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의 많은 문제는 결국 감정을 다루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간의 삶에는 구조적 불의도 있고, 이해관계의 충돌도 있으며, 제도적 한계와 지식의 부족도 있다. 그러나 그 많은 문제들이 실제로 폭발하고 관계를 무너뜨리는 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언제나 그 중심에는 다루어지지 못한 감정이 놓여 있다. 분노, 서운함, 두려움, 시기심, 모욕감, 죄책감, 열등감, 우월감, 인정받고 싶은 마음, 책임을 피하고 싶은 마음, 이런 감정들은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인간의 말과 행동 전체를 흔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점점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자기 감정을 잘 다스리고, 동시에 타인의 감정을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덜 고통스럽고 훨씬 더 윤택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인생의 많은 비극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상당수의 불필요한 고통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감당해야 할 외적 문제들을 안고 산다. 그런데 그 위에 처리되지 못한 감정들까지 덧쌓이면, 삶은 필요 이상으로 무거워진다.
인간의 마음은 늘 일정하지 않다.
그것은 시시각각 바뀌는 대기와 같고, 종잡을 수 없이 변하는 날씨와도 같다. 살아 있는 생명은 본래 정지해 있지 않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반응하고 요동친다. 인간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다. 신체의 컨디션 하나에도 영향을 받고, 환경의 변화에도 흔들리며, 타인의 작은 표정과 목소리, 몸짓 하나에도 쉽게 반응한다. 어떤 날은 같은 말을 들어도 웃어넘길 수 있지만, 어떤 날은 같은 말이 마음 깊이 박혀 오래 남는다. 이 사실은 감정이 단순한 의지의 산물이 아님을 보여 준다. 감정은 내가 마음먹는다고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 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차라리 감정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감정 때문에 흔들리고, 감정 때문에 실수하고, 감정 때문에 상처받으니, 차라리 냉정한 기계처럼 살 수 있다면 더 편할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이해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다. 감정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요소인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조건이기도 하다. 이성과 감정은 서로 분리된 두 덩어리가 아니라 긴밀하게 얽혀 있다. 감정이 완전히 제거된다면 인간은 단지 차가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가치 판단 능력 자체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주 사소한 예로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만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사람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할 때 수많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한다. 지금 몸 상태는 어떤지,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날씨가 어떤지, 함께 먹는 사람이 누구인지, 시간은 얼마나 있는지, 소화가 잘 되는지, 비용은 적절한지, 기분은 어떤지, 이런 요소들을 모두 하나하나 계산해서 결론을 내려야 한다면, 인간의 일상은 너무 느리고 무거워질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왠지 오늘은 이게 당긴다”는 감각 하나가 복잡한 계산을 빠르게 정리해 준다. 설명할 수 없는 호불호, 끌림과 꺼림, 편안함과 부담감 같은 감정은 비합리성의 잔재가 아니라, 복잡한 현실을 빠르게 처리하게 해 주는 내면의 신호 체계이기도 하다.
윤리적 판단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다.
인간 안에 도덕적 감수성이 없다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물론 윤리는 단지 느낌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 그러나 아무 감정도 없는 존재가 진정으로 선과 악을 느끼고,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며, 부끄러움과 책임을 경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간은 감정으로만 살 수 없지만, 감정 없이도 살 수 없다. 감정은 이성을 방해하는 적인 동시에, 이성이 인간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토양이기도 하다.
문제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다.
감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우리의 행복감과 만족감도 감정과 연결되어 있고, 반대로 우리의 불행과 고통 역시 감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결국 어떤 감정 상태를 경험한다는 뜻이다. 삶의 충만함도 감정을 통해 체험되고, 삶의 황폐함도 감정을 통해 체험된다. 그러므로 감정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태도는 인간 삶의 절반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감정을 무조건 따르는 것도 위험하다. 감정은 때로 너무 미묘하고, 너무 변덕스럽고, 너무 쉽게 왜곡된다.
부정적 감정의 문제는 특히 이 지점에서 심각해진다.
타인의 작은 말 한마디에 무시당한 듯한 속상함이 생긴다. 자신의 공로가 인정받지 못할 때 서운함이 일어난다.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을 만났을 때 시기심이 고개를 든다. 실패할까 두려워지고, 죄를 지었을 때 죄책감이 밀려오며, 이성에 대한 성적 충동이 자신을 흔들고, 책임을 피하고 싶은 비겁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감정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다. 순수한 하나의 감정이라기보다, 여러 요소가 뒤섞인 복합적 상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같은 감정도 전혀 다른 의미를 띠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의 감정은 더욱 다루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감정들을 무조건 절대화하는 것도 답이 아니고, 그렇다고 전부 억누르고 무시하는 것도 답이 아니라는 점이다.
감정을 절대화하면 인간은 자기 기분을 진리로 착각하게 된다. 지금 내가 화가 났다면 상대가 반드시 잘못한 것처럼 느끼고, 지금 내가 불쾌하다면 내 판단도 자동으로 옳은 것처럼 여긴다. 반대로 감정을 무조건 억압하면, 인간은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내면은 점점 왜곡되고 굳어 간다.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 냉소가 되기도 하고, 신경질이 되기도 하며, 무기력과 자기혐오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감정의 제거가 아니라 감정의 성숙한 처리다.
감정은 이해하고, 조절하고, 승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 사람만이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자기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자기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 감정의 신호를 읽되 거기에 노예처럼 끌려가지 않는 사람. 불쾌함을 느끼더라도 곧바로 공격으로 반응하지 않고, 서운함을 느끼더라도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으며, 두려움을 느끼더라도 그것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사실 인생의 수많은 비극은 바로 이 감정 처리의 실패에서 시작된다.
부부 관계의 균열도 그렇고, 부모와 자식 사이의 상처도 그렇고, 직장 상사와 부하 사이의 갈등도 그렇다. 교회와 회사와 수많은 조직체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아주 작고 사소한 감정의 씨앗이 있다. 말투에 대한 불쾌감, 인정받지 못한 서운함, 자존심의 상처, 비교에서 오는 시기심, 두려움에서 비롯된 방어심리. 문제는 이런 감정이 처음 생겨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채 방치하거나 확대한다는 데 있다. 그러면 작은 씨앗은 뿌리가 되고, 뿌리는 구조를 흔든다. 사람들은 의견 때문에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처리되지 않은 감정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된다.
인생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는, 자기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지혜롭게 다루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어떤 기술은 돈을 벌게 해 주고, 어떤 기술은 명성을 얻게 해 주며, 어떤 기술은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게 해 준다. 그러나 감정을 다루는 기술은 삶 전체를 살게 해 준다. 이것은 단지 심리학적 요령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깊이 이해하는 능력이며,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힘이고, 공동체를 안정시키는 지혜다.
이 기술을 익힌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결국 타인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며, 공동체 안에서 존경받는 리더가 된다. 왜냐하면 진정한 리더십은 명령하는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고 다룰 줄 아는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이끌 수 없고, 타인의 상처를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공동체를 오래 세울 수 없다.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알고, 타인의 감정을 함부로 짓밟지 않으며, 갈등을 불필요하게 키우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결국 가장 강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단순히 화를 참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고, 자신을 지키는 일이며, 관계를 살리는 일이다. 그것은 행복을 지키는 기술이고, 공동체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지혜이며, 자신의 삶을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성숙의 훈련이다. 인간은 감정을 없앨 수 없다. 그러나 감정을 다루는 법은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아마 인간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배움일 것이다.
결국 성숙한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의 품격은
바로 그 능력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