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라면은 특식이었다

그 시절, 라면은 작은 기적이었다

by 권창현

라면은 흔한 음식이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라면은 ‘특식’이었다.

한국에서는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90년대와 2000년대 초,

해외 선교지였던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던 내게

라면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오는 보물 상자 속 선물이었다.


보물처럼 쌓아두던 소포 속 라면


가끔, 아주 가끔 한국에서 특별한 소포가 도착했다.

친척이나 교회에서 보내주신 케어패키지였다.

우리 집에는 그걸 보관하는 전용 농(籠)이 있었다.

라면, 초코파이, 과자, 건어물…

그 농 안은 우리 가족의 비밀 창고, 보물함이자 마음의 안식처였다.


라면을 꺼내는 날은 아무 날이 아니었다.

기념일이든, 명절이든, 그냥 ‘오늘은 특별한 날’이든

그날만큼은 밥보다 라면이 메인이었다.


지금은 없는 그 초록색 면의 기억


종류도 다양했다. 신라면, 너구리, 삼양라면…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이젠 단종 돼버린 초록색 수타면이다.

매생이 라면처럼 독특한 색과 식감.

지금 보면 낯설 수도 있지만

그때 그 맛은 잊을 수 없다.


의외로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그 사실이

그 시절을 더 그리워하게 만든다.


물을 조금, 스프는 먼저, 라면은 풀릴 때까지


라면 끓이던 방식은 지금도 같다.

물을 조금만 넣고, 스프를 먼저 넣는다.

끓기 시작하면 면을 넣고,

면이 풀릴 때쯤 꺼냈다 넣었다 하며

적당히 익히고, 푹 익기 전에 불을 껐다.


그때는 가스레인지 위 냄비 하나로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가 가능했다.

가족과 함께 나눠먹던 라면도,

혼자 조용히 끓여 먹던 라면도

모두 다 기억 속의 따뜻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라면이 너무 귀해서 부러웠던 마음


어린 나에게 라면은 정말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떤 사람들이 “어릴 때 힘들어서 라면만 먹고 자랐다”라고 말할 때,

나는 오히려 부러웠다.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라면이 있었구나…’

‘라면이 많으면 나는 잘 살아도 라면만 먹고살았을 텐데’

그만큼 내게 라면은 맛있고, 귀하고, 특별한 음식이었다.


지금은 너무 많아져버린, 그래서 덜 특별해진


지금은 라면이 넘쳐난다.

종류도 너무 많다.

한때는 이름만 들어도 설렜던 ‘라면’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그냥 뭐 먹지?” 사이에 끼어버렸다.


좋아하는 음식인 건 여전하지만

그 특별함은 점점 옅어져 간다.

지금은 선택권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선택의 감동이 사라진 시대가 된 것 같다.


마무리


라면은 이제 더 이상 ‘특식’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어린 시절은

여전히 라면 한 봉지에 설레고,

라면 한 그릇으로 위로받던

그 시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부족함 덕분에

나는 더 풍성한 기억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