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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무비 Nov 23. 2021

‘지옥’ 유아인의 강렬함과 박정민의 오롯함

[리뷰] ‘지옥’ 유아인의 강렬함과 박정민의 오롯함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이 공개됐다. 배우 유아인과 박정민이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동명의 인기 웹툰이 원작이다. 드라마는 공개 하루 만에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에 올랐다.

드라마 '지옥' 스틸.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연출 연상호)의 전 화가 공개됐다. 1~3화를 감상한 후 이미 리뷰를 작성한 바 있지만, 전체 작품을 감상한 만큼 약간의 평가를 더해보고자 한다.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고, 혼란을 틈타 부흥한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결론부터 짓자면, ‘지옥’은 다채로운 미장센이나 화려한 비주얼 연출로 눈길을 끌기보단, 사회를 향한 연상호 감독만의 날카로운 통찰과 메시지로 보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박정민이 연기한 배영재 PD는 4화, 새진리회 사제들과의 대사를 통해 연상호 감독의 날카로운 질문을 대변했다.

“사람들 겁 주고, 벌 줘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시겠다? 그런 곳이 하나 더 있죠. 지옥이라고.”

드라마 속 대중은 공포의 초자연적 현상과 새진리회의 폭력적 정의 구현을 통해 정신과 육체 모두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한다. 신의 의도를 해석한다는 사제들에게 언론과 경찰은 허리를 굽히고, 새진리회의 강경파 신도 화살촉에게 ‘죄인’의 가족 전부가 뭇매를 맞는다.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법과 양심이 아닌 화살촉과 새진리회, 무차별적인 지옥행 선고를 두려워한다.

드라마 '지옥' 스틸. 사진 넷플릭스


결국 배영재 PD의 말은 새진리회가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란 현실로 지옥을 불러온 것에 지나지 않다는 의미다. 극 중 정진수 의장(유아인)의 대사 “너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라는 말처럼,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얼핏 드라마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법이 국민 정서에 따라가지 못한다며, 처벌이 가볍고 허술하다며, 불신하는 사람들.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 범죄자를 특정하고 그네들의 신상을 공개하는데 거리낌 없는 인터넷 문화. 개인을 몰아붙이는 것을 넘어 그 가족까지 뭇매를 놓는 파괴적 행태와 피해자들의 인생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손쉽게 잊어버리는 나태함까지. 현실은 드라마와 같이 물리적 폭력이 동반되지 않았을 뿐, 이미 ‘마녀사냥’의 광기에 조금씩 물들고 있다.

‘지옥’은 그렇게 우리 사회가 자성과 성찰이 필요로 함을 깨닫게 한다. 지옥의 사자가 등장해 죄인을 심판한다는 소재는 통쾌할 수 있지만, 인간의 지성과 자유, 신뢰와 행복은 그늘 밑으로 숨어들어간다. 세상은 끊임없는 광기와 혼란에 휩싸이고 법과 질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자유로운 의사 타진이 가능한 온라인 공간에서 의견 교류를 금지하는 것은 당연히 어불성설이지만, 그래서 더욱 선동에 휩쓸리기 쉬움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 ‘지옥’은 그렇게 무비판적으로 타인을 향해 정의의 잣대를 강제하는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인간과 정의, 광기와 신념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물음으로 강한 흡입력을 선사한다. 허나   ‘지옥’의 메시지는 다소 진부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 자유의지의 상실과 정의와 선에 대한 질문은 ‘멋진 신세계’, ‘1984’, ‘브이 포 벤데타’ 등 지난 디스토피아 창작물에서 엿볼 수 있는 담론인 이유다. 대중을 규제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주체가 국가에서 종교로 모습을 바꿨을 뿐, 이야기의 기본 골자가 아주 신선하진 않다.

드라마 '지옥' 스틸. 사진 넷플릭스


다소 낡은 방식의 만화적 연출도 아쉽다. 광기에 물드는 사회 속 혼란스러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을 수 있겠지만, 지나치게 축약하거나 전개를 위해 캐릭터를 도구적으로 활용한 지점이 분명하다. 더불어 지옥의 사자와 천사를 표현한 CG는 얼핏 특촬물을 보는 듯 한 인상을 남긴다. 보다 거칠고 생생한 질감을 바랐지만, 화면을 통해 만날 수 있던 공포의 존재들은 키치한 장난감이 뛰노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은 보는 이를 사로잡는 명확한 힘이 있다. 이는 연상호 감독의 예리한 질문을 뒷받침한 유아인과 박정민의 탁월한 연기 덕이 크다. 유아인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하며 자신이 정의라 굳게 믿는 광인에 완전히 몰입했으며, 박정민은 작품의 함의를 담은 인물로 오롯이 화(化)하여 작품의 무게중심을 굳건히 했다. 두 배우의 내공으로 빚어낸 진중함이 아니었다면 ‘지옥’은 어설픈 특촬물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산행’으로 한 차례 관객들에게 충격을 선사한 이후 ‘염력’과 ‘반도’를 내놓으며 잠시간 관객과 멀어졌던 연상호 감독. 그는 ‘지옥’을 통해 다시금 자신의 재능을 입증하고, 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특유의 시니컬함과 사회를 향한 비판적 시선을 바탕으로, 보는 이에게 다양한 고민을 이끌어내게 한 연상호 감독. 향후 그가 선보일 ‘지옥’ 시즌 2와 그 외 이야기가 또 어떤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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