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휴식’의 의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 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쉼’은 ‘쉬다’의 줄임말 정도라고나 할까? 다시 말해 휴식은 몸과 마음을 쉬게하고 재충전하며 에너지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쉼과 휴식을 다르게 구분하고 싶다. 남편은 아무것도 안하고 몸을 편히 누이며 단순히 쉬기를 바라는 '쉼'을 원하고 나는 주중의 평범한 시간을 잠시 멈추고 주중과 다른 세상 안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즐기며 알아가는 시간을 '휴식'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래서 남편이 쉬고자 하는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 청소 등 해야할 일을 빨리 마무리 하고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남편은 게으름을 이겨내고 씻고 움직이기위해서라도 집 밖으로 나가야한다는 나의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몸은 쇼파에 기댄 채 TV 속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한다.
50대를 넘어서면서 우리 부부는 무척이나 평화로운 밤을 보낸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별다른 약속이나 취미도 없고 모임도 갈수록 줄어들고 저녁 시간은 그저 집에서 가장 평범하고 가장 조용한 시간을 보낸다. 물론 나쁘지 않다.
그러나 가끔 일이 있어 시내에 나가보면 시간과 상관없이 차 마시고 어울려 다니는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우리도 한때 저런 날이 있었지’ 하고 지난 날을 회상하면 젊은 청춘들이 부럽기도 하다. 지금은 밤새 놀아라고 돗자리를 깔아줘도 못 놀겠지만 그래서 더 아쉽기도 하고 주말 만이라도 열심히 즐기고픈 마음이 더하는것 같다.
날씨가 안좋거나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번 주에는 무엇을 하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지 계속 찾아보고 고민하게 된다.
남편은 주말마다 끌려다닌다며 매번 불평이지만 아마도 나 스스로 너무나 평범한 일상에 대해 보상받고 싶은 심리인가 싶기도 하다.
사무실 책상위에 있는 조그만 달력에 여행계획이나 약속 일정이 빼곡히 적혀있으면 나름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고 든든해진다.
그동안 쌓인 피로와 휴식은?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가보다!
주말엔 바쁘게 움직이고 오히려 평상시에 가끔 쪽잠도 자고 필요하면 잠을 더 보충하는 식으로 쉰다고 생각했다. 머리로는 ‘괜찮아! 이정도의 피로는 금새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몸은 계속 지쳐있었는지 날이갈수록 몹시 피곤하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짐이 느껴지기도한다.
아무래도 차를 타고 장거리를 가거나 온종일 돌아다니거나 새로운 것들을 탐색하려고 하니 온 몸에 있는 세포들이 매번 긴장하고 내내 대기상태로 깨어 있어 내 안의 내가 힘들다고 외치는 것 같다.
흐린 날 빼고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 빼면 그렇게 많은 날도 아닌데... 라며 나를 위로해보지만 요즘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문구조차도 버겁게 느껴질 정도다.
저번주말에는 별 특별한 약속이 없어서 평소처럼 오전에 남편과 스크린 골프를 쳤다. 전날 지인이 '가까운 곳에 코스모스 가득한 곳이 있다'고 해서 오후에 짬을 내어 방문할까 계획했었다. 그런데 영암에서 생각지도 못한 F1 자동차 경기가 있다고 하여 잠깐 방문했다. 조금 지루한 것 같아 일찍 나와 어차피 지나는 길이라 코스모스 있는 곳을 들러가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남편이 '빨리 집에 가서 쉬자'며 계속 궁시렁 거리는 바람에 제대로 찾아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역마다 가을꽃 축제가 한창인데 차마 멀리 가자는 말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으며 겨우 근처에 핀 코스모스 보러 가자고 한건데 마누라 속도 모르고!
남편은 대부분 나와 함께 다니기를 원하므로 나의 패턴에 맞추려고하니 본인이 더 피곤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도 가끔 '주말마다 쉬지 않고 내리 달리는 내가 좀 심한가?'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또 정작 나갔다 오면 좋은 것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가 더 많은데도 내 맘을 몰라주는 것같아 조금 속상하기도했다.
가끔 SNS에서 추천해 준 곳을 찾아가면 실망스러운 곳도 있지만 찾아가는 재미와 기대와 설레임도 있다. 아무래도 예전보다 바쁜 주말을 보내다 보니 남편의 불평이 더 끈이질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내 마인드는 여전히 꿋꿋하게 '좀 힘들면 어떠한가! 흰눈 펑펑 내리는 겨울에 몰아서 더 많이 쉬면 되지~~!' 이다.
이런 나의 생각이 잘못된걸까? 아님 남편과 생활 패턴이 다른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나만 유난스러운걸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나의 머릿속은 항상 복잡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발버둥치고 있는 내 모습조차 잘하고 있는 건지, 잘살고 있는 것인지 마음은 계속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것처럼 허하게만 느껴진다. 어쩌면 이러한 잡생각을 잊기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며칠 전, 아는 언니를 만났는데 '이제는 멀리 여행가고 싶어도 체력이 딸려서 못 가겠다'는 격한 공감을 나누며 ‘더 나이먹기 전에 열심히 돌아다니자’ 라고 얘기 나눈 적이 있다.
다리가 아파서 수년을 거의 집에서만 생활하신 시아버님과 허리 수술로 거동조차 어려우셨던 시어머님을 돌보면서 남편도 아이들에게 민폐되지 않도록 건강 잘 챙기고, 한살이라도 젊을 때 여행도 많이 하고, 살아있는 동안 두 발로 잘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했었다.
아마 예전과 다른 나의 체력과 병원을 자주 찾게 되는 나의 몸 상태들이 불안해서 무엇인가에 더 집착하고 붙잡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느림의 미학'을 조금씩 배우려고 노력중이다.
눈도 잘 안보이고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자주 다치기까지 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달려다녔었는데 이제는 무릎도 삐걱거리고 가끔씩 골반에 통증이 있어 행여나 넘어지면 낫는 시간도 오래 걸릴테고 나만 힘들어질 것 같아 무척 조심하려 애쓰고 있다.
하늘도 파랗고 바람도 시원하고 날이 이렇게 좋은데 어떡하지? 매주마다 단풍이 드는 것도. 낙엽이 뒹구는 것도 바라보면서 예쁜 가을을 즐기고 싶은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나에겐 또 하나의 숙제다.
그리고 핑계거리가 또 있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많이 보고, 많이 추억하고, 많이 체험하는 것!
평상시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수다 떠는 것을 별로 안좋아하지만 이번주에는 친구들과 번개팅을 추진해서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나 물어봐야겠다.
올해는 조만간 최강의 한파가 온다는데 이제 손에 꼽을 만큼 몇 번 남지 않은 햇살 좋은 주말 동안 남편이 힘들어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자갸~ 2024년도 남은 날들도 눈부시게 멋지게 즐겁게 아주아주 잘~~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