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싱그러운 연둣빛 나뭇잎들은 점점 짙은 초록색의 커다란 잎들로 무성해져 갔다. 미세스 블루가 매일마다 지나다니는 숲 속 길의 나무들은 저마다 누가 더 키가 큰지, 누가 더 시원한 그늘을 만들 수 있는지 뽐내느라 아우성 거렸다.
날씨가 점점 무더워지는 어느 여름 아침, 미세스 블루는 창문을 모두 열고 여느 때와 똑같이 출근하기 전에 빵을 굽고 있었다. 다행히 아침이어서인지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얼굴과 몸에 와닿았다. 미세스 블루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는 여름을 유난히 힘겨워했다. 이토록 유쾌하지 않은 여름날이면 맥스는 미세스 블루에게 시원한 선풍기가 되어주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는 털로 힘들 텐데도 맥스는 아랑곳 않고 꼬리를 있는 힘껏 흔들었다. 맥스는 미세스 블루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몹시도 싫어하고 조금이라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세스 블루와 맥스는 그늘이 우거진 여름 숲을 지나 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거리를 힘겹게 달려 가게에 도착했다. 주르륵 흐르는 땀에도 그녀는 곧장 화분에 물부터 주려 바쁘게 움직였다. 화분들이 밤새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물을 재빠르게 먹었다.
뜨거운 태양에 모든 것들을 녹아내릴 듯 무덥고 습한 여름에도 가게의 문은 꼭 닫혀 있었다. “ Mrs. Blue” 가게에는 작은 창문조차 하나 없었다. 미세스 블루는 커다란 코발트블루색의 문도 절대 열어 놓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야만 가게에 들르는 손님들이 마음 놓고 찾는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가게에서 그녀와 나누는 이야기들은 이 작은 공간 안에서만 존재하다가 사라졌다. 그 어떤 작은 틈으로도 결코 흘러나가질 않았다. 온전히 미세스 블루 혼자만이 알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가게 안에서 정리를 마친 미세스 블루는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히려 잠시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문 밖에서부터 ‘또각또각’ 구둣소리를 내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였다. 머리카락은 빗질을 오래도록 했는지 사자의 갈기머리처럼 한가닥의 머리카락도 이마로 내려오지 않은 채 모두 간결하게 솟아 있었다. 얼굴은 진한 색조 화장을 해 가면을 뒤집어쓴 듯 보였고 옷은 눈이 부실만큼 진한 형광빛의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귀에는 얼굴만 한 크기의 커다란 보석이 박힌 귀걸이를 걸고 있었고 목에는 알사탕만 한 알록달록한 목걸이도 걸고 있었다. 높은 하이힐에 보석장식의 구두는 발걸음을 뗄 때마다 번쩍번쩍 빛이 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한 것 멋을 부린 중년의 여자 손님은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인사도 없이 따지듯이 반말로 물었다.
“ 여기, 손거울 있나? ”
내가 빨리 다시 거울을 봐야 하는데 말이야, 있으면 살 테니까 얼른 갖다 주겠어?”
미세스 블루는 반말의 무례한 말투에 짜증이 날만도 한데 웃으면서 대답했다.
“ 거울 있어요. 뒤쪽을 돌아보시면 중간에 빨간 상자가 보이시죠. 거기에 들어 있어요.”
사자머리 중년 여자는 눈을 내리깔며 다시 퉁명스러운 말투로 무시무시하고 날카롭게 생긴 기다란 손톱을 내밀며 대답했다.
“ 내 손톱이 망가질까 봐 도저히 꺼낼 수가 없으니까 좀 꺼내주겠어?”
미세스 블루는 여전히 변함없이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마치 얇은 유리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언제든지 깨질 듯 위태로워 보였지만 절대로 그녀는 얼굴에 작은 인상 한번 쓰질 않았다. 사자머리 여자가 내뱉는 말투 하나하나가 그녀의 귀에 가시처럼 꽂혔고 그것은 그녀의 가슴 속으로 내려가 조금씩 박혔다. 그녀는 무언가가 서서히 쌓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감정은 마치 돌멩이처럼 무겁게 그녀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점점 무거워지는 발끝을 느낀 미세스 블루는 티가 나지 않게 숨을 한번 고르고는 천천히 카운터에서 나와 상자를 꺼냈다. 꺼낸 상자를 사자머리 여자에게 건네주었고 사자머리 여자는 곧바로 뚜껑을 열어 손거울을 꺼내더니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에 대고는 한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돌리면서 거울 속으로 빠져드는 듯 보였다.
거울 속에 비친 진실의 모습을 그녀는 보지 못했다. 아마도 사자머리 여자는 평생을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몰랐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온갖 탐욕과 거만함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어 일그러져버린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사자머리 중년 여자 스스로만 몰랐다.
사자머리 중년 여자 손님은 이젠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상자를 내팽개치고는 거울만 손가방에 넣고 한쪽이 썩은 감자 반쪽을 꺼내더니 카운터에 ‘툭’ 던지고는 가게를 나갔다. 그녀가 걸어갈 때마다 귀를 찌르는 듯한 그녀의 구둣소리는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고 “ Mrs. Blue “ 가게 안까지 계속해서 들렸다.
사자머리 여자의 구둣발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나서야 미세스 블루는 그제서야 제대로 쉬지 못한 숨을 가늘게 천천히 내쉴 수 있었다. 손님이 들어와 내뱉던 말투 때부터 그녀의 몸은 발끝에서부터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했고 사자머리 여자가 거울을 응시하고나서 나가기 직전이 될 때쯤에는 몸이 거의 움직이도 못할정도로 얼굴까지 마비되어 있었다. 숨을 거의 쉬지못해 변해버린 푸르스름했던 얼굴색은 다행히 서서히 혈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다 맥스는 미세스 블루가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자 기다릴 틈도 없이 곧바로 번쩍 뛰어 그녀의 무릎 위에 올라왔다. 맥스는 얼굴을 맞대고 비비며 그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내 미세스 블루는 마음의 평온함을 되찾았고 맥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둘은 꼭 끌어안았다. 고요해진 상점 안, 바람 한 점 없이 정적만이 감도는 무더운 여름, 그 순간이 오히려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다.
그녀의 온몸은 아직 점심 때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땀에 흠뻑 젖어 버렸다.
일러스트
Eunjoo D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