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내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는 결정적 순간들이 있다. 이 현장은 그 어떤 육아서보다 나에게 강렬한 깨달음을 준다.(물론 깨닫고 얼마 안 가 도로 아미타불인 건 비슷하다.)
첫 번째는, '화가 많은 내 아이'를 볼 때다. 자기 분을 못 이기고 성질을 부리는 아이. 특히 아이의 짜증에서 내 모습을 볼 때면 또 한 번 죄책감의 파도가 마음을 쓸고 지나간다. 가끔은 아이의 10년 후 모습까지 내 멋대로 상상한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자주 욱 하며 자기 화를 못 이기는 남자애가 한 명 있었다. 따돌림을 당하진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이 좀 무서워했던 그 친구. 시간을 거슬러 지난 시절 특정한 인물까지 떠오르면서, 내 아이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한다.
내가 신경질을 내며 쓴 말투를 아이가 똑같이 따라 할 때, 동생이 자기 말을 안 들었다고 무섭게 혼내는 시늉을 하거나 회초리 가져온다고 협박을 할 때. 나는 그럴 때마다 다짐한다. 이제라도 그러지 말자, 내일부터 그러지 말자,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그냥 넘어가자, 소리 지른다고 듣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소리를 지르나 하는데도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다. 강렬한 깨달음이긴 한데 오래가지 못해서 자괴감이 든다.
울고 싸우고 때리고 또 울고. 세 명 모두가 각기 다른 요구를 한다. 나는 밥 한 술 못 떴는데, 나는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고해주던 거 마저 해주려 애쓰고 있는데. '엄마엄마 이거 줘 저거 줘, 엄마는 내 말만 안 들어, 지금 당장 해줘, 못 기다리겠어 징징징징' 저러다가 이제 누구 하나가 물을 쏟아, 밥그릇을 엎어, 졸린다고 울어, 가만히 있는 동생 건드려서 걔가 울어, 그러면 어김없이 '대폭발'의 시간이 오고야 만다.
오은영 선생님은 육아에 있어서 최상에 두어야 할 대원칙이 '욱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스무 번 잘해줘도 마지막에 한 번 화내면 소용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정녕 소용없는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건가!!!
화에 화로 답하지 않으면, 아이는 더 이상 화를 키우지 않는다.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p.104)
화에 화로 답하는 것: 내 주특기...
두 번째는, 밖에서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그냥 꾸짖는 정도를 보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어떤 엄마를 볼 때다.
이때의 느낌은 단순히 아이 친구 집에 가서 그 아이 엄마가 화내는 걸 볼 때랑은 좀 다르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애가 혼날 짓을 했나 보네, 엄마 말을 무지 안 들었나 보네, 엄마가 지쳤나 보네. 이성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다른 소리가 들린다.
'어? 나도 저러나?' '남들 눈에 내가 저렇게 보이는구나.' '나 그때 되게 별로였겠구나.'
무의식은 이렇게 무섭다.
밖에서 화 낼 일이야 아무래도 집 안 보다는 훨씬 없지만, 어쩌다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에서 아이한테 차갑고 무섭게 대했을 땐 나중에서야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의 자존감을 생각해서라도 사람 많은 곳에서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리고 나를 흉하게 봤을 누군가도 신경이 쓰인다. 어디 길바닥뿐일까. 여름이라고 집 안 창문을 다 열어놓는 요즘, 헬타임이라 불리는 시간에는 조현아 영상 뺨치는 내 포효소리가 동네방네 다 퍼져나갔을 거라는 거...
밤 9시, 10시만 넘으면 욕실 저 너머에서 애한테 거의 울먹이며 소리 지르던, 전에 살던 아파트의 얼굴 모르는 이웃이 생각난다. 그래도 그녀는 왠지 좀 불쌍했는데... 지금 우리 옆집 사람들은 아무래도 본인들 옆집에 미친 사람이 살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친정엄마랑 같이 사는 내 친구가 말했다. 어느 날 자기 엄마가 퇴근하자마자 자기한테 이런 말을 했다고.
"너 소리소리 지르는 거 복도까지 다 들려... 빨리 중문 달아라."
아, 끼리끼리는 과학인가.
아이가 말을 듣는 것이 정상이냐, 애니까 말을 안 듣는 거다,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하는 애가 세상천지 어디 있냐고 모든 것을 평안하고 당연하게 여기며 육아하는 사람들이 부러워 죽겠는 요즘이다. 집 밖에 나가면 너도 나도 화가 많은 이 시대, 사회에 도움.. 까진 안 되더라도 남에게 폐는 안 끼치고 사는 사람 한 명을 내가 키워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