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육신은 참으로 연약하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그 깊은 원인을 따라 올라가 보면 결국 이 연약한 육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은 단순하지 않다.
나는 그것을 ‘고통의 삼중고’라고 부르고 싶다.
첫째는 육체의 고통이다.
질병, 피로, 통증, 노화.
이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둘째는 정서적 고통이다.
육체가 약해질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불안해지고, 우울해지고, 예민해진다.
몸이 흔들리면 마음도 흔들린다.
셋째는 생각의 고통이다.
인간은 단순히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해석하는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그 고통에 의미를 붙이고, 이유를 찾고, 평가하고, 스스로를 판단한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 아닐까?”
“앞으로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지?”
이처럼 생각은 고통 위에 또 다른 고통을 덧붙인다.
이 세 가지가 겹쳐질 때,
인간의 고통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삶 전체를 흔드는 무게가 된다.
동물 역시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고통을 기억하고, 해석하고, 미래로 확장시킨다.
그래서 실제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작은 불씨 하나가,
생각이라는 바람을 만나 거대한 불길이 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고통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한 가지 중요한 구분에 도달했다.
피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할 수 있는 고통을 구분해야 한다.
육체의 연약함에서 오는 고통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피로, 질병, 노화, 죽음.
이것은 인간 존재의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고통 중 상당 부분은
우리의 선택과 해석이 만들어 낸 고통이다.
절제하지 못한 욕망,
과도한 경쟁심,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인정받고 싶다는 집착.
이러한 마음들이 삶의 균형을 깨뜨리고,
육체를 과도하게 소모시키며,
결국 더 큰 고통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고통 위에 다시
후회, 원망, 불안, 자기비난이 덧붙는다.
고통이 고통을 낳는 구조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 지점에서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회개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인정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방향을 멈추고, 삶의 균형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다.
내 욕망과 집착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갔는지 돌아보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불필요한 고통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낸 고통의 상당 부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회개는 고통을 더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정리하고 덜어내는 지혜로운 반응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명을 주신 이유를
인간을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과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계명은 자유를 제한하는 장치가 아니라,
고통을 줄이기 위한 울타리에 가깝다.
선을 넘지 않게 하여,
불필요한 고통을 예방하기 위한 지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육체는 반드시 약해지고,
삶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온다.
이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부터다.
그 고통 위에 무엇을 더할 것인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그 고통을 두 배, 세 배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불필요한 해석을 덧붙이지 않을 것인가.
나는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고통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고통 위에 내가 덧붙이는 생각이다.
육체의 고통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생각의 고통은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첫째,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해
내 육체를 과도하게 소모시키지 않겠다.
둘째,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올 때,
그 위에 불필요한 부정적 해석을 덧붙이지 않겠다.
그 순간,
기도로 마음을 가다듬고,
깊은 호흡으로 몸을 안정시키고,
미소와 감사로 반응을 바꾸겠다.
이러한 태도 역시
한 번의 결심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반복을 통해 자리 잡는
하나의 습관이다.
생각도 습관이고,
감정도 습관이다.
그래서 고통을 다루는 방식 역시
습관이 된다.
인간은 연약하다.
그러나 동시에,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고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어떻게 다룰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쌓일 때,
우리의 삶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더 평안해질 것이다.
나는 그 길을 선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