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과학
디지털 세계에서 2의 10승, 1024는 오래도록 1킬로로 불렸다. 숫자는 정확했지만, 이름은 시처럼 중의적이다. 컴퓨터의 기억은 늘 둘씩 나뉘는 숲처럼 자랐다. 1, 2, 4, 8, 16 … 그러다 숨을 고르면 1024, 사람들은 그 지점에 킬로라는 푯말을 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현실의 세계에서 SI 단위계가 조용히 말한다. “킬로는 1000이다.” 그래서 지금 이진의 숲에서 킬로는 1024로 불리기도 하고, 1000으로 불리기도 한다. 살짝 디지털의 입장에 서서 변명하자면, 지금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부르는 중이다.
요즘 부쩍 자주 들리는 단위인 기가의 본원적 의미는 무엇일까? 기가의 뿌리는 숫자가 아니라, 몸집에서 시작된다. 그 어원은 거인, 신들과 싸우던 땅의 자식들이다. 산을 들어 올리고, 하늘에 돌을 던지던 존재들. 그래서 기가는 처음부터 정확한 크기를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속삭였을 뿐이다. “엄청나게 큰 것, 인간의 감각을 넘어서는 것”
시간이 흘러, 과학이 세계를 재단하려 들 때, 이 거인의 이름은 십억(10의 9승) 숫자로 길들여진다. 기가의 본원적 의미를 숫자로 환원하면, 놓치는 것이 있다. 기가는 단위가 되기 전, 경외의 감정이었다. 너무 커서 이름부터 과장해 버린 상태.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말한다. 기가 막힌다. 기가 차다.
다음 단위인 테라(10의 12승)는 거인보다 한 단계 더 내려와, 땅 그 자체가 된 이름이다. 테라의 어원은 단순하고도 무겁다. 대지, 토양, 발밑의 세계. 기가가 하늘을 가리키는 거인의 어깨라면, 테라는 그 거인이 서 있던 땅의 무게다. 흔들리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일까?
기가가 사건이라면, 테라는 환경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기가바이트까지는 파일로 느끼고, 테라바이트부터는 세상으로 느낀다.” 숫자가 되기 전의 테라는 우리가 밟고 서서 다음 단위를 꿈꾸게 만드는 조용한 대지였다. 따라서 테라의 본원적 의미는 결국 셀 수 없는 크기가 아니라, 그 위에 삶이 얹히는 크기이다.
테라의 다음 단위는 페타(10의 15승)라고 불린다. 테라가 대지라면, 페타는 그 대지 아래 숨어 있는 지층이다. 시간이 눌려 쌓인 형태조차 기억을 잃는 무게. 결국, 페타급 데이터는 개인이 느낄 수 있는 용량이 아니다. 이건 사회 전체가 감당하는 무게이고, 문명이 떠안는 기억이다.
다음은 엑사(10의 18승)이다. 엑사는 그리스어로 여섯이다. 천을 여섯 번 겹쳐 쌓았다는 표식이다. 기가, 테라, 페타까지는 비유와 감정, 땅과 바위의 언어였다면, 엑사에 이르러, 언어는 산술이 된다. 엑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미를 붙이지 말고, 그냥 계산해라.”
다음은 제타(10의 21승)이다. 그 이름의 뿌리는 라틴어로 일곱이라는 뜻이다. 이건 천을 일곱 번 겹친 자리라는 표식이다. 제타는 어느 문명의 고유 수가 아니다. 그보다는 문명이 커졌을 때, 더 이상 이름이 없어서 고대 언어에서 빌려온 숫자다.
의미를 조금 더 서정적으로 말하면, 기가까지는 놀랐고, 테라에서는 지탱했으며, 페타에서는 기억했고, 엑사에서는 계산했다. 제타에 이르면, 인간은 더 이상 주체가 아니다. 제타는 개인의 데이터도, 국가의 기록도 아니다. 이건 지구 전체가 남기는 흔적, 문명 전체의 발자국이다.
제타란 이제 인간 하나의 삶으로는 도저히 책임질 수 없는 양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제타는 한 국가의 숫자도 아니고, 어느 신화의 숫자도 아니다. 그저 너무 커져버린 세계를 조용히 세기 위해, 일곱 번 숨을 고른 자리의 숲이다.
이러한 제타의 7은 개수의 7이 아니다. 층위의 7이다. 기가는 첫 번째 도약이었고, 테라는 땅이 되었으며, 페타는 기억의 압력이 되었고, 엑사는 의미를 벗겨냈다. 그리고 제타에서 우리는 말한다. “이제는 하나를 더 세는 것이 아니라, 한 세계를 통째로 포개는 일이다.”
그래서 7은 상징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셀 수 있는 마지막 방식이다. 그 이후에는 감각이 아니라, 지층도로 남는다. 다만 1000을 일곱 번 겹쳤다는 정의는 숫자가 아니라, 인간이 거대한 세계를 접어서 들고 가기 위한 마지막 손짓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