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호감을 거부한 진정성의 길
“진정한 선(善)이란 무엇인가?”
이 단순한 질문은 오랜 시간 나의 삶을 붙잡고 있던 질문이자, 여전히 살아 있는 물음이다. 선을 실천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도록 사는 것일까? 모든 관계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는 것일까?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호감을 사고 싶어 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이는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사회적 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타인의 호감을 얻는 것과 진정한 선을 실천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가?
예를 들어,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나는 선을 행한 것일까? 그렇다면 선의 기준은 타인의 감정이라는 외부적 반응에 종속되는 셈이다. 하지만 타인의 감정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며, 내 존재 자체가 어떤 이에게는 불편함일 수도 있다.
한 예로, 술과 담배를 즐기는 이들에게 나는 때로 불편한 존재가 되곤 한다. 그들의 기준에서 인간적인 친근함은 함께 어울려 망가지며 노는 것이고, 나는 그 기대에 응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악한 사람인가? 아니, 나는 내 신념과 삶의 방식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반대로, 누군가는 항상 웃고 친절하며, 다정한 태도로 모든 이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진솔한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관계는 항상 표면에서만 맴돈다면, 그것은 진정한 선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선이란, 타인의 마음을 무조건적으로 기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향성과 신념 속에서 책임 있게 실천되는 가치라고.
진정한 선은 얕은 친절보다, 깊은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관계의 처음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드러나는 태도이며, 외적 매너보다 내적 일관성과 인격의 무게다. 나는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서 당장은 차갑게 보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며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일회성의 친절보다는 시간을 통과하며 드러나는 선을 택한다.
말보다 삶으로, 의도보다 일관성으로, 감정적 친절보다 도덕적 성실함으로 선을 살아내고 싶다.
물론, 나는 모든 상황에서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은 아니다. 때론 내성적이고, 어떤 관계에서는 거리감을 두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선을 실천한다.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약속을 지키며, 어려운 시기에도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말하는 '깊은 선'은 다음과 같은 덕목 위에 세워진다.
성실함, 책임감, 신뢰, 배려, 자기 절제, 일관성, 진정성.
내가 신뢰하는 선은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기질과 존재 방식에 기반을 두고, 상대방의 개성과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시간이라는 통로를 통과해 삶 전체로 증명되는 것이다.
선은 감정의 일시적 포장이나 상황에 따른 태도의 조절이 아니라, 존재의 무게에서 드러나는 인격의 향기다.
때로는 따뜻한 미소가 선이고, 때로는 엄중한 경고가 선이다. 때로는 함께하는 침묵이 선이고, 때로는 단호한 거절이 선이다. 맥락과 상황에 따라 선의 형식은 달라지지만, 그 중심에는 일관된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선을 단순한 예절이나 호감의 기술로 치환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나답게 살면서, 나의 방식대로, 나만의 속도로 ‘깊은 선’을 향해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