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일의 단편.
몸이 아프다고 많은 걱정과 위로를 받았지만 내가 느끼는 스스로의 건강에는 큰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또 다달이 네팔에 보내야 하는 돈과 보험료를 선두로하는 고지서들이 눈앞을 아른거렸고, 어떻게든 알바를 할 필요가 있었다 집 근처에서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알바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농막을 짓는 용접 알바를 구한다는 글을 찾았다
집에서 거리는 30분남짓. 코로나로 돌아다니기 어려운 요즘. 시골에 조그만 농지를 사서 농막을 두고 전원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 요즘 트렌드인 것을 길가에 생긴 수많은 '하우징' 업체를 보면서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을 접하고 나니 훨씬 장사가 잘되는 일이었다 일당 25만 원을 받고 3일 동안 농막 두 개를 만들고 현장을 마쳤다 피곤해서였는지 볼이 다시 살짝 부푼 느낌이다 이거 뭐 풍선도 아니고
용접기술자들이 직업을 구하는 경로는 크게 인맥과 공고인데 오래 한국을 비운 나는 인맥이 많이 힘을 바랐다 인맥이 없는 기술자 대부분은 인터넷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는데 용접 기술자들은 주로 밴드나 용접 카페(커뮤니티)를 많이 활용한다 어느 카페에 화곡동에서 산소절단을 할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봤고 꼭 이번 현장이 아니더라도 산소절단에 자신이 있으면 연락을 남겨두라는 글을 보고 문자를 남겨뒀다 병원에 연락해서 다시 부푸는 볼에 대해서 외진 일정을 앞당기는 것을 문의했지만 환자가 너무 많았다 기존 일정 이외에는 당길 틈이 없다고 했다
포천에서 화곡동으로 출근하는 길은 꽤 오래 걸리는 길이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운전해서 화곡동으로 갔는데 화곡동 현장을 선택한 이유는 몇 년 전 까치산역에서 반년 정도 살았다는 이유가 유일했다 서울에서 처음 해보는 땀 흘리는 일. 막히는 아침 가양대교를 건너면서 전전 직장을 먼발치에서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지금 잘살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의 지금을 강제로 한 번쯤 되돌아 보게 되는 질문
산소절단은 사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호주에서 용접을 하면서 지낼 때 크게 할 일이 없으면 폐기용 배터리 정리나 산소절단 중에 골라서 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 시원한 그늘에서 무겁게 배터리를 나르거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산소절단을 하는 두 가지 옵션이었다 나는 배터리도 산소절단도 가리지 않고 주어지는 대로 일을 했었는데 그때의 노하우 축적이 오늘 이런식으로 빛을 발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일이다
호주에 있을 때는 수출용 고철을 자르는 일이었으므로 어려운 자세나 퀴즈 같은 머리 쓸 일이 만무했다 넓은 공터에서 옥시팩이라고 불리는 열여섯 병이 하나로 뭉쳐진 산소통을 내리고 하루 종일 명상하듯 파이프를 잘랐는데 이곳 화곡동에서는 지하 오층에 있는 보일러와 설비를 잘라내는 일을 하는 거였다 고철을 잘 자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퀴즈 풀듯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분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더불어 다치지 않도록 안전까지 생각해야만 했다
출근한 지 이틀이 지나고 하루 일당을 확정 지었다 공고에는 22만 원에서 25만 원으로 적혀있었지만 하루 톨게이트 비용만 만원이 넘었고 기름값 역시 무시 할바가 못되었다 27만 원이 아니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는데 사장님은 흔쾌히 동의했고 김포에 있는 스리랑카 코이카 아는 동생의 집에서 출퇴근하기로 했다 코로나로 여행이 어려운 요즘 올림픽대로를 타고 출근하며 퇴근하는 길이 낯설면서도 한국에 스며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포 신도시는 잘 정비되어있었고 올림픽대로는 아침에 늘 막혔다 나도 서울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된것같았다
거대한 기계를 산소로 자를 때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불질로 잘라내는 것과 그 와중에 내가 다치지 않아야 한다는 안전에 대한 고민, 엘리베이터에 실릴만한 크기로 잘라내는 계산이 필요했다 지하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기계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생각하고 자르기 시작하면 또 생각 없이 무념무상의 기분으로 잘라낸다 산소절단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매 순간 집중해야 하고 그래서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
절단 토치를 구성하는 구조는 간단하다 두 개의 산소 밸브와 한 개의 가스 밸브로 구성되어있는데 가스밸브 한 개와 산소 밸브 한 개의 압력을 조절해서 쇠를 자르기 적절한 온도와 불꽃으로 만들어준다 이 불꽃을 자르고자 하는 쇠에 가져다 대고 잠시 기다리면 쇠의 표면이 밝은 붉은빛으로 달아오르면서 표면의 쇳물이 빗방울처럼 살짝 흘러내리는데 이때 사용하지 않았던 다른 고압의 산소 밸브를 열어주면 그 방울진 쇳물을 시작으로 쇳물이 압력에 따라 흘러내린다 그리고는 끝이다 고압의 산소가 나가는 방향에 따라 그 쇳물이 끊기지 않도록 토치를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쇠를 절단하면 그만이었다
산소절단에서 떨어지는 쇳물 뭉치를 제외하고 위험의 변수는 두 가지다 하나는 녹은 쇳물이 밖으로 빠져나갈 길이 막혔을 때 하늘로 튀어올라 폭죽처럼 터지면서 내가 쇳물 방울을 뒤집어쓰는 경우인데 쇳물이 나가는 방향을 '프로 산소절단러'들은 대부분 항상염두해 두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후에 피곤할 때 한 번씩 쇳물을 뒤집어쓰면 정신 차리고 다시 토치를 가다듬는다 쇳물이 튄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땀에 젖은 몸에 떨어지면 대부분 큰 상처 없이 바로 식어버린다 쇳물 튀김의 짜증보다 걸리면 창피함이 앞선다 두 번째 문제는 백관이라고 불리는 아연도금 파이프를 자를 때 생기는 파편인데 이게 군대에서 쓰는 백린 연막탄과 비슷한 분자구조를 갖는다 아연도금은 파이프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코팅하는 것인데 강한 열을 만난 코팅은 방향성이나 규칙성 없이 튀어 오르고 튀어 오른 불붙은 도금 덩어리는 백린의 성격을 띠고 무엇을 만나든 끝까지 타버린다 물과 사람의 피부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끝까지 타야 한다는 숙명을 완수할 때까지 하얀 연기를 내면서 타버린다 지하실의 더위를 피하고자 가벼운 보호구를 착용했는데 보호구를 뚫고 들어와 팔뚝에 조그만 흉터가 남을 것 같다 흉터는 용접사의 숙명과도 같은것
막일은 보통 여덟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오전 오후 각각 한 번의 공적인 대휴식과 점심시간이 있으며 담배는 비공식적인 휴식이지만 대부분 묵인해준다 잡부라고 불리는 조공과 기능직 기공의 세계는 일당만큼이나 냉정해서 맡은 바 분량을 해내지 못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일용직은 계약직만큼 보다 더 파리 목숨이다 일을 못하게 된다는 금전적인 서운함보다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현장에서의 준엄한 심판이 더 속상하다
처음 이틀을 같이 자른 부천 출신 용접사는 화성에 더 좋은 현장이 나왔다며 이틀 만에 현장을 떠났고 삼일째 새로운 용접사가 새로웠다 나이가 지긋해서 용접 불꽃이 안 보인다면서 자기에게 남은 것은 이제 산소절단밖에는 없다고 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러 왔는데 이 아저씨만 홀로 비장했다 여덟시 시작이면 일곱 시 사십 분 그 정도에는 나와서 얼굴도장을 찍고 담배한대 물면서 준비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아저씨는 일곱 시 반부터 불질을 시작했다 만나지 얼마 되지 않아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지만 일당을 높여달라는 건전한 방식의 실력행사 일수도 있고 명상처럼 쉬지 않고 계속 잘라대는 나에 대한 견제 일수도 있었다 부디 후자가 아니라 전자이길 바랬다
막일에서 잘리기 가장 쉬운 캐릭터는 자기주장이 강한 경우이다 조공의 경우 창의력을 발휘해서 맡은 소임을 잘 해내기가 많은 제약이 있다면 기공의 경우 각자 일을 배우고 해온 스타일이 다 다른만큼 문제 해결 방식이 다 다르다 사장과 '결'이 같다면 큰 문제없이 현장 끝까지 가겠지만 자기주장을 펼치고 그것이 또 비효율적인 것이 밝혀졌을 때 이 사람은 자기주장의 강도만큼이나 다음날 출근이 불투명해진다 문제는 이런 자기주장을 혼자만 하는 경우와 주변 사람에게까지 강요하는 경우인데 이 아저씨는 나에게도 자신의 일하는 스타일을 강요했다
힘든 일을 하면 마음이나마 편해야 한다고 모두가 생각한다 사사건건 사장과 마찰하는 아저씨와 나에게 사장의 작업지시를 묵살하기를 요청하는 아저씨 난감한 일이다 3D의 정점에서 아저씨와 사장과의 줄타기를 하기 싫었고 그렇다고 쇳물이 튀기는 현장에서 이 아저씨를 무시하고 작업할 수도 없었다 육체노동보다 지치는 일이 감정노동인지라 마음씨 좋은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찰 없는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안 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김포에 있는 동생네 집은 원룸이었다 공무원인 후배는 코로나 자가격리자를 보호하는 임무로 장기 출장 중이었고 빈집에서 나 홀로 열흘을 지냈다 포천에서 출퇴근은 한 시간 반이 걸렸는데 김포에서는 삼십 분이 걸렸다 퇴근해서 씻고 정리하고 밥 먹고 누우면 한 시간은 더 잘 수 있었는데 하루가 열 시간은 길어진 것 같았다 신도시에 무슨 운하도 예뻤고 전화하면 달려오는 배달 음식도 좋았다 타지에서 보내는 혼자인 삶을 즐기지 못하면 퇴근 후에도 고통이 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 바닥 일이다
늦은 오후에 굵은 기계를 마지막으로 쓰러트리면서 '오늘이 마지막'임을 느꼈다 나 같은 고임금은 현장이 정리될 때 가장 먼저 정리되는 수순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기주장 강하던 분은 무슨 연락을 받았는지 나오지 않았고 나 혼자 정리한 현장에서 이제 위험하고 굵은면서 어려운 덩어리는 모두 정리가 되었다 이제 다른 분들이 와서 내가 자른 쇳덩어리를 땅 위로 올리면 해체 작업은 마무리가 될 것이다 사장님은 퇴근하는 길에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더 나오기를 바라느냐는 뉘앙스로 물어봤다 여기서 내가 받으면 임금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이 바닥 고수들의 수싸움 같은 거였다 정중히 거절하고 기회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동안 일한 건 오늘 밤에 입금해준다고 했다 서울 노가다는 이토록 쿨 하구나
김포집을 비우는 동안 결국 집주인 얼굴은 보지 못했고 별개로 신세 진 며칠에 대한 보답으로 당근 마켓에서 쓸만한 TV 하나를 달아줬다 당장 게임하는 게 취미인 내가 오락기를 들고 다니는 건 상식적 일수 있는데 차에 TV까지 들고 다니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집에 달려있던 TV는 너무 작았다
하루라도 즐겁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즐겁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