의 룰입니다. 초반, 많은 땅을 사두어야 하는데 무인도에 걸리면 정말 답답한 노릇이고, 반대로 게임이 후반으로 갈수록 무인도에 걸리면 이득입니다. 무인도를 탈출해서 말을 움직여봤자 다른 사람의 땅을 밟아 돈을 내는 상황만 닥칠 뿐이니까요. 정신없이 주사위를 돌려 게임판을 여러번 돌다보면 꼭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제 삶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요, 또 땅에 값을 매겨 사고 파는 것을 넘어 상대편의 땅을 뺏고 빼앗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이 게임판에서 세 턴을 쉬어야 하는 무인도처럼 이런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곳. 진짜 현실의 무인도는 없을까 고민하다 처음으로 섬으로 향했습니다.ᅠ         

  



[무인도행 배를 타다]ᅠ      


ᅠ처음 찾았던 곳은 우리나라의 무인도였습니다. 서해의 작은 무인도로 향했습니다. 뻘물에 백사장대신 자갈만 가득하여 아무 소득없이 앉아있다 깜깜한 밤이 되었습니다. 나뭇가지들을 꺾어 모닥불을 피우고 그 앞에 쭈그려 불을 쬐고 있는데 해경배가 사이렌을 끄고 파랗고 빨간 경고등만 깜빡이며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더니 라이트를 비춰 저는 암전인 상태에서 단독으로 빛을 받는 연극의 주인공처럼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다른 섬에 사는 주민이 신고를 한 것입니다. 섬에 불이난 것이거나 혹은 간첩일 수도 있다는 신고. 게다가 무인도도 모두 주인이 있어 무단침입을 했고 주인이 없는 섬은 해상국립공원일 가능성이 높아 취사가 금지라고 했습니다. 또 이렇게 나뭇가지를 꺾어 불을 부치는 것도 삼림법에 위반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바로 무인도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모든 시작의 처음은 착오와 실수가 있나 봅니다.ᅠ      


ᅠ구글의 세계지도를 확대해가며ᅠ안전하고 합법적으로 갈 수 있는 무인도를 찾다 발견한 것이 필리핀 팔라완에 딸려있는 작은 무인도였습니다. 처음 섬에 도착했는데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할지 고민이더군요. 불을 피워야할지, 장작을 구해두어야 할지, 물 속에 들어가 고기를 잡거나 낚시를 해야할지 혹은 조개나 해삼을 주워야 할지, 아니면 집을 먼저 지어야 할지. 많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민하다 타고 들어갔던 배를 끌고 다시 바다로 나왔습니다. 그러곤 제가 머물 무인도를 한바퀴 쭉 돌았습니다. 그제야 보이더군요. 어디에 나무가 많고 열매가 있는지, 집을 짓기 적당한 곳과 절벽이 있는지 나무가 많은지 등이요. 세상 사는 것이 그런가 봅니다. 막히는 문제를 해결할 때 한번쯤은 한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은 무인도도 예외가 없나 봅니다. 그 안에서만 답을 찾다 잘 안되면 배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ᅠ      



ᅠ무인도에서의 삶은 단조로우면서도 매우 바쁩니다. 이를테면 불을 피우는것 부터가 난관입니다. 한번은 어떤 면접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기뻤나요? 앞의 한 친구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사람들이 받아서 다운받아 사용하는 것을 볼 때 가장 기쁘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노인정에서 봉사활동을 매주 하면서 어르신이 좋아하는 것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할까 하다 무인도에서 7시간 만에 혼자 대나무로 불을 붙였을 때 가장 기뻤다고 답했습니다. 불을 피우는 것도 피우는 것이지만 불이 꺼지지 않게 지키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침부터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잡은 고기들이 익기를 기다리면 어느덧 점심시간, 사이사이 장작도 해야 하고 집도 지어야 합니다. 이뿐인가요, 새벽녘 떨어진 별똥별의 행방을 쫓고 가끔씩 튀어오르는 날치의 추진력과 원동력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넉넉하고 한적할 것만 같았던 무인도의 삶은 생각만큼 한적하진 않았습니다. 2초면 불을 붙일 수 있는 일상의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무인도가 아닐까 합니다. 때문에 간절함의 힘이 더 빛을 발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ᅠ 

ᅠ한번은 목이 말라 힘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처음엔 무인도에 갈 때 물도 들고가지 않았는데요, 여기저기를 헤매다 코코넛이 달려있는 야자수를 발견했습니다. 증류를 하는 것이나 나뭇잎들에서 증발하는 물을 모으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려 코코넛을 따서 목을 축이기로 했습니다. 도시에서 자라 나무에 오른적이 한번도 없던 저는 나무의 반만 올라갔다 내려와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시도를 했지만 실패.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요. 이젠 목이 말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때 다시 나무에 올랐습니다. 간절함의 힘을까요. 간신히 끝까지 올라 코코넛을 따고 바닥에 던졌습니다. 이제 저 코코넛을 먹기만 하면 된다는 행복감도 잠시,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정작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이 더 무섭고 큰일이었거든요. 올라갈때야 너무 높으면 다시 내려오면 되지만 내려가는 일은 제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결국 10분은 족히 매달려 있다 팔뚝과 허벅지를 나무의 거친 표면에 모두 쓸리고서야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어떤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가다 그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던 저는 마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물소들에 가까운 것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될때까지 하면 근처라도 가지 않나 싶은 마음도 이곳에서야 비로소 확신이 생겼습니다.      



ᅠ팔라완의 무인도에 3주간 있으면서 첫주엔 어디에 고기가 많고, 열매가 많은지 정도만 알아 굶다시피 했습니다. 둘째주는 고기를 잡고 말리는 법, 나무에 오르는 법을 알았고 세째주 정도가 되니 먹고싶은 물고기를 잡고 음식을 보관하며 덫을 놓는 법까지 알정도가 되었습니다. 누가 인간을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지하고 좌절하면 그것으로 끝나버립니다. 무인도에서의 좌절은 차라리 죽음에 가깝습니다. 지금 당장 어려운 일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리란 믿음이라 적고 싶습니다. 갑자기 내린 비로 불이 꺼지고 나뭇가지에 꽂아 익히던 고기가 너무 잘익는 바람에 살이 연해져 재 속으로 떨어졌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많은데요. 그럴때마다 이런 시련들이 또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봅니다. 그 누구도 토닥여주지 않는 이곳에선 이렇게 생각하는 곳이 곧 생존법이요, 나 스스로에 대한 처세술입니다.ᅠ     

 

 새들은 페루로가 죽는다는 소설처럼 사람은 무인도로와 귀를 여나 봅니다. 해변에 누워 있는 얼마간의 시간 동안 듣기만 했습니다. 파도소리를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봤던 적이 있었을까요. 거세게 달려와 스치듯 달아나며 귓가를 울리는 바람소리나 섬 언덕 너머에서 들리는 새의 울음, 무슨 동물의 발걸음인지 부시럭 거리는 발소리도 간간히 들리고요. 눈을 감으면 대낮의 따가운 태양빛이 해변으로 스며들며 무너질때의 떨림도 느껴집니다. 날치가 물 깊숙한 곳에서부터 바다 위를 향해 솟구치려고 잽싸게 속도를 낼때의 힘찬 소리와 고래가 천천히 바다를 유영하는 여유로움마저 들린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그러고보니 간밤에 조금씩 이동하던 별의 걸음걸이나 유성으로 떨어지는 별똥별의 추락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중 때마침, 그늘에 누워 있던 제 옆으로 나무에서 코코넛이 하나 떨어졌습니다. 눈을 감고 소리만 듣다 바다 깊숙한 곳까지 갔다가 하마터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뻔 했습니다. 코코넛이 달린 야자수 아래에 누워있다 자칫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오후였습니다.          




[무인도를 나오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낯선 곳으로 찾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이제까지와 다른 스타일의 글이 나오기도 하고, 온 몸의 감각이 살아나 힘이 없는 글에는 힘을 싫어주기 때문입니다. 비단 예술가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과학적 계산과 수가 먼저가 아닌 오감과 촉이 먼저인 무인도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한번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소중해기지도 하고, 맹신했던 능력이 터무니없이 부질없던 것이란 것도 알게 됩니다.     


ᅠ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곧 생존을 해야 하는 무인도가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그 어디에서보다 치열해져야 하는 곳이니까요. 어디에서든 머물고 있는 곳을 잠시 떠나고 싶은 것은 마찬가진가 봅니다. 복잡한 서울에서는 홀로 있는 적당한 고독의 무인도를 꿈꾸고 무인도에서는 왁자지껄하고 편안한, 동시에 외롭지 않은 도시를 떠올렸습니다.ᅠ섬에서 이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나와도 결국은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ᅠ      


ᅠ하지만 분명 그 누구도 없는, 그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의 여행은 한번쯤 해볼만 한것 같습니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온전한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 자연으로 돌아가 다시금 모든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시간이니까요. 생각만큼 만만치 않은 세상을 봄과 동시에 아름다운 세계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밤하늘 무수히 쏟아지는 별이나 은하수를 보거나 하루 두번씩 물이 차고 빠지는 투명한 바다의 냄새,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파스르르르 피어오르는 소리들을 저는 이곳에서와 처음 느꼈습니다.ᅠ      

 무인도가 무인도일수 있는 것은 그만큼 살기가 척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살지 못합니다. 어찌보면 제가 스스로 무인도를 찾아 들어가는 순간, 그 섬은 더 이상 무인도가 아닌 섬이 되어버립니다. 그래도 이런 섬을 무인도라 부르는 이유는 제가 혼자 아무도 없는 섬에 있다 한들 사실 크게 달라질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와 대화를 하거나 인터넷을 켜는 것이 아닌, 작은 모닥불에 몇 마리의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세상의 작은 일부가 되는 시간. 그런 매력에 자꾸 무인도를 찾나 봅니다.      

ᅠ섬에서 나오는 배에 올랐습니다. 배 뒷전으로 흰 거품의 길들이 생겼다 무너집니다. 배가 가는 길에 따라 생겼다 금새 사라지는 이 길들을 보는 것은 행운입니다. 가다가 죽은 채로 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거북이를 본 것도, 한쪽면만 허공을 바라보며 파도에따라 흔들리는 죽은 생선을 본 것도 이 즈음입니다. 나와 세계, 삶과 죽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나아가야할 길에 대해 떠올리고 왔다고 하면 이 역시 저의 욕심일까요. 모쪼록 한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무인도로의 여행이었습니다.ᅠ



윤승철 글. 빅이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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