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에 들다

철원 문학기행 중에서

by 은월 김혜숙

개망초와 금계국
고요한 길목마다 피었고

총부리 맞선 날들,
투쟁은 스스로를 겨누다
이제는 바람만 문을 여닫는다

앙상한 뼈대만 남은 자리
누구는 이 땅이 풍요롭다 했지만
전쟁이 스친 그늘 아래
손과 다리에 남은 파편의 흔적은
기다림이 되어 남아 있었다

짐을 꾸려 떠난 사람들
그러나 남은 자들의 안간힘이
기계음 되어 돌아오고

시대를 건너
외설처럼 세워진 호기로운 건물들 곁에
정성스레 지은 작은 집 하나, 상점 둘셋
타지에서 온 발길을 맞는다

철원평야 위로 날아든 새들
그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을 꿈꾸지만
그마저도 지평선 너머로 번진
희뿌연 염원일 뿐

녹슨 철길은
말없이 시간을 견디며 때를 기다린다

열변 토하는 시인 하나
과거의 증인으로 남아
묵은 책더미 위에 손을 얹는다
지뢰꽃보다 더 슬픈 그 손가락

소이산 아래
슬픔은 땅속에 묻혔고
그 위로 핀 꽃은
우리 가슴에 무의미한
바람구멍 하나 남겼다

오랜 세월
누군가는 기다리다 지치고
누군가는 갈망하다 지쳤지만
이제 서로 마주한 얼굴엔
지뢰꽃 말고, 지천에 핀 개망초
혹한을 견뎌낸 사락 눈꽃 말고

상처 난 가슴엔
깨끗이 기름을 붓고
녹을 제거하고 바람구멍을 메우며

시인의 주름진 얼굴도 서서히 펴지기를


[ 철원에 들다 ]ㅡ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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