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울 美인가, 쌀 米인가

한 글자 차이로 본 미국의 이름 이야기

by 아우리

후쿠오카에서 유후인으로 향하는 버스 창밖으로 따뜻한 시골 풍경이 이어졌다. 온천 마을 벳부에서는 수증기가 골목마다 피어올라 마치 하늘로 편지를 띄우는 듯했다. 그곳에서 슈퍼마켓 진열대에 붙은 원산지 표기가 눈에 들어왔다.

“米国産牛肉(미국산 쇠고기).”
순간 멈칫했다. 내가 아는 미국은 늘 美國이었는데, 일본은 ‘쌀 米’를 쓰고 있었다. 왜 미국을 아름다울 美가 아니라 쌀 米로 부를까. 작은 글자 하나가 커다란 질문으로 다가왔다.


한 나라를 부르는 서로 다른 이름

중국 친구와 대화할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미국을 “美国(메이궈)”라 불렀다. 일본 사람은 “米国(べいこく, 베이코쿠)”이라 했다. 반면 한국은 미국을 美國이라 적어왔다. 지금은 한글로만 ‘미국’이라 쓰지만,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美와 米가 공존했다.

왜 같은 나라를 두고 이렇게 다른 글자가 쓰였을까.
중국은 亞美利加(아메이리자), 美利堅(메이리젠) 같은 음차에서 앞 글자 美를 따와 美国이라 불렀다. 일본은 亞米利加(아메리카)라는 음차에서 米를 따와 米国이라 줄여 썼다. 한국은 중국의 전통을 이어 美國을 썼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米國 표기도 흘러들어와 혼용되었다. 결국 오늘날 한국은 ‘미국’, 중국은 美国, 일본은 米国으로 굳혔다.


글자 속에 담긴 문화와 주권

한 글자 속에는 단순한 표기가 아니라 문화와 권력이 담겨 있다. 중국은 한때 미국을 ‘화기국(花旗國)’이라 부르기도 했다. 별과 줄무늬로 장식된 미국 국기를 꽃무늬 깃발로 본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베트남은 지금도 미국을 ‘누억 미(nước Mỹ)’라고 하면서 동시에 ‘호아끼(Hoa Kỳ, 花旗)’라는 표현을 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美國이라는 표기가 남아 있다. 이는 미국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중국식 전통을 따른 결과였다.


결론: 이름은 표기가 아니라 시선의 기록이다

아름다울 美든, 쌀 米든, 그 선택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다. 언어와 문화, 정치와 역사가 겹겹이 만든 흔적이다. 한 글자를 들여다보는 일은 곧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한눈에 보기: 동아시아의 미국 표기>

7. 동아시아의 미국표기법.png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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