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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Doh Oct 20. 2024

그림 에세이 [ 9월 말, 봄날의 시작]


  9월 말, 겨울의 차가운 바람은 거의 잦아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봄이 오는지 얼굴에는 따스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기나긴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서서히 사라질 때쯤이면 몸속 깊이 움츠렸던 생명들이 마침내 조용히 숨을 내쉬듯 꿈틀거린다. 공기가 달라지고, 햇살이 달라지고, 동네의 색들이 달라진다. 안쓰러운 듯한 모습으로 서있는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도 따뜻해지는 날씨 탓인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푸근해진다.  


땅속에서는 여름과 가을 그리고 추운 겨울을 보낸 구근 식물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로 한창이다. 겨울 끝자락만 되어도 성격 급한 수선화는 어느새 빼꼼히 초록 줄기들을 내밀고는 잠깐이라도 기온이 올라가는 날을 기다려 금방 꽃을 피워낸다. 작고 연한 생명체의 성급한 움직임은 언제쯤 봄이 오려나 기다리던  지친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통이 되어준다.


 해마다 조금 더 풍성한 구근 식물들을 보기 위해서는 가을에 부지런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을에는 몇 달 동안 땅 속에서 여러 갈래로 만들어진 구근들이 휴면상태에 들어가는 시기이다. 이때 구근들을 땅에서 캐내어 분리한 후 다시 심어야만 그다음 해에 근사한 꽃밭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근을 캐낼 때에는 뿌리가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히 다뤄야 한다.  머릿속으로 정원의 모습을 그려가며 표면에서 5cm 정도 깊이의 땅속에 다시 심는다. 그리고는 봄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수선화가 흐드러지게 만개해 피어있는 꽃밭을 거닐 때면 사람들의 표정들은 온화하고 평화롭다. 노란빛 물결 속을 거닐 때면 차가운 겨울 내내 가라앉던 무거운 감정이 따뜻한 햇살에 스며든다. 가볍고 향긋한 수선화의 향기 속에서  평온이 찾아온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봄의 서곡이 울려 퍼지는  것 처럼. 예쁘게 주름 잡힌 입을 쭉 내밀며 향긋한 노래를 부르는 수선화들의 합창에 마음의 꽃이 활짝 피어난다.


가슴속 깊이 새겨지듯, 봄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긴 겨울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노란빛의 향연 속에서 마음은 다시 살아난다.



일러스트

Eunjoo D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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