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두건의 기밀문서가 공개되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주영국 소련대사였던 메이스키(Ivan Maisky)가 스탈린에게 보낸 1944년 1월 11일 자 전문입니다. 이 메이스키가 스탈린에게 올린 이 보고서는 기존의 냉전의 책임을 소련에게 돌리던 전통주의와 책임을 미국에 돌리던 수정주의라는 기존의 학설에 또 하나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메이스키 보고서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소련이 급격한 공산혁명과 공산화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닌, 30~50년에 걸친 장기적 국가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독일을 무력화시키고 프랑스가 예전의 명성을 찾는 것을 저지해야 하며, 유라시아 대륙에서 소련이 유일한 강대국이 되어 세력균형의 조종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영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메이스키는 한 가지를 놓친 것이 있는데, 미국이 기존의 고립주의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본 것입니다. 이런 메이스키의 대전략은 미국이 마셜 플랜으로 불리는 유럽 경제 원조책을 통해 그리스와 터키에 4억 달러를 지원하면서 어그러집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적극적으로 서유럽 정세에 개입하였으며, 암묵적으로 지켜져 오던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이임사의 전통을 깨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 즉 NATO를 출범시키며 미국의 전통적인 고립주의를 깼다는 것을 전 세계에 천명합니다.
이후 적극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가 고착화되며 냉전의 시대로 접어듭니다. 냉전의 시대에 미국과 소련에게는 각각의 딜레마에 빠집니다. 소련은 미국에 비해 열세인 경제력 부분이 문제였으며, 미국은 고립주의를 깨고 세계정세에 적극 뛰어들며 커버해야 할 영역이 너무 많아졌으며 그에 따른 비용도 증가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소련을 향해 내세울 수 있는 전략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의 존재입니다. 장제스와 국민당의 부패, 무능과 마오쩌둥의 공산혁명의 운동으로 인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된 것입니다.
소련과 스탈린의 입장에서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로 건국된 것은 원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중국과 소련은 과거 러시아 제국과 청제국이던 시절부터 숱한 국경분쟁등을 벌여왔습니다. 하나 된 통일 중국이 가지는 무서움은 상상이상입니다. 실제로도 마오쩌둥과 스탈린은 이후 숱한 대립각을 세웁니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스탈린이 중국공산당에게 일본군이 남기고 간 무기를 넘겨주게 되었던 이유도, 전력의 절대적 열세에 있던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과 대립과 대결을 벌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일전쟁을 통해 정예군과 간부를 대부분 잃은 국민당이 허무하게 공산당에 의해 무너집니다. 국민당은 국부천대로 불리는 철수과정을 통해 대만으로 도주합니다.
미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대만을 제외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애치슨 라인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은 중국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며 소련을 압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실제로 애치슨 라인의 핵심은 소련의 견제와 동시에 대한민국에 대한 적극적인 원조였습니다. 그러나 전글에서도 설명하였듯이 이 과정에서 미국 행정부 내에서 한국을 두고서 이견이 갈립니다. 이는 한국, 즉 한반도가 가지는 지정학적 위치와 중요성에 대해 미국내부에서도 명확한 하나의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황현필이 이야기하듯 북한의 남침을 의도했던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였듯 전쟁 이후 쌓여있는 군수품을 소비하기 위한 전쟁 유도도 결코 아니지요.
이 글을 쓰는 중간에 황현필은 또다시 노근리 사건을 관한 영상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영상 말미에 민간인들이 희생당했다는 자료를 제시합니다. 미군에게 폭격 사례로 말이죠. 그런데 재밌는 게 무엇이냐면, 거의 대부분이 1950년 7월~8월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리고 1951년 1~2월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시기는 경기도와 충정도 주변 위주입니다. 무언가 느낌이 오시나요? 바로 저 시기는 전쟁 초기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던 당시와 중공군의 개입으로 1.4 후퇴로 서울과 경기를 잃고 다시 충청도 이남으로 밀렸던 시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즉, 적진을 향한 공격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민간인들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황현필은 전쟁의 전자도 모르는 것이 확실합니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민간인의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인류 역사의 가장 잔혹하고 잔인한 행위입니다. 첨단기술이 발전하고 민간인 피해를 엄금하고 있는 현재에도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지만, 이것을 오로지 한 국가의 폭력으로만 몰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P.S 황현필이 최근에 출간한 진보를 위한 역사책을 구매했습니다. 머리말과 프롤로그만 봐도 머리가 아파옵니다. 그에게는 역사와 생각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오직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흑백 논리만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정독하며 하나하나 비판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