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as Publicanorum, 고대로마의 세금은 '사업'이었다
우리는 익숙한 이야기들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탄생한 시대의 제도와 현실을 함께 바라보는 순간, 익숙함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번 글은 잘 알려진 한 이야기에서 출발해, 그 배경에 놓여 있었을지도 모르는 고대 세계의 경제 구조를 함께 살펴보려는 작은 탐험의 두번재 이야기다.
현대 사회에서 세금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면서도 달갑지 않은 존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금을 불합리하게 느끼기도 하고, 특히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세무조사라는 단어만 들어도 긴장하게 된다.
세금은 국가 운영에 필수적이지만, 그것을 부과하고 징수하는 방식은 언제나 논쟁과 불만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탐험하고 있는 고대의 경제 구조 안에서 '세금'이라는 장치를 들여다보자.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고대 세계, 특히 예수님이 살았던 로마 시대에는 세금을 어떻게 거두었을까?
고대 로마의 세금 문제를 생생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의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예수님이 활동하던 당시 공공의 적처럼 여겨졌던 존재 — ‘세리’에 관한 이야기다.
신약성경에서 세리는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그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하나같이 비슷한 긴장을 품고 있다.
세리들은 죄인들과 함께 묶여 언급되었고, 심지어 창기와 같은 부류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조차 논란이 될 만큼, 세리는 금기시된 존재였다.
그들은 단순히 평판이 나쁜 직업인이 아니라, 종교적·사회적으로 공동체의 경계 밖에 주홍글씨처럼 낙인이 찍힌 존재들이었다.
복음서 곳곳에서 이러한 인식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자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문제 삼았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에서는 세리가 멀리 서서 고개도 들지 못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삭개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그의 집에 들어가자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반응했고,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혹여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선언한다.
이 장면들은 단순한 개인의 도덕적 상태를 넘어, 세리가 당시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누구나 세금을 달가워하지 않고, 우리 역시 ‘국세청’이나 ‘세무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부담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그렇지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리에게 보였던 반응은 이러한 일반적 불편함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과연 이들은 어떤 존재였고, 실제 어떤 역할을 했기에 그렇게까지 배척받았던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중앙집권화된 국가 행정 체계를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가 직접 세금을 부과하고 공무원이 이를 집행하는 체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고대 로마 제국은 이러한 관료적 행정 국가와는 상당히 달랐다.
로마는 광대한 속주에서 세금을 직접 걷기보다는, 세금 징수 권한 자체를 민간에게 넘기는 방식을 선택했다.
세금 징수는 행정 절차라기보다 하나의 ‘사업권’이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소시에타스 푸블리카노룸(societas publicanorum)’이다.
소시에타스 푸블리카노룸은 여러 투자자가 자본을 모아 국가로부터 특정 지역의 징세권이나 공공 사업을 낙찰받아 운영하던 '민간 투자조합'이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초기 형태의 투자회사나 주식회사와 유사한 모습이 있었지만, 핵심은 세금 자체가 하나의 수익 사업으로 취급되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로마에 일정 금액을 먼저 납부하고, 이후 현지에서 세금을 징수하며 수익을 얻었다. 더 많이 거둘수록 더 많은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과도한 징수의 유인은 시스템 자체에 내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업에는 주로 로마의 기사계급이 참여했다.
원로원 계층이 정치 권력을 담당했다면, 기사계급은 금융과 사업 영역에서 활동하며 제국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속주 주민들이 실제로 마주했던 얼굴이 바로 ‘세리’였다.
이 구조는 로마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재정 확보 방식이었지만, 속주 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가졌다.
세금은 단순한 국가의 요구가 아니라, 투자자들의 이익과 연결된 사업이었고, 그 결과 세금 징수는 종종 과도한 부담과 착취로 이어졌다.
실제로 로마 시대의 기록에는 이러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키케로(Cicero)의 연설문과 속주 행정 기록에는 공공니(publicani)라 불린 징세 사업자들이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거나 현지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다는 사례들이 언급된다.
이론적으로는 총독이 이를 감독해야 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와 경제적 유착으로 인해 실질적인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소아시아의 여러 속주에서는 징세권 경쟁과 과잉 징수로 인해 사회적 긴장이 높아졌고, 로마 정치 내부에서도 publicani의 영향력과 문제점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세금 징수는 행정과 경제적 착취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 영역이 되었고,
특히 식민지 상황에 놓여 있던 유대 사회에서, 동족이 제국의 경제 구조 안에서 세금을 걷는다는 사실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종교적 긴장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세리는 단순히 돈을 밝히는 개인이 아니라, 제국의 금융 시스템과 식민지 현실이 만들어낸 구조적 존재였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다시 복음서를 읽어보면, 세리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온다.
예수님이 세리와 함께 식사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큰 논란이 되었는지, 그리고 왜 세리들이 공동체의 경계 밖에 놓인 낙인된 존재로 여겨졌는지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한다.
세리는 단순한 죄인이 아니라, 식민지화된 이스라엘 사회에서 제국의 앞잡이로 여겨지며 경제적 수탈의 현장에서 활동하던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사실이 그들을 더욱 고립된 존재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