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은 온 마을을 더욱 선명하고 돋보이게 해 주었다. 미세스 블루는 점점 깊어가는 가을 풍경들을 보며 아름다운 자연의 색채에 감탄을 하기도 했고 떨어지는 낙엽들을 바라보며 쓸쓸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마을의 거리는 낙엽들로 점점 쌓여갔고 사람들이 걸을 때마다 들리는 서걱서걱 낙엽 밟는 소리들은 리듬을 타고 온 동네방네로 퍼졌다. 집집마다 강아지들은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더미들만 보면 신나게 달려가 뒹굴기도 했다.
바람 한점 없던 어느 가을날 “ Mrs. Blue” 가게에 젊은 아기 엄마가 들어왔다. 예전에도 한번 왔던 손님이었다.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들렸던 30대의 아기 엄마인데 이름은 케이트다. 케이트는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는 힘겹게 문을 열고 있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미세스 블루는 반가워하며 얼른 다가가 힘에 부쳐하는 그녀를 도와주었다. 아기는 유모차에 탄 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우는 아기를 미세스 블루는 전혀 시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기의 얼굴만 흐뭇하게 바라보며 케이트에게 말을 걸었다.
“ 어서 와요, 케이트 씨, 정말 반가워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아기가 어느새 많이 자랐네요. 더 예뻐졌어요!”
“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미세스 블루 씨. “
케이트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모든 몸에 힘이 빠진 듯 말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기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아기와 직장을 병행했지만 감당이 안 돼서 결국 일을 그만두었어요. 요 며칠은 울음도 멈추지 않아 정말 지쳐서 미세스 블루 씨를 찾아왔어요. “
“아, 그랬군요, 케이트 씨.
처음 아기를 키우면 다들 힘들어해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모두 같은 경험을 겪으니까요.”
미세스 블루는 차분하게 케이트를 위해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고는 상자를 가리키며 얘기를 했다.
”저기 보이는 아주 작은 하늘색 상자를 사면 어떨까 해요.
아마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케이트는 미세스 블루의 말을 듣고는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곧 집에서 가져온 콩이 담긴 봉투를 주고는 작은 상자를 사서 가게를 나갔다.
하늘색의 작은 상자 안에는 티켓이 들어 있었다. 그 티켓은 구름 극장에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이었다. 미세스 블루가 일러준 대로 티켓을 갖고 길을 나섰다. 마을 끝 숲에 다다르면 티켓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구름 극장의 문이 보일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극장 안에는 커다란 무대 한쪽에 하늘 위로 높게 서있는 기다린 사다리가 보였다. 아기는 걱정 말고 사다리 위로 올라가라는 표시를 보고 그녀는 유모차에 태운 아기는 놔둔 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위 꼭대기에 다다르자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거대한 구름 이불이 케이트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구름 위에 몸을 맡겼다. 순간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평온함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모두 감싸 주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쌓여 있던 피로가 부드러운 구름 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듯했다. 아기를 돌보느라 쌓였던 수많은 걱정과 불안, 자책이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그녀를 따스하게 감싸는 이 순간, 눈가에 맺힌 작은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뺨을 타고 내려왔다. 그 눈물은 고통이 아닌 안도의 눈물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하늘을 믿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모든 것들이 따스히 녹아들던 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케이트가 잠에 푹 빠져 있는 동안 구름 밑에서는 아기를 위한 재미있는 마리오네트 인형극이 펼쳐졌다. 울음이 그치지 않던 아기는 인형극을 보자마자 뚝 그쳤고 한눈도 팔지 않고 인형극이 끝날 때까지 깔깔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기의 맑고 환한 웃음소리가 구름 극장의 구름 사이를 타고 잠자고 있던 케이트에게도 닿았다. 케이트는 그 소리에 반응하듯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기의 웃음소리는 마치 케이트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엄마, 괜찮아요. 나도 행복해요.’
아기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며 마치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걷는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케이트는 잠에서 깨어난 뒤 아기가 여전히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웃음은 그녀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가슴에 따스한 빛을 비추었다. ‘이제는 괜찮아. 우리 둘 다 함께할 거야.’ 케이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속삭였다. 두 사람이 함께한 이 작은 순간은 앞으로 수많은 힘겨운 날들 속에서도 그녀가 기억하고 꺼내 볼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일러스트
Eunjoo D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