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경환 Jan 25. 2024

두 남편


조선 시대 하층민 부부의 경우 일부일처의 비율이 높지 않았다. 한 여자가 두 남편을 둔 경우가 열에 한 쌍 정도는 있었다.


상층 남성의 축첩이 예사로운 일이었으니, 하층 남성들은 취처의 기회가 많이 없었을 것이다. 처로 삼을 여자가 부족하니 할 수 없이 '소대남편'이라도 해야 했다. 소대남편은 후부(後夫)라고 하는데, 그는 본남편과 부인을 '공유'하였다.(혹은 부인이 두 남편을 '공유'하였다.)


하층 여성도 생활의 안정을 위해 한 남편에게만 의지할 수만은 없었다.


이렇게 볼 때, 다음 사설시조가 이해된다.


"민남진(본 남편 ) 그놈 자총 벙거지 쓴 놈, 소대서방 그놈은 삿 벙거지 쓴 놈 그놈,

민남진 그놈 자총 벙거지 쓴 놈은 빈논에 정어이(허수아비)로되, 밤중만 삿벙거지 쓴 놈 보면 샛별 본 듯하여라."

작가의 이전글 두 번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