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법, 말하는 법>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는 3막을 읽기 위해서 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막은 <듣는 법, 말하는 법>(모티머 애들러 글, 박다솜 번역, 유유출판)과 함께 읽는다. <듣는 법, 말하는 법>은 현대 교육에선 왜 말하기 듣기 교육이 사라졌는가? 묻는다. 읽기 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읽기 쓰기 능력도 문제지만 말하기 듣기 교육이 사라지면서 말하기와 듣기 능력이 형편없단다. 말하기 듣기에 관한 저자의 경험과 다양한 사례가 설득력 있게 검토된다. 4챕터 "설득하는 말하기"에선 <줄리어스 시저>의 브루터스, 안토니의 명연설이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수사학(설득의 기술)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이다. 에토스는 웅변가의 인격으로 그동안 쌓아온 신뢰와 인품을 바탕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파토스는 정념에 기대어 상대에게 행동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다. 로고스는 논리적 근거이다. 브루터스와 안토니의 연설을 이에 따라 분석할 수 있다.
줄리어스 시저를 시해하고 브루터스는 안토니를 살리기로 결정한다. 고귀한 브루터스의 정의에 안토니의 죽음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안토니는 시저의 죽음을 알자마자 브루터스 일당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살인자들의 피 묻은 손을 잡으며 우정을 약속하고 광장에서 연설할 수 있도록 허락을 얻는다. 다만 브루터스 다음 순서로.
브루터스의 유명한 연설이 시작된다. 자신들은 단순한 살인자, 반역자가 아니라 로마의 미래를 위해, 로마인의 자유를 위해 시저를 시해했다는 정당성을 차분하게 에토스와 로고스를 활용해 웅변한다.
"로마 시민, 동포, 그리고 친구 여러분
시저를 죽인 이유를 들어주시오.
조용히 내 말을 들으시오
내 명예를 두고 날 믿어주시고,
날 믿기 위해 내 명예를 존중해 주시오.
.....
만약 여러분 가운데
시저의 절친한 친구가 있다면 이렇게 말하겠소.
시저에 대한 브루터스의 우정도
그 사람의 우정에 못지 않다고,
그럼 그 친구는 물을 거요.
왜 내가 시저에게 대항해 일어섰느냐?
내 대답은 이러하오.
시저를 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여러분은 시저가 죽고,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보다는,
시저가 살고
여러분 모두가 노예로 살기를 바랍니까?
.....
노예가 되길 원하는
비열한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소?
있다면 말하시오.
난 그에게 잘못을 범한 셈이오.
진정한 로마인이 되고 싶지 않은
미련한 자가 이 로마에 어디 있겠소?
있다면 말하시오.
난 그에게 잘못을 저지른 셈이오.
조국을 사랑하지 않을 비열한 자가
그 어디에 있겠소?
있다면 말하시오.
난 또한 그에게도 잘못을 저지른 셈이오.
자, 대답을 기다리겠소."
시민들은 브루터스 만세를 외친다. 이제 안토니 차례다.
"만약 눈물이 있다면
지금 그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시오.
여러분은 모두 이 외투를 알 겁니다.
나 안토니는 기억합니다.
시저가 이 외투를 처음 걸쳤던 날을 말입니다.
어느 여름날 저녁, 군막 안에서였소.
너비족을 정복하던 바로 그날이었죠.
보시오! 질투심에 찬 카스카의 칼이 찌른
이 상처 자국을 똑똑히 보십시오.
자, 이걸 보시오!
시저의 총애를 받던 브루터스의 칼은
바로 이곳을 잔인하게 관통했소.
자, 보시오! 보란 말입니다!
브루터스의 칼날을 따라
얼마나 많은 시저의 피가 쏟아졌는지를....
시저의 피는, 마치 문밖으로 나가,
확인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브루터스가 정말 그렇게 잔인하게 찔렀는지를....
여러분도 알다시피,
시저 각하는 브루터스를 정말 총애했소.
아, 신이시여, 판단하소서!
시저가 얼마나 그를 사랑했는지!
브루터스가 시저의 몸에 만든 이 상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무도한 칼자국이오.
시저는 브루터스가 찌르는 걸 보았을 때,
그 어떤 반역자의 배은망덕보다
더 강한 배신감을 느꼈고, 이에 압도당했소.
그리하여 그 위대한 심장을 터져 버렸소.
시저는 망토로 얼굴을 감싸고
폼페이의 조상 아래 쓰러지고 말았소.
아, 동포 여러분!
이런 처참한 파멸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
친구들이여.
여러분 마음을 도둑질하러 여기 온 건 아니오.
난 또한 브루터스 공처럼 웅변가도 아니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난 친구를 사랑하는 평버하고 무뚝뚝한 사내요.
그분들도 그걸 잘 알기에
시저의 추도사를 하도록 공적으로 허락한 거요.
난 사람의 피를 끓게 하는 재주도 없고,
말주변도 품격도 고상한 몸짓도 없소.
언변도 설득력도 없는 사람이오.
난 그저 솔직하게 말할 뿐이오.
여러분 자신이 알 고 있는 걸 말할 뿐이오.
여러분께 시저의 상처와 말 못하는 그의 불쌍한 입을 보여 두리고,
그것들이 저 대신 말하게 할 뿐이오.
만약 내가 브루터스 공이고,
브루터스 공이 안토니라면,
안토니는 여러분의 정신을 자극해 미치게 하고
시저의 상처 하나하나에 혀를 달아 말하게 하고,
로마의 돌덩이마저도 들고 일어나
폭동을 일으키도록 자극했을 겁니다."
에토스와 파토스의 향연이 안토니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상처에 혀를 달아 말하게 하라니...정말 셰익스피어답다.
연두 북클럽의 장점이라면 우리들의 현실과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일 테다. 우리는 수업 시간에 늘 간식을 먹는다. 오늘은 감자 튀김이다. 어느 수업이든 어떤 간식이든 마지막은 망설임으로 끝이난다. 오늘의 수행은 "마지막 남은 감자튀김은 누가 먹어야 하는지 설득해보자"였다.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활용할 것.
나는 먼저 말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즐거움과 배고픔을 동시에 해결하도록 간식에 무척 신경을 쓰고 정성을 들여 왔어요. 우리들의 시간이 편안하고 즐겁기를 바라고, 책을 읽고 대화하는 시간이 풍요로운 정서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예요. 여러분이 잘 먹어주면 기쁘고 안 먹어주면 간식을 두고 고민하고 조금은 의기소침해집니다. 마지마 한 개가 남으면 실례가 아니라는 걸 고지하고, 자연스럽게 먹도록 애를 쓰지요. 그럼에도 남아 있으면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예요. 누군가 망설이고 있을까, 또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버리기도 누굴 주기도 애매하죠. 하여, 평소 무엇이든 잘 먹는 's'가 먹어주었으면 합니다."
마지막 남은 감튀가 사춘기의 에토스를 분명하게 부르짖고 있다.
설득력이 있다.
주목받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에토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