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안에서의 자유, 그리고 전체주의적 도덕의 유혹

by 신아르케

인간의 자유란 무엇인가.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의 자유를 우리 내면의 의지나 감정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욕망과 감정이 결코 ‘완전히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성향과 환경, 욕구에 의해 이미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의지가 자연적 충동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내면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롭지 않다.

이 지점에서 홉스는 자유의 의미를 의지나 도덕적 선택의 차원에서 찾기보다 신체적 자유로 정의한다. 곧,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타인의 방해 없이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 이것이 그가 말한 자유이다. 그는 도덕적 자유, 즉 욕망을 거스르고 선을 향해 스스로 결단하는 ‘이성적 의지’가 아니라, 외부의 억압 없이 행동할 수 있는 물리적 자유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는 흔히 “내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라는 말을 한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규칙이 아니라 홉스적 자유의 핵심이다. 내가 불편하다고 해서, 누군가의 말투나 예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이 법을 넘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치국가에 사는 개인에게 자유란 결국 법 안에서의 자유이며, 그 법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기준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쉽게 전체주의적 태도에 빠진다. 누군가의 예의 부족, 관습과 다른 행동, 혹은 나의 도덕 감각에 어긋나는 태도를 보았을 때, 이를 ‘고쳐야 한다’는 마음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도덕적 판단이 언어적 강압이나 물리적 제재로 확장될 때, 나는 어느새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이 된다.

더욱 위험한 점은, 이런 폭력적 태도가 선한 의도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올바른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모두가 조금 더 바르게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자신이 타인의 삶을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도덕은 상대적이고, 각자의 생애, 감정, 가치관, 종교적·문화적 배경이 얽힌 복합적 형태이다. 내 기준이 다른 사람의 기준보다 절대적으로 위에 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폭력의 위치에 서 있다.

따라서 자유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도덕적 이상이 아니다. 오히려 “내 기준은 나의 기준일 뿐이며, 타인의 자유는 법이 허용한 한도에서 침해할 수 없다”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박한 자각이다. 윤리적 감수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바라보고 더 많은 것에 분노하기 쉽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도덕적 기대치가 높을수록, 나도 모르게 전체주의의 문턱에 서기 쉬운 법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타인을 내 도덕의 척도로 재단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법은 이 복잡한 인간의 다양성을 가장 최소한의 규칙으로 묶어 내는 장치이다. 법이 허용한 범위를 넘어, 나의 기준을 강요하는 순간,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람으로 변한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불편함과 함께 감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불편을 견디는 힘, 그 작은 내면적 인내야말로 자유로운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