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만약이라고 만약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싶었으나 2주째 대출불가 상태다. 누군가가 꿍쳐놓고 한 달 내내 읽는 것으로 추정된다. (밀리의 서재에도 없음..)
그리하여 내 손에 들어온 카프카의 [변신]
우연히 만났지만 뭐 이런 게 자연스러운 만남 아니겠어?
자고 일어났는데 몸이 벌레로 변해버린 대담한 설정. 온라인상에 밈처럼 돌아다니던 질문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가 여기서 나온 건가 싶었다.
N이라 한 번쯤 질문해 볼 법 한데 질문하면 진짜 그렇게 될까 봐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게 진짜 N이야)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곧 잘 적응한다. 상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고, 천장을 기어 다니는 것도 즐겼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놀랐지만 그레고르에게 먹이를 주었고 편히 지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력을 상실했다는 것.
한마디로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
결국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어쩌다 던진 사과에 아파하다가 어쩌다 방에 갇혀 죽는다. ('어쩌다'가 궁금하다면 오백,, 아니 책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당:))
좋아하던 물건이 고장 나서 (슬프긴 하겠지만) 버리듯이. 그렇게 죽는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실존주의 철학이라는 개념을 가져와 이러쿵저러쿵 지식자랑 하겠지만
그냥 실존적 위기를 다룬 작품일 뿐.
이 이야기에 철학을 이야기하면 좀 슬플 것 같다.
(카프카는 실존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이전에 죽었다)
물론 비슷한 결이긴 하다. 실존주의의 찐 매력을 느낀 카뮈의 [이방인]이 떠오르긴 했으니까.
어딘가로부터 동떨어진 왕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그러나 뭔가 다르다. 왕따끼리 친구면 왕따가 아니지.
이방인은 본인의 철학적 사상을 이야기하려는 듯한 또렷한 인상이 있었다. (인생의 의미 같은 건 없어. 내가 태어난 건 우연이야. 세상은 그냥 애초에 있던 거고. 그러니까 자꾸 의미 부여해서 '나'를 방해하지 마)
그런데 카프카는 서운해하는 것 같다.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 부리듯이. 실제로 카프카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했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그 원망이 상당히 원초적으로 표현된다. 사실 바퀴벌레로 변하는 것부터 어딘가 조금은 유치하다.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확인받고자 하는 복잡한 마음이 담긴 것 같다.
"제가 벌레가 되어서 아무 쓸모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슬프긴 해도 결국 버릴 거잖아요."
어쩌면 비극이라는 것은 그 반대의 상황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뜬금 TMI)
언젠가 어떤 남자친구랑 그런 얘기를 했었다.
사람을 잘 안 믿는다는 건 믿고 싶다는 증거가 아니냐며.
누구더라..
암튼!
그의 작품세계에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싶은 한 아이의 아픔이 묻어난다.
실체 없는 사회의 인정보다 곁에 있는 온기를 느낄 줄 아는
소박한 프라하의 이방인.
의미는 없었지만 희망을 품은 상으로 죽음은 따스하게 맞이했길.
그리고 다음 생에는 저항을 함께할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길.
슬프다
슬프니까 마라탕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