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인 거제도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대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는 종종 해 왔지만 규모가 큰 회사의 신입사원이 된다는 생각에 입사 전 꽤 오랫동안 행복한 꿈을 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어쩌면 평생 삶의 터전이 될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당시 대형 조선소는 돈을 잘 버는 회사로 유명했다. 그래서였는지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꽤 오랜 기간 호텔에서 교육을 해주었다. 아마 살아오며 가장 오랜 기간 호텔에서 숙박을 했었던 것 같다. 교육이 모두 끝나고 회사에서는 신입사원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해 주었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신입사원 입장에서는 큰 복지였다.가지고 온 짐들을 모두 정리하고 기숙사 창 밖으로 바라본 거제도의 풍경은 치열했던 취업준비 기간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기다리던 첫 출근 날이 되었다. 아직도 첫 출근일은 기억에 생생하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기숙사에서 회사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직원들로 꽉 차있는 버스에 올라타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버스는 거대한 배와 해양플렌트가 제조되고 있는 현장으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려 미리 사놓은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내가 근무할 사무실은 선박들이 생산되고 있는 생산현장의 중심부에 있었다. 처음 내 눈으로 본 현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선박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대학 시절부터 설계업무를 희망했지만 현장업무도 꽤 매력적이라고 느꼈었다. 교수님께서 수업 중 자주 말씀하시던 '답은 항상 현장에 있다'라는 문구는 신입사원의 패기를 이끌어 내는데 충분했다. 현장에서 분주하게 일을 처리해 나가다 보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멋진 선박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주일의 안전 교육을 마치고 선박을 만드는 현장으로 배치되었다. 처음으로 맡은 업무는 선박이 만들어지는 공정의 일정관리와 현장 작업자 분들의 관리 책임자 역할이었다.
특히, 인력배분과 관리자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되어 책임감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나보다 경력이 몇 십배는 많으신 분들을 관리하는 업무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어릴 때부터 체력만큼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서, 생산현장 업무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자만심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의 매일 회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주말에도 불려 나가 회식에 참석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생산현장 업무 특성상 상호 친분과 친밀함이 업무를 해나가는데 주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회식만큼 윤활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당시 대기업들 중에서도 높은 축에 속하는 연봉과 복지를 경험하며 경력도 잘 쌓아 가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뿌듯하고 성실하게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가슴 한편에 간직해 놓았던 꿈이라는 단어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정말 이 일이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었는지, 아니면 현실을 쫓아 하루하루를 살아 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렵게 몇 년의 스펙을 쌓고 오랜 기간 면접준비를 해서 들어온 첫 회사의 신입사원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민만 하다가, 다시 무엇이든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고민 끝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회사를 마치고 회식에 참석을 하지 않고 도서관에 가서 이직준비와 의학대학원 준비를 함께 병행했다. 이직준비는 아직 취업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공인영어 점수가 만료되지 않아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의학대학원 시험 준비였다. 하지만 도전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노력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