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의 양극화. 그 원인은 AI 일까

by 허태훈

산업현장에서 AI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단을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쪽에서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대량실업을 걱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생산성 혁명을 통해 보편적 고소득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먼저 바라보아야 할 것은 그 사이에 있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아야 한다. AI가 당장 사람을 대체하기 보다 “AI를 먼저 흡수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사이에서 생산성의 격차가 얼마나 빠르게 벌어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특히 그 압력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훨씬 더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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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정리한 산업별 시계열 데이터를 보면 2024년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인건비 효율 구조가 갈라지기 시작한 분기점으로 보인다. 주목한 지표는 노동소득분배율과 인적자원투자수익율(HCROI)이고 노동소득분배율은 기업이 만들어낸 부가가치 중 노동에 돌아가는 몫을, HCROI는 인건비가 얼마나 성과와 수익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두 지표를 함께 놓고 보면 2015년부터 2023년까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차이를 보이면서도 거시적인 흐름에서는 일정한 추세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2024년 들어 그 추세가 눈에 띄게 흔들린다.


정리한 연도별 시계열을 기준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피어슨 상관계수를 계산해보면 2015~2023년 노동소득분배율의 상관계수는 0.790, HCROI의 상관계수는 0.759였다. 다시 말해 두 집단은 지난 9년 동안 적어도 큰 흐름에서는 상당히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그러나 2024년을 포함하는 순간 노동소득분배율 상관계수는 0.661로, HCROI 상관계수는 0.662로 낮아진다. 변화폭은 각각 -0.129, -0.096이다. 단 한 해의 변화가 지난 10년의 추세를 이 정도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2024년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도드라지고 거시적 변화의 트리거가 되는 시작의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실제 산업별로 들어가 보면 이 분화는 더 선명해진다. 장기 흐름에서 대기업은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지고 HCROI가 높아지는 반면, 중소기업은 노동소득분배율이 올라가고 HCROI가 내려가는 방향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난 업종들이 있다. 의료용 물질 및 의약품(C21), 기타 기계 및 장비(C29), 의료·정밀·광학기기(C27), 자동차 및 트레일러(C30) 같은 업종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는 단지 몇몇 기업의 개별 사정이 아니라, 업종 수준에서 인건비 부담과 인적자본 효율이 비대칭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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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지점에서 OECD의 한국 AI 노동시장 보고서(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LABOUR MARKET IN KOREA © OECD/KOREA LABOR INSTITUTE 2025)는 중요한 해석 프레임을 제공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AI 도입은 이미 기업 규모별로 뚜렷한 격차를 보인다. 250인 이상 기업의 AI 도입률은 63.3%인 반면, 중소기업 전체의 도입율은 약 31% 수준에 머문다. 더 중요한 것은 비도입 중소기업의 53%가 직원의 역량 부족을 가장 큰 장벽으로 꼽는다는 점이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기술을 조직의 일하는 방식 안에 녹여낼 사람과 체계가 부족한 것이다.


위 보고서에서는 한국에 AI가 즉각적인 대규모 고용감소를 가져오진 못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여기에 안심해서는 안된다. 위험은 해고보다 생산성의 재편에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AI를 더 빠르게 흡수한 기업은 같은 인건비로 더 높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사람을 유지한 채 성과 연결이 약해질 수 있다. 이때 중소기업이 마주하는 문제는 “AI 때문에 사람이 줄까”가 아니라 “AI를 활용하지 못해 같은 사람으로도 더 적은 성과를 내게 될까”에 가깝다.


대기업은 AI와 디지털 도구를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고부가가치 영역을 재설계하고 그 결과 노동소득분배율을 낮추면서도 HCROI를 방어하거나 높일 수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사람을 줄이지도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사람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체계도 충분히 만들지 못한 채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구조에 갇힐 위험이 있다. 이 경우 양극화는 실업의 형태보다 먼저 성과를 흡수하는 기업과 비용을 떠안는 기업의 격차로 나타날 것이고 그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임금지불 여력, 채용 경쟁력, 핵심인재의 유지 능력 등의 차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즉 되는 곳만 더 되는 악순환으로 커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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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소기업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AI가 사람을 대체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먼저 AI를 일의 방식으로 바꿔낼 것인가” 이다. 이미 일부 산업에서는 그 차이가 노동소득분배율과 HCROI의 흐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뒤처질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중소기업의 경영 의사결정의 기회비용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존재하는 수 많은 AI 기술을 현장의 언어로 트랜스포머(transformer) 하고 어텐션(attention) 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E.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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