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은 강함이 아니라, 흐름 속 빈틈을 읽는 기술이다
손자가 말하기를, “전쟁의 요체는 실한 곳을 피하고, 허한 곳을 친다.”
避實擊虛
피실격허
- 손자병법 허실편 -
우리가 자주 듣는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준비된 상태, 반대로 강해 보이지만 실은 취약한 상태.
손자는 이처럼 ‘보이는 것’과 ‘실제’를 교차시키는 전술을 전략의 핵심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전략은 힘의 정면 충돌이 아니라, 빈틈을 읽고 흐름을 조정하는 과정이라고요.
약한 곳을 유연하게 파고들고, 강한 벽은 돌아서 피하는 사고 - 그것이 진짜 전략입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전장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조직 내 갈등에서, 혹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도 ‘허실의 지혜’는 지금도 치명적으로 유효합니다.
과거 제법 규모가 큰 국방사업에 담당자로 참여했을 때입니다.
해외 다양한 방산업체들과의 협의에서, 그들은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이 사양은 구현이 매우 복잡하며, 상당한 R&D 리소스가 들어갑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진실은 달랐습니다.
그 기술은 이미 구현되어 있었고, 우리 측 예산을 끌어올리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연출'이었던 겁니다.
표면적으로는 ‘허(虛)’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실(實)’을 감춘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그 연기에 속아 양보하거나 예산을 조정했다면, 그 순간부터 전세는 기울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강함(實)을 감추고, 약함(虛)을 가장하여 상대를 유인하는 ‘허실’의 전술입니다.
손자는 말합니다.
“상대를 유인하되, 실체를 드러내지 마라.”
“자신은 허하게 보이되, 실제로는 실하게 준비하라.”
우리는 때로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전략은 정직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감춰야 할 것은 감추고, 보여줄 것은 전략적으로 노출하는 것.
바로 이 배치와 조율의 기술에 전략의 미학이 있습니다.
1. 협상에서의 허실 – 허를 보여줄 것인가, 실을 드러낼 것인가
진짜 목표를 감추고, 덜 중요한 요구부터 제시하면 상대의 경계심을 낮추고 흐름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강하게 요구함으로써 상대의 약점을 직접 압박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습니다.
➡︎ 나는 지금 ‘허’를 먼저 꺼내고 있는가, ‘실’을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는가?
2. 인간관계에서의 허실 – 강하게 맞서기보다 흐름을 읽어라
상대가 격해질 때 침묵하면, 대화의 주도권은 조용히 내게로 옵니다.
이긴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흐름을 지배할 뿐이죠.
➡︎ 나는 지금 감정에 반응하는가, 흐름을 조율하고 있는가?
3. 리더십에서의 허실 – 모든 걸 직접 통제하려 들지 마라
모든 걸 아는 리더보다, 한 발 물러서 전체의 흐름을 읽는 리더가 더 깊은 신뢰를 얻습니다.
➡︎ 나는 지금 쥐려는가, 아니면 조율하고 있는가?
나는 모든 것을 너무 빨리 드러내고 있진 않은가?
지금 대화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나는 상대의 약점을 찌르고 있는가, 아니면 강점에 부딪히고 있는가?
내 진짜 목표를 숨기고, 우회해서 접근한 적이 있는가?
말보다, 흐름을 먼저 읽고 있는가?
<손자병법이 전해준 오늘의 한 수>
“실은 숨기고, 허를 유인하라.
강함은 자랑이 아니라 감추는 기술에서 시작된다.”
<참고자료>
손자병법 실편 한눈에 보기
손자병법 허실편 워크시트
<다음 글 예고>
[군쟁편 軍爭篇] – 움직임을 들키지 말고, 경로를 예측하게 하지 마라
싸움의 승패는 무기보다 움직임에 달려 있다.
손자병법 군쟁편이 말하는 기동의 전략을 현대 조직과 삶에 적용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