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썩은내가 진동하던 수영장

테라스에서 바라본 야외수영장의 야경

by 선옥

나름? 꾸준히 이어오던 글쓰기를 몇 주간 멈추게 된 계기는 새롭게 수영장을 출근하면서부터였다.


그동안 파트타임 강습만 해오던 나는, 한 아파트 커뮤니티 수영장의 오전 정직원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지난 8월 수영장 공사로 인해 인천대학교 새벽 강습을 그만둔 뒤, 나는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이 그대로 유지될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새벽은커녕 늦은 오전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뜨는 날들이 반복됐다.


강습을 위해 몸을 일으키던 오전 4시 30분보다, 오로지 나의 의지력으로 눈을 떠야 하는 오전 8시가 훨씬 더 힘들었다.


나는 줄어든 수입만큼 늘어난 시간을 알차게 써보려 애썼지만, 의지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새벽을 잊고 지낸 지 어느덧 3개월. 더는 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오후에 파트로 일하던 곳에서 오전 정직원이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다렸지만 그 사람은 매달 퇴사를 미루어 마냥 기다리기를 반복하던 중 집 근처 호수가 보이는 어느 신축 아파트 수영장에서 구인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력서를 넣었고 다음날 면접을 보러 오란 연락을 받았다.


해가 진 뒤 도착한 그곳은 입주한 지 1년 남짓 된 아파트답게 세련된 모습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단지 앞 호수와 아파트의 야경들이 상당히 멋스러웠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을 지나 들어간 커뮤니티 내부 시설은 멋스럽게 지어진 외관과 달리 다소 어수선하고 난잡한 상태였다.


공사는 끝났지만 정리되지 않은 짐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온갖 먼지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센터장과 면접을 보았고 나는 당장 이틀 뒤부터 출근하기로 하였다.


센터장이 더 궁금한 게 있냐는 물음에 일하게 될 강사실과 수영장을 좀 둘러보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센터장은 나를 수영장으로 데려가기 위해 탕을 지나갔는데 상황은 안내데스크보다 훨씬 심각했다.


사우나 탕에 있는 물은 고여서 썩은 내가 진동하였고 공사의 흔적들로 온갖 모래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 탕을 지나 도착한 수영장은 상태가 더 심각했다. 물은 빠져 있어 물이 썩어 냄새가 고약하진 않았지만 수영장 바닥 위를 뒤덮은 이끼부터 지저분한 바닥과 운영에 필요한 물품들은 박스 채 쌓여 방치되어 있었다.


‘당장 모레가 출근인데, 이게 가능할까?’ 도저히 운영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탕에서 올라오는 썩은 물 비린내와 먼지투성이 바닥을 밟으며 걱정이 앞섰다. 과연 하루 만에 청소업체가 이 난장판을 수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던 그 찰나, 수영장 안쪽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나의 불안은 눈 녹듯 사라졌다.


커뮤니티 수영장은 호텔 수영장을 방불케 하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펼쳐져 있었다. 일렬로 놓인 선베드는 마치 호캉스를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무엇보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호수의 야경과 아파트들의 반짝이는 불빛이 마치 쏟아지는 별빛처럼 아름다웠다. 그 광경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호텔식으로 꾸며 놓느라 수영장은 정식 규격보다 작고 레인 수도 적었지만, 아기자기한 유아풀과 별도의 야외풀까지 갖춰져 있었다. 통창을 열고 테라스에 놓인 야외풀로 나와보니 한겨울의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지만 추운 것보다 너무 아름다운 야경에 나는 무더운 여름 시원한 바람을 맞는 기분으로 야외수영장 너머 보이는 야경을 바라보았다.


청소되지 않은 먼지와 물때의 불쾌함은 어느새 희미해졌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다면 매일이 설렐 것만 같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아님에도 이렇게 예쁜 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니 감사했다. 수영강습 자체만으로도 나는 즐거운데 여기서 강습을 하다 보게 되는 풍경은 얼마나 예쁠까? 합격의 기쁨과 수영장의 아름다움을 한껏 품에 안은채 나는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다시 바라본 아파트의 외관은 평범한 주거 공간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처럼 당당하고 멋스럽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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