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 부재의 장소
성벽은 돌이 아니라 공포라는 진흙으로 빚어진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침범당하는 존재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규범, 그리고 무엇보다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부드러운 폭력들이 들이닥칠 때 영혼은 본능적으로 빗장을 건다.
그것은 악의가 아니라 아직 파괴되지 않은 작은 방 하나를 지키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며, 침묵이 죽음처럼 두려운 자들만이 쉼 없이 방어의 언어를 내뱉어 성벽을 보수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조언을 한다는 것은 그를 나의 영토로 편입시키려는 제국주의적 발상과 닮아 있다.
진정한 조언의 능력이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오히려 혀를 포기하는 능력에 가깝다.
내 안의 확신을 비우지 않고 건네는 조언은 굶주린 자에게 던져주는 딱딱한 돌빵과 같아서, 배를 채우지 못하고 이빨만을 부러뜨릴 뿐이다.
진정한 조언자는 답을 주는 자가 아니라 상대의 심연 앞에 함께 서서 그 아득한 깊이를 함께 견뎌주는 자다.
비우고 내려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비축한 것을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언어 이전의 상태, 즉 부재의 장소로 돌아가는 일이다.
글을 쓰는 것이 읽는 사람을 고립시키는 일이듯, 조언 역시 상대가 스스로의 고독 속으로 깊이 침잠하여 그곳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듣게 하는 고립의 권유여야 한다.
내가 비워질 때 비로소 상대는 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빛을 발견한다.
결국 방어기제가 무너지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무너진 성벽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적군의 칼날이 아니라 생의 투명한 바람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텅 빈 손을 내밀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손을 잡을 수 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손만이 다른 손의 온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언의 완성은 입술의 움직임이 아니라,
서로의 빈 공간이 맞닿는 그 서늘하고도 명징한 접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