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트 카우>는 2019년에 개봉한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작품으로, 초기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독창적으로 담아낸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어떤 여인들>, <웬디와 루시>, <올드 조이> 등의 작품을 통해 주목받았으며, 자연과 사회의 조화를 카메라에 감각적인 눈으로 담아내는 감독이다.
<퍼스트 카우>는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더 상세히는 1820년대의 오리건 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중국인 이민자 킹 루와 유대인 쿠키가 함께 오리건 주에 처음 들어온 소의 젖을 몰래 짜 스콘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버는, 어떻게 보면 <퍼스트 카우>는 단순한 서사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이런 시대 배경을 바탕으로, 기존에 미국 자본주의 역사의 초기를 조명했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시선에서 미국의 19세기 자본주의의 태동기를 조명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퍼스트 카우>에 나타난 미국 자본주의 초기 사회의 모습을 다뤄보고자 한다.
먼저, 영화 <퍼스트 카우>가 어떤 미학적 특징들을 활용해 영화의 이미지 내터티브를 구축하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퍼스트 카우>만의 독창적인 미학은 4:3의 화면비에서도 잘 드러난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이 4:3 비율을 소박하다고 표현하며, 웅장하고 광활한 스펙터클의 이미지들을 강조하던 기존의 서부 영화와 차별점을 두었다. 그동안 다른 여타 미디어에서는 장엄하고 거대하게 표현되던 미국의 자본주의의 시초를 ‘소박’한 프레임에 담아낸 것이다. 이 점에서 알 수 있듯, 켈리 라이카트가 극의 배경을 미국 자본주의의 시초인 서부 개척시대로 설정하며 <퍼스트 카우>에 담고자 했던 것은 서부 개척시대의 웅장함과는 거리가 있다. 거대하게 표현되던 미국 사회의 자본주의 역사를 소박한 프레임에 담은 것에서부터 켈리 라이카트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주목받지 않았던, 소박한 이미지와 소외된 이들의 인간적인 이야기를 통해 서부 개척시대와 자본주의의 초기 모습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그녀는 4:3의 화면비를 활용한 것이 ‘땅에 가까운 것들을 담아내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퍼스트 카우>는 영화의 배경인 오리건 주의 땅과 자연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쿠키가 암소의 젖을 짜는 장면들에서 그는 소를 제압하려 하기 보다, 최대한 바닥에 붙어 자연과의 교감 속에 있으려 노력한다. 카메라는 이런 쿠키를 따라 최대한 땅에 붙어 그 모습을 촬영한다. 이처럼, 4:3의 화면비를 통해 <퍼스트 카우>가 담아내고자 했던 것은 황량한 서부를 개척하는 카우보이의 모습이 아닌, 자연의 공동체 속에서의 소박함이었다. <퍼스트 카우>는 결코 서부 개척시대를 두둔하고 영웅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용맹하고 개척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표현되었던 서부 개척 시대의 모습을 비틀어, 그와 반대의 방식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초기를 조명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과감한 롱테이크 기법을 활용해 앞으로 전개될 내러티브의 분위기를 관객에게 제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배가 프레임의 왼쪽에서 등장해 강을 따라 오른쪽으로 사라지는 영화의 초반부에서 활용된 롱테이크 기법은 현대 사회에서 미국 초기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대변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관객은 영화가 시작하는 지점부터 거대한 자본의 유입을 암시하는 선박의 등장과 두 구의 해골을 길게 응시하는 화면을 통해 영화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숙고를 이어나가게 된다.
이 렇듯, 상당히 인상적인 첫 장면인 <퍼스트 카우>의 오프닝을 ‘서부 개척 시대’라고 불리는 미국의 역사적 맥락과 비교해본다면, 흥미로운 대조점을 찾을 수 있다. 스페인, 멕시코와의 전쟁과 프랑스로부터의 영토 매입을 시작으로 -뉴올리언스, 미주리 등의- 동부에서 서부로 개척 방향이 확장된 미국의 개척 역사 달리, 영화에서의 선박은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반대의 방향성을 취하는 선박을 보여주며 <퍼스트 카우>는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이 영화는 미국인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로 여겨지며 카우보이와 같은 남성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바탕이 되었던 미국의 서부 개척 역사의 전통적 서사를 탈피할 것을 암시한다. 이는 켈리 라이카트 감독이 <퍼스트 카우>를 통해 그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나 존 포드 감독의 <황야의 결투>와 같은 분위기로 대표되는 미국의 서부극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구축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퍼스트 카우>는 미국인들을 비롯해 관객에게 상당히 익숙한 시대적 배경인 서부 개척 시대의 이미지들을 색다른 방식으로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재현’이라는 것이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퍼스트 카우>는 미국 사회의 초기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는 식의 역사적 복원의 방식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외부로부터의 이민자였지만,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인해 위협받았던 쿠키와 킹 루, 두 인물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 ‘서부 개척시대’라는 시절이 담고 있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 해내며 이에 도전한다.
이 거대한 선박은 동시에 <퍼스트 카우>의 배경이 되었던 19세기 초의 오리건 지역에서 성행했던 비버 무역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모피 무역’이라고도 불리는 비버 무역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북미 지역에서 유럽 정착민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비버 모피를 상품으로 해 이루어진 교역이었다. 비버 무역은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을 상징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고,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오리건 주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재조명한다. 영화는 같은 공간적 배경에서의 현대의 액자에 미국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퍼스트 카우>는 ‘오리건 주’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기존의 서부극과는 다른 서사를 창조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관객이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영화를 따라 차별화된 시선에서 미국의 역사를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영화는 현재 시제의 거대한 선박이 등장하는 장면과, 과거 미국 서부로 풍경 속에서 오리건 주로 들어오는 ‘오리건 주의 최초의 암소’가 마을 사람들 -특히 아메리칸 원주민-의 이목을 끌며 마을로 발걸음을 내딛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겹쳐 보여준다. 관객은 자연스레 앞서 보았던 거대한 선박과 오리건 주로 들어오는 암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결 짓게 된다. 이러한 대비는 자본주의의 태동기에서부터 시작해 시간이 흐르며 무리하고 복잡하게 팽창해 온 자본주의의 성장 과정을 상징적으로 상기시킨다. 오리건 주의 최초의 암소로 불리는 영화 속 암소는 동부에서부터 서부로 정착한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를 상징하며, 서부 개척 시대에 자본을 대하는 다양한 집단들의 태도를 드러낸다. 영화는 아메리카 원주민, 개척자인 백인 이외에도 미개척지였던 미국 서부에 자리를 잡고 있던 중국계 이민자, 히스패닉계 이민자, 혼혈 공동체들의 모습을 대표하기 위해 유태인인 쿠키, 중국계 이민자인 킹 루를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이전에는 백인들의 영광과 강인함을 나타내기 위한 장르로서 활용되었던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가져와 백인이 아닌 당시 사회에서 외부인으로 여겨졌던 이민자들의 관점에서부터 미국의 역사를 조망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퍼스트 카우>에서는 서부 개척시대 속에서 각 집단이 ‘자본’을 맞닥뜨리는 태도를 인물들이 -거대 자본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암소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묘사한다. 주인공인 쿠키와 루는 협력과 존중을 기반으로 암소를 다루며, 폭력과 정복로 대표되었던 서부 개척 시대의 정서를 전복시킨다. 쿠키와 루가 밤에 들키지 않도록 은밀하게 팩터 대장의 소의 젖을 짜는 장면에서 이 점이 강조된다. 비록 쿠키는 팩터 대장 몰래 소의 젖을 짜지만, 결코 소를 급하거나 거칠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암소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유대감을 쌓는다. 후에, -이 사실을 모르는- 팩터 대장과 소를 보러 갔을 때, 암소가 오히려 쿠키 쪽으로 계속해서 다가가려 하는 모습을 통해 쿠키의 존중을 바탕으로 그와 암소 사이에 생성된 유대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의 야만적인 서부 개척 시대와 대비되는 쿠키와 루의 부드러움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갑작스럽고 낯선 자본주의를 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또한, 서부 개척 사회의 폭력 속 부드러움은 관객에게 아이러니를 선사하며, 그 이미지들을 감상하는 관객으로 하여금 초기 자본주의의 잔인함에 대한 사유를 유도한다.
영국인인 팩터 대장이 이들의 계획이 시작되는 암소의 주인이자, 결국에는 이들의 계획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근원이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아이러니를 시사한다. 팩터 대장은 유럽 이민자로, 아메리카 대륙에 자리 잡은 ‘백인’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존재는 미국의 초기 자본주의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나 이민자들을 비롯한 당시의 소외 계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쿠키와 루는 암소의 젖을 담은 반죽으로 빵을 팔며 단기적으로는 금전적인 이익을 보았지만, 결국 마을의 실세인 백인에게 뒤를 쫓기다가 쓰러져 버리고 만다. 원주민의 땅을 갈취한 행위는 영웅 서사로 포장해 취급하면서도, 쿠키와 루의 행위는 유럽 대륙으로부터의 이민자인 영국인 팩터 대장에게는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입지를 넓힐 때, 원래 아메리카 대륙에 오랜 기간 살아왔던 부족민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당시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러한 현상을 ‘자본주의 청소’라고 표현하며,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인터뷰에서 직접 이러한 현상에 영감을 받아 <퍼스트 카우>를 만들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서 소의 젖을 몰래 짜다가 들킨 두 사람은 뒤를 쫓는 이들을 피해 도망치다가 지쳐 한 나무 밑에 기대 눕는다. 이는 영화의 초반부에서 여자가 발굴해 낸 두 구의 해골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거대한 액자 속에서 초기 자본주의가 스며든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담아내며, 쿠키와 루의 빵으로 대표되는 부드러운 우정을 통해 소외된 이들의 삶을 조명한다. 이들의 우정은 단순한 개인의 관계를 넘어, 그동안 누구도 들여다보고 주목하지 않았던 이들의 관점을 비추는 <퍼스트 카우>는 관객이 새로운 방식으로 미국의 역사를 성찰하도록 한다.
감독 켈리 라이카트는 <퍼스트 카우>에 관한 한 인터뷰에서 영화에 사용된 “탁한 느낌의 파란색과 초록색, 코랄색 빛 등 색채 사용의 경우에는 프레데릭 레밍턴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퍼스트 카우>에 주로 사용된 색조는 프레데릭 레밍턴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색조들과 상당히 유사하며, 추측컨대 <퍼스트 카우>에 담긴 서부 개척 시대의 분위기 또한 프레데릭의 그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프레데릭 레밍턴(1861-1909)은 1880년대 중반, 뉴욕의 잡지에 삽화를 그리던 것에서 그의 예술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세기 말 미국 서부를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특히, 카우보이와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대표되는 19세기의 시각적인 이미지를 제공한 예술가이다.
프레데릭 레밍턴의 1890년작 <The Fourth Troopers Moving the Led Horses>에서도 알 수 있듯, 프리데릭 레밍턴이 서부 시대를 작품에 녹여내는 과정에서 미국 개척대의 용맹함과 남성성이 강조된다. 또한, 미국 서부의 낭만적인 이미지를 통해 감상자들로 하여금 미국의 영광스러운 서부 개척 시대의 모험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한다. 흔히, 프레데릭 레밍턴의 작품의 매력은 카우보이들의 힘, 공격성을 중심으로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모험과 영광을 찬미하는 데 있다. 그러나 <퍼스트 카우>를 감상한 후, 프레데릭 레밍턴의 작품을 다시 살펴보면, 켈리 라이카트 감독이 참고하고자 했던 이미지들은 오히려 그의 후기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프레데릭 레밍턴의 후기 작품은 위의 두 작품에서 볼 수 있듯, 초기의 낭만적 시선에서 벗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개척자들 사이의 갈등, 고독감과 파괴의 흔적들에 초점을 옮겨 작품을 그려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후기 작품에서는 카우보이의 쓸쓸함과 서부 개척 과정에서 나타난 잔인함의 정서가 강조되며, 그의 초기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사유적인 접근을 보인다.
이렇듯, 그의 후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개척자들과의 복잡한 관계와 그로 인해 무너진 모습들을 바탕으로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자본주의가 처음 아메리카 대륙을 침범한 그 과정의 비극성을 반영한다. <퍼스트 카우>는 이러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서부 개척 시대에 비주류로 여겨졌던 이들이 우정을 지키고 생존하려 애쓰는 모습을 그려낸다. 따라서,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프레데릭 레밍턴의 작품의 정서를 참고해서 서부 개척 시대를 낭만화하기보다, 그 이면의 쓸쓸함, 고뇌를 담아내는 새로운 시각을 <퍼스트 카우>에서 구현해냈다고 볼 수 있다.
<퍼스트 카우>는 단순히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풍경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 구성 요소와 연출 방식을 통해 미국 초기 자본주의의 이면을 탐구하는 영화이다. 영화는 기존 서부극의 폭력적이고 정복적인 서사를 해체하고 협력과 유대라는 정서를 통해 미국의 초기 자본주의가 정착하던 역사에서의 아이러니와 잔인함을 관객에게 시사한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현대적 시각으로 서부 개척 시대를 조망하며, 그 로맨틱한 이미지를 재해석 해낸다. 퍼스트 카우가 그려내는 암소와 선박의 상징, 소외된 이들의 부드러움은 자본주의의 태동기가 가졌던 불균형한 현실을 환기시킨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이러한 상징들을 통해 미국 초기 자본주의의 본질을 탐구한다. 따라서, <퍼스트 카우>에 담긴 이러한 이미지의 표현 방식들은 단순 재현이 아닌,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시선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비틀어 바라본 색다른 재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