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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Sep 03. 2023

고양이 똥 감별사

임금님과 고양이의 공통점

 여보, 다옹이 똥 쌌어!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아내가 말했다. 고양이 화장실은 신발장 바로 앞에 있어서 냄새가 가장 먼저 방문자를 마중나왔다. 근데 왜 나만 똥을 치워야 하는 거야? 애잔하게 궁시렁거리며 모래 속에 감춰진 진주, 아니 똥을 채취했다. 똥과 모래를 한 삽 푸고 나서 까불러 똥만 걸러내는 작업을 했다. 마치 농부가 키질을 하며 알곡과 쭉정이를 걸러내듯 정성껏 위아래로 흔들었다. 모래는 아래로 내려보내고 튼실한 똥 알갱이만을 수확하고 나면 묘하게 뿌듯했다. 홈프로텍터, 전업자녀 같은 풍자적인 신조어가 난무하는 요즘 나의 두 번째 직업은 고양이 똥 감별사 정도 되겠다. 고양잇과 동물은 주로 단백질을 섭취하기 때문에 대변 냄새가 지독했다. 아내, 아니 사람의 경우에도 계란이나 고기를 섭취하면 단백질에 들어있는 황 성분이 대장에서 분해되면서 황화수소 가스가 만들어졌다. 고양이 변 냄새는 사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작업할 때는 숨을 참아야 할 정도였다. 변의 형태를 보면 고양이의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색은 갈색이 정상인데, 노란색, 초록색, 흰색일 경우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존재했다. 냄새가 유독 더 심한 경우에는 위장에 생긴 염증을 의심할 수 있었다. 대변을 누는 횟수가 잦으면 과식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설사일 경우 특별히 주의해야 했는데, 세균에 의한 감염이나 소화불량, 스트레스 등 증상에 따라 위험도가 달랐다. 변비가 있거나 딱딱한 똥을 누면 음수량을 늘리거나 유산균을 먹여야 했다. 나는 언제부터 그리고 왜 때문에 변 감별사 같은 것이 되고 말았을까. 초등학교 때 내 장래희망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조선시대 왕의 주치의였던 어의를 다른 말로 상분직(嘗糞職)이라고 했다. 매일 임금의 똥을 진단하며 건강을 살피는 직책이란 의미였다. 임금은 뒷간 대신 '매우틀'이란 것을 썼다. 엉덩이가 닿는 부분이 비단으로 만들어진 요강 같은 그릇이었다. 임금이 변을 보고 나면 내시나 나인이 어의에게 가져갔다고 했다. 어의는 왕의 똥 변화를 살핀 후 건강 체크와 식단 관리까지 했다. 뭐야, 나랑 하는 일이 똑같잖아. 여보, 내가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직업이 어의였어. 어의! 아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이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임금님 털이나 밀어!


 나이드는 것은 마치 고양이 모래 삽으로 삶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 분리하는 일과 같았다. 20대까지의 나는 그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정리하지 못해 끌려다녔다. 사람을 사귈 때도 촘촘한 거름망을 통하지 않았다. 자의와 관계없이 형성된 무리 속에서 거절하지 못하고 대인관계를 형성하였다. 매사 부정적인 사람,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 비인격적인 사람 등을 삶의 울타리 안에 그냥 두고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중요시하는 삶의 가치도 변화하기 마련이었다. 혈기 왕성할 때 좇던 우정, 의리 같은 가치는 더이상 우선순위 안에 들지 못했다. 술도 그랬다. 체질 상 몸에 맞지 않았다. 술은 나를 비이성적으로 만들었고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했다. 먹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들이켜다 토하고 다시 마시고를 반복했다. 취하지 않으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줄 알았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줄 알았다. 그 시절 내가 낙오되었던 이유는 술을 못 먹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해야만 했던 일을 미루고 뜬구름 잡듯 대강 살았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불필요한 생활 패턴, 습관과도 서서히 작별하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은 유지하고자 했을 때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라서 의지를 거두자 저절로 단절되었다. 정작 어려운 것은 필요와 불요를 구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었다.

 키를 가지고 까붐질할 때 착, 하고 경쾌하고 힘있는 소리가 났다. 알곡과 껍데기가 공중으로 솟아오를 때마다 중력과 마찰력 따위로 인해 서서히 나뉘었다. 쉽게 벗겨질 것 같지 않던 껍질은 어느덧 분리되어 땅으로 떨어지고 알맹이만 가지런히 자리잡혀 정리되었다. 고양이가 화장실에 다녀갈수록 모래는 배설물로 인해 오염되었다. 더러워진 모래를 버리고 새 모래를 채웠다. 충직한 어의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새것이 주는 신선함이 좋았는지 아옹이가 모래 위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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