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에 100억이 있다면, 생각실험

상상력과 실존적 자유에 대한 고찰

by 신아르케

만약 지금 내 통장에 100억 원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살까? 이 단순한 가정은 실은 내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을 비추는 철학적 거울이다. 우리는 흔히 돈이 있다면 자유로워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 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돈으로부터의 해방인가, 아니면 돈이 없을 때 억눌렸던 자아의 해방인가? 이러한 질문은 내 정체성과 삶의 태도를 재점검하게 만든다.

생각실험의 전제는 분명하다. 지금 계좌에 100억이 있다면, 나는 과연 지금처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할까? 내 대답은 그렇다. 나는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생계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자신의 유용성이 타인에게 확인될 때 발생하는 자기 효용감이다. 나의 능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것이 다시 나의 존재를 확증해 주는 이 감정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고귀한 감각이다.

행복은 단순한 소비에 있지 않다. 계좌에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무위도식의 삶이 진정한 만족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며, 그 성취가 지속될 때 삶에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나는 수업의 양을 줄이고, 평일에 하루 이틀쯤은 여행이나 독서, 글쓰기를 하며 지내겠지만, 수업 자체는 늙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는 계속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내게 가장 자연스러운 자기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내가 운영하는 학원도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선택한 여가의 일환이다. 이 일을 그만두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나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100억이 계좌에 있다는 상상이 가능하다면, 나는 이 일을 당장의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더욱 소신껏 운영할 수 있다. 이는 상상이지만, 삶을 조급하지 않게 해주는 내면의 자유로 작용한다.

재력이 있다면 더 큰 집을 사고 싶을까? 아마도 아니다. 지금의 공간은 내 가족에게 충분히 쾌적하고 익숙하다. 굳이 이 터전을 떠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리모델링이나 에어컨 교체 같은 실용적 변화 외에 내가 원하는 것은 없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많은 돈이 있다고 해서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건강을 위해 절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소비의 크기보다 소비의 목적이 삶을 결정짓는다.

나는 명품에 관심이 없고, 독서와 글쓰기가 취미이며, 차에 대한 약간의 허영심은 있지만 지금의 차도 충분하다. 언젠가 차량을 바꾼다면, 그건 필요와 편의의 문제이지 과시의 수단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좋은 것을 가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되어, 삶의 갈망이 사라진다. 인간의 행복은 완전한 만족보다, 그 만족을 향한 절제된 노력 속에서 형성된다.

절제가 없는 부는 방향을 잃기 쉽다. 재벌 2세, 3세들 중 일부가 인생의 허무 속에 빠져 쾌락으로 자신을 소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충분히 부유하지만, 절차적 성취 없이 주어진 재산은 정체성을 허물고 삶의 의욕을 빼앗는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직접 성취한 것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기 확신을 얻는다.

이 모든 생각 실험의 결론은 분명하다. 계좌에 100억이 있어도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상이 주는 해방감 덕분에 나는 더 당당하게, 더 느긋하게 삶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 있는지조차 불확실한 숫자일지라도, 그것이 내 삶의 태도를 바꾸는 데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면, 그 상상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실재’와 ‘환상’을 구분하지만, 통장에 찍힌 숫자 역시 실물화폐가 아닌 전자적 기호에 불과하다. 인간만이 그것을 ‘가치’라고 인정하며, 그로 인해 삶의 방식까지 바꾼다. 오랑우탄에게 100억 원을 보여줘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상상력과 믿음, 관념을 실천하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결국, 상상은 실재를 대체할 수 있고, 때로는 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소유는 사용하지 않으면 실질이 없으며, 쓰이지 않는 100억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없는 100억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 나는 이 상상력을 신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고유한 선물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이 상상의 힘으로, 더 자신감 있게, 더 단단하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