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1월 문학싸롱 도서는 이동애, 이동희 작가의 ‘집에 가고 싶다’이다. 이번 달이 더 기대되는 것은 두 분 작가를 모시고,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점이다. 내가 독서 모임에 나간 이래로 작가가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독서 모임 전에 독후감을 써본다.
나는 이동희 작가가 한·몽골 국제 공룡탐사대와 동행하면서 보낸 경험을 담담하게 담은 ‘고비사막에서 보낸 40일’이 가장 흥미롭다. “오래된 연대(Deep Time)에 익숙한 고생물학자들은 몇 년의 연구 기간을 상대적으로 짧게 느끼는 것 같았다. 새로운 공룡을 발굴하겠다는 열정과 호기심, 또한 목표를 이루겠다는 강한 집념이 있었다. 이런 마음가짐이 시간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흘러가게 만들어 오랜 연구 과정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1998년 7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변리사 시험 수험생으로 지냈다. 당시에는 4월 초에 1차 시험을 치르고, 1차 합격생들은 당해와 이듬해 8월 초에 2차 시험을 봤으며, 합격 통보는 12월에 발표됐다. 나는 1999년 4월 초에 처음으로 1차 시험에 응시했지만, 낙방했다. 그리고 권토중래하며, 2000년 4월에 다시 1차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데, 스터디 멤버가 흥분하며 말했다. “형, 일 년이 후딱 지나가네요.” 나는 바로 질문을 날렸다. “근데, 우리는 시험 주기가 1년이라서 그런지, 1년이 한 달 같은데, 국회의원 지망생은 4년이 한 달 같을까?” 그러자 그는 바로 답변했다. “게내들도 중간에 지방 선거 있잖아요!”
나와 그는 둘 다 1차 시험에 통과해, 그 이듬해 8월까지 열심히 공부하며, 2차 시험을 치렀다. 지금 생각하니, 변리사 수험 생활의 주기는 2년이었다. 8월 2차 시험이 끝나고, 합격을 기다리는 4개월은 너무 따분했다. 흔히들 군대에서 제대를 기다리는 말년 병장들은 블러핑 한다. “1초가 여삼추네!” 한 번의 숨이 세 번의 가을을 건너는 것 같다. 멋지기도 하고, 뻥이 쎄기도 하다.
중국인들이 일 초를 삼 년에 비유한 것은 시간의 길이를 과장한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밀도를 키운 것이다. 그 짧은 찰나 안에 세 번의 가을이 쌓이는 무게를 개켜 넣은 것은 우리 마음 심연 속으로 끝없이 내려가는 상상의 나래다. 나도 이때 1초가 여삼추라는 감각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느리게 가는 시간 열차를 타고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산업화 시대가 되기 전까지, 농번기와 농한기라는 자연이 건네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 감각으로 살았다. 농번기의 감각은 햇볕처럼 빠르다. 해가 뜨면 농사일이 시작되고, 해가 지면 하루를 마친다. 선조들의 땀 속에서는 초침이 들리지 않았으며, 해의 움직임을 따라 살아갔다.
반면에, 농한기의 감각은 눈 위에 내려앉은 발자국이다. 하루하루는 또렷이 느껴지지만, 기나긴 동지의 밤처럼 침묵의 깊이가 끝없이 이어진다. 동지의 밤이 태양이 돌아온다는 신호라면, 농한기는 농부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이다. 농부들은 농한기의 긴 밤 동안 다음 계절을 준비했지만, 나는 수험생 농한기 동안에 마냥 킬링 타임만을 했을 뿐이었다.
문득 고생물학자들의 삶도 농번기와 농한기가 있을지 궁금하다. 그들에게는 발굴 현장에 나가 있는 계절이 농번기일까? 사막 모래 속에서 공룡 뼈의 윤곽을 붓으로 털어내며 더듬는 날들은 순식간에 저물 것이다. 반면에 연구실로 돌아오면, 털어낸 공룡 화석을 들여다보며, 연대를 재고, 공룡의 이름을 붙이며, 논문을 쓸 것이다.
현재 산업 사회에서는 농번기와 농한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컴퓨터의 불빛은 밤과 낮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제는 비와 햇볕이 아니라, 마감 시한과 성과표만이 도착한다. 계절 대신 분기마다 실적의 압박이 밀려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농한기를 이야기하면, 게으름을 조장한다고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회고해 보니, 여삼추 같았던 농한기 수험 시절이 그립다. 농번기와 농한기는 순환적이다. 농번기는 밖으로 향하는 시간이고, 농한기는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이 순환은 시계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자연의 리듬에 맞춰 유연하게 흔들린다. 우리는 매년 같은 계절을 맞이하지만, 결코 예전과 같지 않다. 각자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농한기를 마련하길 바래본다.
집에 가고 싶다:이동애·이동희 지음/말하는 나무/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