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두 덕목을 조율하는 예술에 대하여

by 신아르케

생각이 깊어질수록, 내면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스펙트럼의 사상들이 충돌하기 시작한다.
어떤 철학이든 끝까지 밀어 붙이면, 그 철학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용기는 지나치면 무모함이 되고 부족하면 비겁함이 된다.
덕목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함께 가지고 있으며, 극단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선이라 믿었던 것이 오히려 악이 되어 돌아올 때도 있다.

삶과 인간의 성질은 흑과 백으로 단순히 나눌 수 없다.
수많은 조건과 맥락이 얽히고 설켜 있어, 하나의 철학이 모든 경우에 만병통치약처럼 들어맞는 법은 없다.
나는 최근에 이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면에서 두 가지 철학이 강하게 충돌하며 마음이 크게 흔들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내가 오래도록 추구해 온 가치들이 있다.
자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성,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 용기를 가지고 주류에 편승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삶, 사회적 정의를 향해 나아가려는 태도, 그리고 자기만의 실존을 개척하려는 정신.
이 철학들은 분명 선하고 아름다운 요소들을 담고 있다.
나 역시 인생을 걸고 추구하고 싶은 귀한 덕목들이다.

그러나 이 가치들만을 오랫동안 밀어붙이다 보면, 또 다른 한 축의 보편적 가치를 놓치게 될 수 있다.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마음, 사랑으로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삶의 태도, 부드러운 말투와 따뜻한 미소로 서로를 잇는 노력, 예의와 규칙을 통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마음가짐, 관계 속에서 고요와 평화를 지키려는 자세 같은 것들이다.
이 역시 분명 선한 요소를 가진 덕목들이다.
하지만 이 가치 또한 극단으로 치우치면 문제를 야기한다.
부드러움이 지나치면 원칙을 잃고, 평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정의가 무너진다.

결국 어느 한쪽만을 붙들고 살아도 균형은 무너진다.
극단의 철학은 아무리 아름다운 명분을 가져도 타인에게,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삶에서 선을 지키려면 상황과 맥락을 살피고, 그때그때 가장 적절한 철학과 신앙의 실천을 선택해야 한다.
선은 단순히 “옳은 생각”이 아니라, 타인의 존엄과 자신의 중심을 동시에 지키는 선택에 가까운 것이다.

결국 우리의 과제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두 스펙트럼의 덕목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확고한 기준을 잃고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듯한 혼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이러한 내적 진동, 두 사상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조율하는 능력이야말로 예술에 가까운 경지인지도 모른다.
내면에서 모순되는 두 요소를 동시에 붙들고,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게 만드는 힘.
이 통제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철학적 인간이 도달해야 할 한 단계의 성숙함이다.

실시간으로 이 균형을 잡는 것이 힘들다면,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자신의 삶을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어느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졌다면, 의식적으로 반대 스펙트럼의 실천을 통해 궤도를 수정할 수 있다.
이 과정 자체가 헤겔이 말한 정·반·합의 움직임과 닮아 있다.
충돌하는 가치 속에서 더 넓은 조화와 더 깊은 균형을 찾아가는 순환.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성숙한 철학으로 나아간다.

삶은 한 방향의 확신으로만 살아내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덕목들이 충돌 속에서 조화로움을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 자체가 우리의 인간됨을 빚어내는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