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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Jan 10. 2023

기막힌 남편의 청소법

'드르륵'과 '스윽'사이


'자기야,

청소는 무작정 문지르는 게 아니야.

이렇게 더러운 걸레로

온 집을 문대면 어떡해...'라 하고 싶지만


오늘도 참는다.


남편이 청소할 때 얼굴이 풀 뜯어먹는 쿼카처럼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청소를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고 3년 정도 말해봤는데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서 후로는 그냥 놔뒀다. 혹자는 내가 청소를 안 해서 그러는 거 아니냐 할지 모르나 나도 청소를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깨끗한 걸 좋아하기에 청소를 안 할 수가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




사실 핵심은 청소가 아니라 사물의 결을 잘 살피지 않는 남편의 성향이 충돌 원인이다.


대표적인 예로 남편이 거실 바닥을 대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남편은 거실 마루가 한 방향으로 예쁘게 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움직이기 편한 방향으로 '드르륵' 소리를 내며 나뭇결의 방향과는 무관한 움직임을 택한다. 이때 주로 사용하는 도구는 스팀청소기이고, 드르륵 소리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열심히 문댄다.


나뭇결 방향으로 밀면 '드르륵'이 아닌 '스윽'소리가 난다.


'드르륵'  청소하기 편한 몸동작이요, '스윽' 진정 청소하는 자의 자세인 것이다.


남편은 나뭇결을 살피지 않을 뿐 아니라 부엌 타일을 열심히 문대던 스팀청소기의 천을 갈지도 않고 고대로 거실로 끌고 온다. 극악무도가 따로 없다.


"자기야 잠깐만! 근데 이거 내가 한번 빨아올게, 잠깐만!"


여기서 내가 걸레 교체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간 지난한 양자 논쟁으로 이어지므로 설명 따위는 시도하지 않는다.




세차라고 다르겠는가.

남편에게 세차란 세제를 푼 물로 차를 아주 얇게 코팅하는 작업이다.


제발 돈 주고 하라고 해도 근면 절약이 몸에 밴 이 사람에게 돈 주고 세차하기란 비상식에 가까운 행동.


남편이 세차를 한 다음 날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할 때면 온 세상이 미세하게 뿌옇다.


마치 이 사람으로 인해 내 삶 전체가 뿌예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는 눈을 감아버린다. 그리고는 바람의 마찰로 남편이 만들어놓은 얇은 코팅막이 벗겨져 나가는 상상을 한다. 마음의 안정이 온다.


세차, 청소 말고도 남편이 사물의 결을 무시하는 드르륵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물론 내가 보기에 그런 거라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힘은 든다.




이런 부분만 빼면 참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

저렇게 청소를 좋아하니 일종의 테라피(Therapy) 비용이라 생각하기로 하고, 남편이 청소하려고 폼을 잡으면 나는 긴 산책을 나간다.


못 본척하러 나가는 것이다.


신나게 걷다 보면

남편이 행복하다는데 청소로 인해 집이 더러워지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남편이 못 본 척해주는 나의 드르륵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남편 욕한 게 미안해서 올려본다. 남편은 피자 장인이다. 주문한 그대로 나오는 게 특징이고, 여백의 미 싫어하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가장자리까지 꼼꼼히 토핑했다.


시아버지를 생각하며 2018년에 쓴 글씨. 사이즈가 기억나지 않는다. 나 도인 만들어주는 남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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