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구단일까

외우는 수학의 오래된 이유

by 아우리

수업을 마치고 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웃지 못할 하소연을 들었다. 나이 차가 꽤 나는 동생에게 구구단을 가르치고 있는데, 도무지 외우질 못해 답답해 죽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선생님, 그런데 이걸 왜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외워야 하는 걸까요?”

나에게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도 구구단은 늘 당연히 외워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들어보거나 고민해 본 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노래처럼 외우던 수학의 시작

구구단은 원래 시각적인 표가 아니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9x9까지의 곱셈을 운율에 맞춰 말로 외웠다. 종이와 책이 귀하던 시절, 지식은 눈이 아니라 귀로 전해졌다. 수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이 사, 이 삼 육…”처럼 리듬이 붙은 문장은 계산을 빠르게 하기 위한 기술이자, 기억을 오래 붙잡기 위한 장치였다. 특히 한국어 구구단은 음절이 짧고 리듬이 간결해 계산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준다. 여기서 외운다는 행위는 이해의 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기 위해 지식을 몸에 새기는 첫 단계였다.


표가 되기 전, 생존의 계산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도 곱셈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토지를 나누고, 곡물을 계산하고, 세금을 매기기 위해 사람들은 매번 반복되는 계산의 수고를 줄여야 했다. 이후 이슬람 세계의 알콰리즈미 같은 학자들이 계산법을 체계화하며 곱셈은 비로소 ‘규칙’의 형태로 정리되었다.

영국 등 일부 서구권에서 12단까지 외우는 문화가 남은 것도 12진법을 사용하던 도량형의 흔적이다. 이처럼 구구단은 말에서 표로, 다시 규칙으로 변화하며 살아남은 인류의 드문 지식 자산이다.


우리는 왜 여전히 외우게 할까

지금은 계산기의 시대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소수점 아래 숫자까지 순식간에 답이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전히 아이들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구단은 단순히 결과값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수의 관계’를 몸에 익히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2가 4번 쌓이면 8이 된다’는 감각과 ‘4가 2번 쌓여도 결과는 같다’는 직관은 수백 번의 설명보다 한 번의 암기로 뇌에 더 깊이 각인된다. 외운다는 것은 어린 단계의 뇌에게는 이해로 가는 가장 빠른 우회로이자, 수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기초 체력을 기르는 일이다.


답답함의 정체

학생의 답답함은 사실 구구단 자체 때문이 아닐 것이다. ‘왜 이걸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맥락은 생략된 채, 결과값만 독촉받는 구조에서 오는 피로감이다. 동생은 틀리고, 학생은 가르치고, 둘 다 이유는 모른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딘다.

구구단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구구단을 둘러싼 이야기가 사라진 것이 문제다. 구구단은 단순한 암기표가 아니라, 인류가 세상을 계산하기 위해 다듬어온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강력한 생각의 도구라는 점을 먼저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결론: 외우게 하는 이유를 묻는다는 것

구구단은 지루한 암기 숙제가 아니다. 말로 전해지고, 표로 정리되고, 규칙으로 남아 지금까지 이어진 지식의 생존 방식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구구단을 권하는 진짜 이유는 수학을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구구단은 오늘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저 정답을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있는가, 아니면 수의 세계가 가진 오묘한 질서를 스스로 발견할 시간을 허락하고 있는가.




<한눈에 보기: 구구단 뒤에 숨은 이야기>

Q1. 구구단은 왜 암기에서 시작했을까? 지식이 기록(종이)이 아니라 기억으로 전해지던 시대의 방식이었다.

Q2. 계산기가 있는데도 외울 필요가 있을까? 구구단은 단순 계산기술이 아니라 수의 관계를 몸에 익히는 훈련이다. 이는 고차원적인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는 밑바탕이 된다.

Q3. 아이들이 구구단을 힘들어할 때 필요한 것은? 외우라는 말보다, 이 숫자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함께 이야기해주는 일이다.

28. 구구단의 역사와 의미.png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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