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장 보는 날

쌀파는 날

by 써니로그

“쌀 좀 팔아야 하니까, 니 차 끌고 같이 장 좀 보러 가자.”

엄마는 장을 많이 봐야 할 때면 어김없이 나를 부르신다.
'쌀을 판다'는 건 경상도 사투리로 '쌀을 산다'는 뜻이고,
‘같이 가자’는 말속에는
'무거우니까 네가 좀 도와줘'라는 엄마식 부탁이 숨어 있다.

사실 요즘은 쌀도, 고기도, 과일까지도
인터넷으로 손쉽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클릭 한 번이면 집 앞까지 오고,
무거운 걸 들지 않아도 되지만
엄마는 꼭 시장에 가자고 하신다.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천천히, 조심조심 걷는 엄마지만
시장에 가면 얼굴에 생기가 돈다.

“이게 뭐라꼬, 데이트 같다 아이가~”
엄마는 그렇게 웃으며,
시장 골목을 마치 산책하듯 걸어가신다.


어릴 적, 시장은 나에게 작은 축제였다.
엄마 손을 꼭 잡고 따라가면, 어느 골목에서 구수한 콩물 한 컵을 사주셨고,
순대나 김밥 같은 시장 음식은 내가 먼저 사달라 졸라대지 않아도 엄마가 먼저 눈치 빠르게 사주시곤 했다.

나는 엄마의 시장 데이트 파트너였다.

가끔은 다리가 아프다며
“엄마~ 나 좀 업어줘~”
하고 칭얼거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무거운 장바구니에
울먹이는 딸아이까지 안아 업고
묵묵히 걸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골목의 바닥보다
엄마의 다리가 훨씬 더 무거웠을 거다.

이제는 내가 운전해서 엄마를 태우고,
무거운 장바구니도 들어드린다.
시장 한켠 콩물 가게 앞에 서면
내가 먼저 “시원한 거 드실래요?” 하고 여쭤본다.
순대 한 접시도 내가 계산한다.

얼마 전, 시장에서 두부를 사려다
엄마가 발걸음을 멈추셨다.

“어? 이 집은 없어졌네…
아버지 살아계실 때, 매주 여기 두부 사다 줬는데…”

익숙한 가게 자리에 낯선 상호가 붙어 있었다.
엄마는 말없이 다른 가게 쪽으로 걸음을 옮기셨지만,
그 뒷모습이 어쩐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그 두부가 특별히 더 맛있어서라기보다,
그 안에 아빠와의 시간이 스며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더 아쉬웠던 거였다.

엄마 손등의 검버섯이 더 짙어지고,
오르막길을 천천히 오르며 힘겨워하는 뒷모습이
조금씩 낯설어질 때면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젠 내가 엄마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그 손을 잡아드릴 수 있으니까.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함께 시장 다니며,
콩물도 마시고, 두부도 고르고,
순대 한 접시에 웃음이 터지는
그런 평범한 날들이
조금 더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