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추운 겨울이 다가올 듯 기온은 점점 내려가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덧입었고 때로는 머플러도 두르며 거리를 다녔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동네의 집들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미세스 블루는 그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추운 날씨로 몸이 움츠려 들어도 마음만은 따뜻해졌다.
늦가을의 쌀쌀한 아침에도 미세스 블루와 맥스는 어김없이 늘 자전거를 타고 가게로 향했다. 아침부터 차갑고 강한 바람이 불던 날, 그녀와 맥스는 자전거를 타는 내내 맞바람을 맞아야 했다. 가게에 도착해 보니 미세스 블루의 얼굴과 손은 꽁꽁 얼어 벌겋게 변해있었다. 센 바람을 맞은 맥스도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가게 안으로 들어와 눈을 두 번 깜빡여 어둠을 밝힌 뒤 맥스에게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었다.
몸을 녹이고 가게 안의 정리를 한참 끝낸 미세스 블루와 맥스는 조금 지쳐있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세게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렸다. 지쳐있던 미세스 블루와 맥스는 깜짝 놀랐다. 문을 차고 들어온 사람은 “ Mrs. Blue” 가게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있는 잡화점 주인이었다. 그는 온갖 험상궂은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주 큰 소리를 치면서 손가락으로 삿대질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 당신 말이야!
도대체 여기서 뭘 팔길래 손님이 여기만 들어오냐고?
당신 때문에 내 가게에 손님이 하나도 오질 않잖아!”
미세스 블루는 당황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 또 이 알록달록한 상자들은 뭐냐고? 당신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거야, 뭐야? ”
그는 연신 “ Mrs. Blue” 가게의 지붕이 뚫어질 듯 큰소리를 쳤고 급기야 진열대에 놓여있던 상자들을 마구 쳐내며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서 온갖 욕을 퍼부으며 가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맥스는 잡화점 주인의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작은 다리는 가게 안을 재빨리 움직였다. 잡화점 주인이 소리치며 상자를 바닥에 쳐내버리자 맥스는 바닥에 떨어진 상자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재빨리 그 남자의 바지를 세게 물었다. 잡화점 주인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맥스는 물고 늘어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 못돼 먹은 개!’
잡화점 주인이 발로 맥스를 걷어 차려했지만 맥스는 재빠르게 피했다. 그런 다음 맥스는 선반에 걸려있던 오래된 나무 의자를 입으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잡회점 주인이 뒤돌아볼 틈도 없이 맥스는 의자를 잡화점 주인의 발목으로 밀어 넘어뜨렸다. 그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그 순간 맥스는 잡화점 주인의 얼굴에 달려가 힘껏 짖어댔다. 당황한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벌벌 떨며 그제야 황급히 일어나 되돌아갔다.
미세스 블루는 자신을 지켜주려 애쓰는 맥스의 행동에 고맙기도 했지만 이 또한 맥스에게 해가 가지나 않을까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잡화점 주인이 가게 안에 들어오자마자 온갖 소란을 피우며 공포로 만들어놓을 때부터 그녀의 몸은 이미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발끝에서부터 무언가 무겁게 느껴졌고 발이 마치 땅에 뿌리를 내린 듯한 무게처럼 그녀의 몸은 꼼짝없이 움직이지 못하게 짓눌러졌다. 그녀는 발을 들어올리려 했지만 마치 땅 속 깊숙이 묻힌 돌처럼 한 걸음도 내딛기가 어려웠다. 무거운 감정이 천천히 허벅지로, 그리고 허리로 퍼져나갔다. 그녀의 몸은 점점 더 땅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팔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돌로 변해버린 듯, 그녀의 손가락마저도 굳어 있었다. 몸 전체가 마비된 것처럼 굳어지며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조차 바람에 흩날리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몸은 차갑고 무겁게 굳어갔다. 온 세상이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그녀를 돌처럼 무겁게 짓눌렀다.
푸르스름했던 그녀의 얼굴색은 핏기 하나없이 점점 회색으로 변했다. 무거운 돌덩이가 된 그녀는 완벽하게 굳어 버렸다. 그녀의 모든 몸이 굳어지자 가게 안의 불빛도 사라져갔다.
이 모든 것들을 가만히 가슴 아프게 바라보던 맥스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도와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세스 블루는 한번 몸이 굳어버리면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온종일 서서 숨을 멈춘 채 굳어있던 그 날도 그녀는 해가 지고 칠흙같은 밤이 되어서야 몸이 풀렸다. 하루종일 미세스 블루만 걱정했던 맥스도 지독히도 힘든 날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둘은 캄캄한 밤, 잘 보이질 않는 길을 또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세스 블루는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완전히 녹초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맥스는 서둘러 한기가 가득한 집 안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난로 안에 들어있던 나무 장작 앞에서 눈을 크게 떠 불을 붙였고 꼬리로 부지런히 부채질을 해 재빠르게 훨훨 타도록 했다. 미세스 블루의 몸은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온몸의 모든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그녀는 곧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맥스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곧바로 난로 앞에서 잠이 들었다.
일러스트
Eunjoo D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