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해 봐야 아나? 해 보니까 알겠던데?

by 숲 속 꿀단지


2021-07-01 하루 사진 한 장.jpg




이러나 저러나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까닭을 하나 더 찾았다.

*

지난 주에 걷다가 혼자 넘어지면서 오른쪽 팔꿈치 아랫부분이 엄지 손가락 길이 정도로 까졌다. 며칠 지나니 딱지가 앉기 시작했고 지금은 딱지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새살이 돋아 살짝 간지럽다.

씻을 때마다 이 쪽 부분을 조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른쪽 팔을 쳐다볼 때가 많아졌다.

오른쪽 팔꿈치 위에는 오래 전 수술 후 꿰맨 자국이 선명하게 있다.

2008년에 봄에 간단한 수술을 했다.

1박 2일이었는지, 2박 3일인지 입원을 했다.

결과적으로 심각한 건 아니었고

팔에 있는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음성이었고, 세상 꼼꼼한 의사에게 수술 받아서 경과가 좋았다.

다만, 예상치 못한 부분을 알게 되었다.

수술 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간단한 수술이어도 사전에 이것 저것 내 몸에 대해 특이 사항이 없는지 물어본다.

그런 과정을 다 거치고 수술대에 올랐는데, 그 누구도 예상치 못 한 일은 정작 수술을 마치고 나와 드레싱을 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완벽주의자였던 의사 선생님은 예상은 했다만,

종양 제거 후(분명 마취된 상태인데 다 느껴져…) 짼 피부를 봉합하는 과정에서 내 팔을 부수는 줄 알았다.

나는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아프고 힘든 걸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 수술대에 누워서 “윽..”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바느질하는데 실을 팽팽하게 곧 끊어지는 거 아닌가 싶은 느낌이 날 정도로, 팔이 몸에서 빠지겠다 싶을 정도로 (과장 아님.) 아주 강한 힘을 주며 바느질을 했다. 그 힘에 끌려갈 것 같아서 왼손으로 차가운 수술대를 꼭 잡고 등에 힘을 줘서 긴장하며 버텼다.

마취 주사를 맞아도 살 벌리는 거, 종양 제거하는 거, 실로 꿰매는 거 다 느껴지는데..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을 뿐 촉감은 그대로 느껴졌다.)

기본적인 수술이라지만 몇 십분 그렇게 누워 있다 나오니 쌩쌩할 줄 알았건만, 진이 빠졌다.

나는 가만히 누워서 있으면 되는데 이렇게 지칠 줄이야.

집 앞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서

엄마가 집에서 왔다갔다하셨다.

(의사 선생님 표현을 쓰자면) 종양은 아무 문제 없는 녀석이었고, 드레싱을 하러 이후에 몇 번 방문할 때마다 살이 잘 아물고 있다고 수술이 아주 잘 되었다며 기분 좋은 표정을 보이셨다.

팔 상완 부분의 절반 이상을 쨌던 상처가

눈에 띄는 속도로 줄어드는 걸 실제로 지켜보면서 참 신기했다. 내 몸이 나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수술 후 한 보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흘렀나?

일정 크기부터 아무리 기다려도 상처가 줄어들지 않는다. 선생님은 상처가 동일한 속도로 줄어드는 건 아니니 일단 좀 더 지켜보자는 대답을 했다.

그 뒤로 하라는 대로 상처를 관리하고 약 바르고 신경 쓰며 지냈는데 지난 주 그 크기 그대로다. 더 이상 상처 크기에 변화가 없다.

수술은 잘 되었고, 상처도 문제 없이 아물어 가고 있으므로 병원에 방문하는 간격이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이제 곧 그만 와도 된다는 소식을 들을 것 같다.

몇 주가 흘렀는데 멈춘 그 크기 그대로다.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잠시 꽉 다물었다가 의사가 말을 꺼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한 이유는

상처 아물어 가는 모양을 보니 켈로이드 피부로 보이는데, 확실하게 하려고 조금 기다려 보자고 한 거였다.

켈로이드 피부, 들어는 봤는데!

내 피부가 그거라고...?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반가울 건 없는 내 몸의 비밀(?)을 하나

알게 되니 잠시 당혹스러웠다.

그러면 팔에 이.. 알 수 없는 흉터는 이 상태로 끝...?

정상 피부였으면 꿰맨 흉터가 다 사라졌을 거라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그래도 얼굴 같은 부위가 아니라 크게 신경 쓰이는 곳은 아니라 다행이라고 했다.

완벽주의자 의사 선생님은 ‘수술 전에 피부에 대해서도 검사를 해 볼 걸, 그럼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 봤을 텐데.. 아쉽네.’라며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며

팔에 있는 요상한 이 상처가 거슬리면

성형외과에 가서 흉터 제거술을 받으면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그 방법은 크게 추천하지 않는 게 흉터 없애려고 수술을 또 해야 할 가치가 없다고 하셨다. 또 마취주사 맞고 몸에 부담을 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득과 실을 따지면 안 하는 쪽이 몸에게 낫다는 이유였다.

나도 새끼손가락 정도의 작은 흉터를 굳이 몸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없애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2008년 봄부터 지금까지

그때 멈춘 그 크기 그대로 흉터가 그대로 있다.

*

나는, 요즘,

머리와 마음의 밑바탕에

‘왜 현재를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항상 띄워 놓고 지낸다.

현재에 머무는 것에 스스로 의구심이 들지 않게 하려고.

요즘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요즘이라고 적고, 의미하는 기간은 몇 년 전부터다.

아무튼 그런 상태로 지내는 최근 몇 년인데,

오늘 씻다가 실수로 까진 데를 건드려 딱지가 떨어졌다. 시간이 흘러 알아서 자연스럽게 떨어지면 느낌도 안 나는데, 의도치 않게 강제로 떼어내니 따끔거려서 눈을 잠시 감았다. 아.오. 괜찮네.

팔을 꺾어 상처를 보려는데

그 전에 흉터가 먼저 들어왔다.

켈로이드 피부라는 걸,

내가 이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알 수 있었을까?

꿰맨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서

더 이상 작아지지 않는 흉터를 직접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특이한 부분이 있다.

수술한 부위가 켈로이드 피부라고 해서

내 모든 피부가 켈로이드성이라고 장담할 수 없단다.

?



다 내 몸인데, 모든 피부에서 켈로이드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니. 그러니 국소적으로 나타나는 건지 전신적으로 나타나는지 지금으로썬(의사 선생님이랑 대화할 당시) 알 방도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괜찮다며, 그걸 알려고 할 필요도 없고 알아서 뭐에 쓸 거냐고(너무 맞는 말임ㅋㅋ) 하신다. 인체의 신비란...!

수술을 하지 않았거나 수술한 부위가 켈로이드성 피부가 아니어서 결국 모르고 살았어도 큰 문제가 없다. 내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은 전개될 가능성이 있지만, 생존을 결정하는 건 아니다.

알면 아는 거고,

모르면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로

살았을 거다.

이렇게 의도치 않았지만,

해 보고 나니 알게 되는 일도 있다.

해 보지 않았으면

내 피부가 켈로이드인지 뭔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때 켈로이드 피부라는 걸 알고 나니,

왜 중학생 때 뚫었던 귀가 그렇게도 잘 아물지도 않고!! 오랜 기간 내내 말썽이었는지 이해가 됐다. 내 머리 속에서 느낌표가 떴다. 같이 뚫은 친구들은 다 괜찮았는데, 나만 고생했던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구나.

상처가 생기고 치유되는 과정에서

켈로이드 체질인 걸 알 수 있다니.

그럼 상처가 없으면 모르는 거잖아...?

수술이 잘 끝났고

덕분에

나에 대해 하나 더 덤으로 알게 되었으니

운이 좋다고, 잘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그래서, ‘아, 여기 흉터 있었지.’라고 혼잣말을 하다가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

꼭 해 봐야 아나?

: 과거의 내가 (혹은 과거의 세상 사람들이) 보냈던 ‘지난 현재’에서 답을 얻는다. 도움을 받는다.

- 모든 현재는 내 과거가 된다. 지금 이 현재가 과거가 되었을 때 언제, 어떤 식으로 내게 해답을 줄지 모른다. 회계원리에서 ‘자산 = 부채 + 자본’이다. 내가 보낸 현재가 그 당시에는 나를 괴롭고 아프게 했더라도 과거가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모르지만 내게 도움을 주는 순간이 꼭 온다. 내게서 찾을 수 없는 지난 현재는, 세상 속 다른 이(들)의 지난 현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다. 이는 부채 개념이다.

VS

해 보니까 알겠던데?

: 새로운 데이터 획득(= 자본의 증가)이며, ‘나’에게 유효한 정보, 나만의 노하우나 센스의 습득이다. 일반화할 수 없는 경우도 있으나, 나 자신에 한해 확실한 의미가 있는 경험이다.

이러나 저러나 현재를 살아야 한다.

다른 이유로 동일한 결론이 나는 게 흥미롭다.

인생이야말로 진정 생각할수록..

나 자신과의 평생 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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