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수용하기

민낯

지중해의 한 섬에서 살면서 감미로운 노래로 항해하는 선원들을 유혹하여 선박을 난파시키는 세이렌은 긴 머리의 아름다운 여인이나 인어로 묘사되며, 남자를 홀리는 마녀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세이렌이 노래와 연주 솜씨가 뛰어난 두 자매로 등장한다. 오디세우스는 여신 ‘키르케’의 조언을 받아들여, 밀랍으로 선원들의 귀를 막고, 오디세우스는 귀를 막지 않고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들어보고 싶어 자신의 몸을 배에 묶으라고 부탁한다.

오디세우스가 탄 배가 세이렌 자매에게 다가가자 세이렌 자매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한다. 아무리 세이렌 자매가 유혹해도, 선원들은 오디세우스를 더욱 꽁꽁 묶으며 노래에 유혹된 오디세우스를 꼼짝 못 하게 해서 무사히 세이렌 자매의 영역을 통과한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에 대처했던 방식과는 정반대로 대응한 영웅은 바로 ‘이아손’이다. 이아손은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의 조카지만, 삼촌은 이아손에게 왕위를 빼앗길 것이 두려워 용이 지키고 있는 황금 양털을 가져오라는 임무를 내린다. 이아손은 ‘아르고호’를 만들고 그리스의 숫한 영웅들을 모아 원정을 떠난다. 원정단의 영웅에는 헤라클레스도 포함되지만, 그는 중간 기항지에서 소리 소문 없이 퇴장한다.

메데이아는 아이에테스 왕의 딸이지만, 미남 이아손을 도와 용을 약으로 잠재우고 황금 양털을 가지고 아이에테스의 왕국에서 도망간다. 아이에테스가 이아손과 메데이아를 쫓아오자, 메데이아는 자신의 남동생 압시트로스를 죽여서 바다에 던지고, 아이에테스는 아들의 시신을 찾느라 아르고호를 놓친다.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고향 이올코스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세이렌을 만난다. 이아손은 세이렌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원정을 떠날 때, 리라 연주로 유명한 ‘오르페우스’를 태운다. 이아손의 아르고호가 세이렌의 영역에 도달하자, 세이렌이 매혹적인 노래를 부르지만,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리라를 연주하고 원정대원은 세이렌의 노랫소리 대신에 오르페우스의 리라 소리를 들으며 계속해서 노를 젓는다. 이를 지켜본 세이렌은 좌절하며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유혹이 다가올 때 그 유혹을 오디세우스처럼 수용하는 방식으로 벗어날지, 이아손의 제압하는 방식으로 벗어날지는 각자 선택의 몫이다. 얼핏 보면, 이아손의 방식이 더 멋있다. 이아손은 이올코스의 왕이 되고, 메데이아와 아들 둘을 낳고 10년간 잘 산다. 그러다가 코린토스의 공주 ‘글라우케’에게 결혼 제안이 들어오니 그 제안에 솔깃하여 메데이아를 버리고 글라우케와 결혼한다.

자신을 버리고 글라우케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분개한 메데이아는 글라우케, 글라우케의 아버지 ‘크레온’, 자신의 두 아들을 살해하고 멀리 도망간다. 실의에 빠진 이아손은 얼이 빠진 채로 정박해 있던 아르고호에 기대어 있다가 썩은 나무 더미가 머리에 떨어져 허무하게 죽는다.

반면에,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아를 파괴한 영웅이었지만, 자신의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는 동안에 숫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가슴속에 고통을 참는 마음을 가지며 꿋꿋이 참아내 이타케로 돌아간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아를 정복한 명성으로 교만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자만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의 단골 화두 ‘휴브리스’는 오디세우스와 관련해서는 단 한 번 나온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니(Nobody)’로 속이고 외눈박이 ‘폴뤼페모스’의 눈을 찌른 후에, 폴뤼페모스의 동료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자, 그의 동굴을 무사히 탈출하면서 폴뤼페모스를 조롱하는 말을 던진다. 이후에 포세이돈에게 찍힌 오디세우스는 엄청난 고초를 겪은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그런지 오디세우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유혹을 수용하면서 우회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아손은 자신의 실력보다는 주변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손쉽게 극복하여 황금 양털을 얻어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유혹은 오르페우스의 도움으로 제압해 버렸다. 그에게는 거듭되는 동료들의 도움이 오히려 독이 되어, 결정적인 순간에 교만에 빠져서 조강지처인 메데이아를 버렸다가, 메데이아의 엄청난 복수에 넋이 나가 너무도 허망하게 하데스의 집으로 향한다.

우리 조상들은 20대 초반에 과거에 합격하면, ‘소년등과 부득호사’라고 말하며, 자만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주문했다. 이율곡은 생원 및 진사과를 9번 장원 급제해서, ‘구도장원공’이라 불렸다. 요즘으로 치면, 사법고시의 1차, 2차 및 3차를 모두 수석으로 합격한 셈이다. 그는 선조의 신임을 얻기는 했지만, 그 자신을 알아주는 동료들이 거의 없어, 홀로 개혁을 수행하는데 정진하다가,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47세에 쓸쓸히 유명을 달리했다.

나는 소싯적에는 이아손이 너무 멋져 보였다. 그의 영어 이름 ‘Jayson’을 나의 아이디로 쓰면서 그의 방식을 칭송했다. 그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고난이나 유혹을 제압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그런데 제압하는 것은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나는 선지자처럼 행동하며, 다른 사람들이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지금 회고해 보니, 나도 이아손처럼 휴브리스에 빠졌던 것이다.

세상의 큰 파도에 맞서서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만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라 다짐하면서 나 스스로 세상의 큰 파도에 물러서지 않았다. 요즘 오디세이아를 천천히 읽어 보니, 다가오는 유혹을 수용하면서 우회하는 방식으로 극복하는 오디세우스의 삶이 더 지혜로운 것이 아닐까 퍼뜩 나를 일깨운다.

오디세이아:호메로스 지음/천병희 옮김/도서출판숲/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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