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좋아요의 방문
브런치의 좋아요, 그 의미
해안 강민주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던 날,
나는 화면을 끄지 못한 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시크한 고등학생 아들이
‘브런치 작가’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 좀 대단한데?”
그 말은 내 입꼬리를 올렸다.
초기의 좋아요는
대개 나를 이미 아는 이들에게서 왔다.
내가 어디쯤에서 글을 쓰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러다 어느 날
처음 보는 이름이
내 글 아래 작은 하트를 남겼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와 같은 결인가 보다.’
결이 같다는 말은
나를 오해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뜻 같았고,
조금은 안전하다는 뜻 같았다.
나는 그를 팔로우했고
그의 글을 읽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와 전혀 닿지 않을 것 같은 이들까지
좋아요를 남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남긴 댓글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글도 읽어볼게요.”
라는 답글이 달렸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좋아요가 꼭 읽음의 증거는 아니라는 사실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가슴이 아주 잠깐 식었다.
배신감이라 부르기엔 작고,
실망이라 하기엔 민망한 감정.
그러나 분명히 어딘가가 어긋난 느낌.
하지만 오래 붙들 수는 없었다.
나는 얼마나 진심으로
타인의 문장을 읽고 있었는가.
버거운 하루 속에서
하트 하나도 겨우 내어준 적은 없었는가.
좋아요는
인사일 때도 있고,
습관일 때도 있고,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는 손가락의 흔적일 때도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팔로우의 숫자가 조금 달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글을 읽지 않은 팔로우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보다
읽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해받고 싶었고,
오해받지 않고 싶었고,
같은 결이라는 말속에
잠시라도 함께 머물고 싶었다.
누군가는
내가 찾아가면 다시 찾아오고,
누군가는 나의 좋아요 하나에
시간차 없는 여러 개의 좋아요로 답한다.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이도 있다.
그 풍경은
이 공간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끝까지 읽지 못한 채
좋아요만 남기고 지나간다.
그럼에도
늘 댓글을 남겨주는 이들이 있다.
나는 이제 내가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기 몫의 정성을 다해
세상을 사는 성실한 사람들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좋아요의 숫자가 아니라
좋아요의 온도를 느끼고 싶은
외로운 밤.
그럼에도
소통의 가능성은
기다릴 때보다
먼저 두드릴 때 더 높아진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문장 앞에서 잠시 멈춘다.
그리고 조심스레
하트 하나를 남긴다.
그것이
진심 어린 인사인지
나를 인정해 달라는 욕망의 그림자인지,
끝내 분간하지 못한 채.
*밀리의 서재, 에세이 공모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시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millie.co.kr/v3/millieRoad/episode/view/31449/104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