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상이 있는 정물의 메타포

창작 편집

고흐의 작품 도록을 읽다가, ‘석고상이 있는 정물’에 눈길이 멈춘다. 고흐가 좋아하는 노란색의 햇살인지, 벽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구조물 오른쪽 위에 토르소 석고상이 서 있다. 그 왼쪽 아래에 두 권의 책이 나란히 놓여 있다. 아직 읽지 못한 ‘제르미나 라세르트’와 ‘벨아미’다. 그 왼쪽 아래에 핀 듯 시든 듯 한 장미 세 송이가 배치된다.

‘석고상이 있는 정물’은 전체적으로 고흐 특유의 짧고 강한 붓질이 긁듯 칠해져 있다. 표면은 매끈하지 않아서 고흐 자신의 상처를 표현하며 거칠다. 고흐가 정물을 그린 공간이 그렇듯, ‘석고상이 있는 정물’의 방도 정리되지 않고, 고흐의 감정이 흐르고 있다.

‘석고상이 있는 정물’의 주요 오브제는 제목에 등장하는 석고상, ‘제르미나 라세르트’와 ‘벨아미’ 2권의 소설책, 장미 세 송이다. 세 가지 오브제의 맥락이 단박에 연결되지는 않는다. 일단 석고상을 주목한다. 우리 주변에서 댓생 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석고상이다. 이 석고상은 르네상스 시대의 비례와 균형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지만 생동감은 없어 보인다. 이 석고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지 않는 것은 고흐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기 위한 것일까?

나는 이 석고상이 전통적인 예술적 아름다움을 표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흐에게는 이 석고상은 과거의 예술관을 담은 조각이어서, 시간 속에 굳어버린 미의 화석이다. 그래서 고흐가 추구할 예술적 가치는 아니라고 여겨, 중심이 아닌 옆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제르미나 라세르트’와 ‘벨아미’ 2권의 소설책을 살펴본다. 나는 이 소설책들을 잘 모른다. ‘제르미나 라세르트’를 검색하니, “에드몽의 소설로, 주인공 제르미나는 하녀로 살면서 욕망과 절망 사이에서 서서히 무너져 가는 여성”이라고 설명한다. 반면에, ‘벨아미’는 “모파상의 소설로, 주인공 벨아미는 언론과 권력을 타고 끝없이 신분 상승을 추구하는 남성”이라고 설명한다.

고흐는 ‘제르미나 라세르트’로는 가난으로 고통받는 인간을 그리고 있고, ‘벨아미’로는 타락한 성공을 추구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고흐는 둘 중 어느 인간상을 추구하면서 살았을까? 일단 고흐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벨아미’와는 거리가 멀다. 고흐는 돈이 되는 그림 대신 인기 없는 밀밭을 주로 그렸다.

그렇다고 해서, 고흐가 ‘제르미나 라세르트’같은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는 화를 자주 냈고, 사랑에 집착했으며, 술에 기대서 살았다. 그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의 인생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고흐는 타락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고흐는 ‘제르미나 라세르트’같은 삶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주로 가난한 사람들, 힘든 노동자들의 얼굴을 그렸다. 그는 ‘벨아미’의 삶을 거부하며, ‘제르미나 라세르트’를 이해하려 했다. 어쩌면, ‘제르미나’에서는 고흐 자신의 얼굴을 봤을 수도 있다. 고흐는 성공을 추구하지 않았지만, 가난으로 무너졌다. 그렇지만 끝까지 자신을 속이지는 않았다.

한편, 책 옆에 그린 장미 세 송이는 무슨 의미일까? 이 장미들은 막 꺾은 생화처럼 싱싱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완전히 말라비틀어지지도 않았다. 고흐는 이 장미 세 송이를 통해, 살아 있음과 사라짐의 경계에 놓인 자신을 투사한 것일까?

나는 ‘석고상이 있는 정물’이 고흐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 석고상은 자신이 거리를 두고 싶은 이미 굳어 있는 아름다움을, 2권의 소설책은 자신이 거부하는 인간상과 자신이 이해하는 인간상을, 세 송이 장미는 사라질 자신의 인생을 표현한 것이다.

급속히 변화하는 산업 사회 한가운데에서의 자기 얼굴을 직접 그리지 않고, 장미 세 송이와 2권의 소설책으로 그린 고흐가 애잔하다. 공장이 인간의 하루를 삼키던 시대, 사람들은 점점 부품으로 전락해 갔다. 그 속에서 고흐는 성공의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아니 그는 그 궤도에 올라타는 것을 거부했다.

그의 석고상을 다시 보니, 망치를 들고 신전을 부수려 했던 니체가 떠오른다. 고흐는 니체처럼 철학으로 과거의 가치관을 전복하지는 않았지만, 떨리는 붓으로 그린 색과 정물로 과거의 아름다움을 흔드는 자유시를 말없이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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