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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o Jul 11. 2024

능지차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어서, 예를 들면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여섯 살 때 비 오는 날 엄마가 나를 유치원에 데리러 왔을 때였어. 수업은 이미 끝났고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남아있는 아이들과 고무로 된 공으로 채워진 풀장에서 놀았던 기억이 있지. 아마 나 가고도 한 두 명 정도는 어두컴컴한 비좁은 유치원실에 남아있었을 거야. 우스운 건 그때 놀았던 친구들이 모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처음 보는 아이들이어서 약간 데면데면했다는 느낌이 남아있어. 어찌 되었든 내가 하려는 말은 이게 아니었고 보통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유아기 때를 기억하기도 하고 하던데. 나는 전혀 그런 경우가 아니지. 뿐만이 아니라 어디 여행을 갔다 오거나 친구들과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던 날들도 구태여 사진 같은 것이 없다면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아. 심하게는 그저께 친구와 술을 마셨던 기억조차 다음날 숙취를 심하게 치른 뒤에 오늘이 되면 아주 먼 일처럼 느껴지기도 해. 머리가 나쁜 편인가 나는? 그래서 오래되지 않은 기억들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건가 봐. 나는 원체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가끔씩은 상대방이 조금 지루하다 싶을 때까지 붙어있고 싶어 해.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게 되지. 어쩌면 이건 모두 내 기억력이 썩 훌륭한 편이 아니기에 그새 기억들을 홀라당 모두 잊어버리고 너를 보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너를 찾을 때면 너의 생생한 나와의 기억들을 묻어두고 까마득히 오래된 사람을 만날 때처럼 나를 대해줘. 나는 언제나 너를 그렇게 찾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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