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여름에도

다정으로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by 유예린

모든 중요한 변화는 주로 여름에 일어나고는 했다. 이상할 만큼 자주. 지난 여름도 마찬가지였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던 것은 지독한 여름 감기를 앓고 난 다음이었다. 대학교 2학년. 거머쥐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모든 것이 내 통제 밖인 것만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무력감 같은 것들이 파도처럼 마음을 덮쳤던 시기였다. 이미 내린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 마음부터가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졌던 여름이었다.

당시의 나에게는 화해가 필요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권했던 재수의 길을 가는 대신 다른 방식을 택했던 내가 애써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주어야 했다. 대학 입시를 끝낸 뒤로는 제대로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고등학교 3년을 되짚어보고, 힘들게 선택했던 길이기에 후회는 죽어도 없어야 한다며 자신을 바짝 조인 채 1년 반을 버텨온 스스로를 마주해야만 했다.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 못하면 더는 나아갈 수 없을 것을 그 여름이 되어서야 알았다.


수능이 끝난 뒤에 가볍게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가 떨어졌던 적이 있었다. 당시 떨어졌던 이유는 제법 명확했다. 이렇다 할 연재 계획이 없었으니까. 글은 습관처럼 계속 썼지만 주기적으로 연재할 만한 소재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에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아직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것뿐이었다. 이미 그 시기에 마셨던 입시판에서의 고배가 너무 써서, 그 정도 실패는 실패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브런치에 대한 생각은 마음 한편에 남겨둔 채 몇 계절을 보냈다. 열심히 살았지만 어딘가 무기력했고, 매일이 불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껏 행복하지도 못했던 때였다.

그다음 해 여름은 유독 과거를 들춰보게 되었던 계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실패도 아니었던 실패에 머물러 있었던, 노력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스로에게 너무 박했던 그때. 대학 간판 하나가 3년, 혹은 그 이상의 최선을 부정해 버릴 수도 있는 세상을 향해서 내고 싶은 목소리가 생겼다. 무엇이든 정리하기에는 글 만한 것이 없었고, 그때 접어두었던 목표에 대한 생각이 났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한 계획란은 그렇게 채워졌다. 조용한 저항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숫자는 한 사람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고.

그 이야기가 브런치스토리팀에 설득력 있게 다가갔다는 것은 내게 다행인 일이었다. 부정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마추어일지언정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서는 스스로의 과거를 들춰보는 작업에 들어갔다. 하필이면 개강 시즌과 맞물리는 시기에 연재를 시작해 분주하기도 했지만, 활력소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고등학교에서의 3년과 입시 이후의 생활에 대한 소회를 정리하면서 회복할 수 있었다. 살 수 있었다. 무기력하게 느껴졌던 수많은 날 가운데서도 나는 잘 살아내고 싶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아직은 나도 잘 알지 못하는 그 열망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지만, 작은 소망이 있다면 '살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고작 몇 개의 문장만으로 누군가의 삶을 구해낼 대단한 능력 같은 것은 없지만, 잠시나마 누군가의 시간과 시선을 고통에서 돌려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잠깐 기대었다가 또 살 수 있는, 그 의지가 생길 수 있도록 돕는 글을 쓰고 싶다. 고백하자면, 글은 읽는 사람에게만큼이나 쓰는 사람에게도 그런 마음을 심어준다고 믿는다. 경험해 봤으니까. 잘 살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해본다. 타인만큼이나 나를 위해 펜을 든다고. 이런 마음에서 출발해도 괜찮은 거라면, 한 걸음씩 타인에게 그리고 세계를 향해 지경을 넓혀가는 일도 괜찮은 거라면, 나는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이곳에서 그 길을 찾아 대학생이 되면서 만난 거대한 산을 하나 넘었듯이, 앞으로도 계속.

여름은 또 올 것이다. 그때마다 마음을 담은 글이 누군가에게 가서 닿게끔 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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