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풍화과정 속에서
자, 이제 뭘 해야 되지?
운전석에 앉은 내게 남편이 물었다. 방금 그와 자리를 맞바꾸었다. 한적한 국도엔 차들이 띄엄띄엄 스쳐갔다. 백미러 각도를 조절한 나는 기어 위치를 드라이브에 놓고 천천히 악셀을 밟았다. 차가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하필이면 그때 신호가 바뀌었는지, 차량 통행이 늘어나면서 흐름이 빨라졌다. 두피에서 열감이 후끈거렸다.
사실 면허를 딴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운전일수는 1년이 될까 말까였다. 퐁당퐁당 몇 개월 운전하다 몇 년을 쉬는 식이었다. 가장 최근이 5년 전이었나. 운전세포가 소멸 직전이었다.
그렇다고 손 놓을 순 없었다. 특히 가족 여행이나 장거리 이동할 때 운전대와 한 몸이 된 남편 보기가 안쓰럽고 미안했다. 어떻게든 부담을 덜어줘야지. 또한 집순이를 자처하면서 행동반경이 좁아진 상황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휴일 아침마다 운전연습을 시작한 지 한 달 째. 그날의 목적지는 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숲 속 산책로였다. 인적이 드문 시골 마을에 진입하자 길이 S자로 구부러졌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 펴고, 어깨... 어깨 뭉친다
숙달된 조교의 음성이 나를 이끌었다. 내비게이션도 수시로 말을 걸어왔지만 화면을 쳐다볼 새가 없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던 남편은 기기를 끄고 바깥 풍경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이 동네는 감이 아직 그대로 달려있네? 저 많은 걸 다 누가 따냐. 어릴 때 형이랑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그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나가는 사이 조금씩 긴장이 풀려갔다. 도로변에서 어르신들이 고추며 시래기 등의 작물을 널어말리는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냥 놀리기 아까운 가을볕이 부서지고 있었다. 미간을 좁히며 햇빛 가리개를 내렸다. 맞은편에서 파란 트럭이 불쑥 고개를 디밀었다. 순간적으로 풀썩 브레이크를 밟았다.
놀랐어? 괜찮아, 앞에서 뭐가 오든 당신은 당신 길로만 가면 돼.
뒤차가 바짝 따라붙기도 했다. 급한 용무가 있는데 내가 앞을 가로막은 건가. 하지만 쉽사리 속도를 높이거나 차선을 바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계기판 숫자는 여전히 60에서 요지부동인데 심장 박동만 빨라졌다.
에헤- 답답하면 추월하겠지,
당신은 당신 속도대로 가면 돼요, 천천히.
전방 주시에 정신이 팔려 고개를 돌리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이정표가 되었다. 30여 분을 달려 목적지에 닿았다. 시동을 끈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직각으로 서 있던 어깨가 그제야 내려갔다. 눈가의 기미가 더 짙어진 것 같기도 했다. 내리쬐는 햇살을 여과 없이 받고 달려온 탓이겠지. 그래, 세상엔 공짜가 없으니까.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나무 데크가 조성돼 있었다. 숲에는 여름과 가을이 같이 머물렀다. 여전히 싱그럽게 푸른 나무들 사이로 울긋불긋한 잎들이 어우러졌다. 알싸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로에 올랐다.
계곡은 온통 바위들 차지였다. 수많은 바위들이 적당히 물러나고 다가서면서 조화를 이룬 솜씨가 절묘했다. 빼곡하게 모여앉아 떠들다가 우리가 쳐다보면 입을 다물었다. 다 어디서 왔는지, 혹시 좌석표를 받았는지 묻고 싶었다.
돌틈 사이로 구불구불한 물길이 바위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어쩌면 모난 구석을 감싸고 달래주는 건 아닐까. 말없이 둥글어진 바위 주변으로 들풀이 자라났다.
자연과 세월의 합작품 앞에서 나는 연신 카메라를 들이댔다. 아무리 각도를 바꿔도 눈에 보이는 장관을 전부 담지 못했다. 전해들은 바로는 암석이 1cm 정도 깎이려면 약 2백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풍화작용. 물과 바람과 햇살이 돌덩이를 다듬고 녹이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 무심한 손길에서 무질서한 질서가 탄생한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걸음을 멈추고 우리도 사진을 찍었다. 푸석한 얼굴에 흰 머리칼, 잔주름이 선명한 중년의 부부가 서 있었다. 자연을 담을 때는 한참 부족하던 카메라 성능이 별안간 정밀해졌다. 세월의 풍화작용이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님을 증명하는 사진이었다.
우리 둘 다 늙었다, 이제는
무슨 소리야, 당신은 아직도 예뻐. 사랑스럽고 우아해.
빈 말인지 알면서도 웃음이 났다. 그에게 나는 평생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말의 온기를 간직하며 숲을 걸었다.
그러나 정겨웠던 공기가 급속 냉각되기까지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 줄이야.
며칠 전 홈쇼핑 방송에서 남성용 운동복 바지를 주문했었다. 복슬복슬한 양모가 속에 골고루 들어간 제품이었다. 쇼호스트가 확신에 찬 어조로 장담했다. 한겨울에도 이 바지만 입으면 시베리아 벌판을 뒹굴어도 추운 줄 모를 거라고.
시베리아 전용 바지는 이틀 뒤에 배달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를 개봉했다. 촉감도 보들보들한 바지를 얼른 그에게 입혀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근데 어째 남편의 표정이 좀 떨떠름했다. 에이, 실제 입어보면 느낌이 다르다니까. 어서 착용을 재촉했다.
한데 바지 길이가 그의 발목 복숭아 뼈 위에서 어중간하게 멈추었다. 나는 허리를 좀 내려 입으라고 했다. 요즘 누가 그렇게 배까지 끌어올려 입냐고. 안되면 수선을 맡겨볼까도 싶었다. 이렇게 따뜻한 바지를 이 가격에 구하기 정말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자 남편이 버럭 소리를 쳤다.
왜 당신 마음대로 입으라 마라 해, 나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있다고!
순간 집안이 시베리아 벌판으로 변했다. 나는 당장 반품을 신청하고 바지를 포장비닐에 다시 담았다. 굵은 매직으로 '반품'이라고 쓴 상자를 문 밖에 내놓았다. 마음 같아선 저 남자도 같이 반품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추위를 막아주고 싶었던 내 뜻을 몰라주다니. 남편은 남편대로 화가 나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얼어붙은 표정으로 각자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무심히 날이 밝았다. 반품이 접수됐다고 문자가 왔다. 그야말로 총알 같았다. 아침에 남편의 얼굴을 슬쩍 보니 잠을 설쳤는지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그는 섬세한 사람이라 벌컥 화를 내놓고 혼자 속을 끓였을 것이다.
배배 꼬였던 감정의 실타래가 스르르 풀어졌다. 솔직히 나도 입기 싫은 옷, 하기 싫은 일이 있는 것처럼 그도 마찬가지인 것을. 겨우 바지 하나 때문에 부부가 등을 돌린 것도 지나고 보니 어이없고 황당했다. 결국 부엌에서 눈이 마주친 우리는 동시에 피식 웃고 말았다. 평소처럼 함께 밥을 먹고 뜬금없는 얘기로 화제를 돌리면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겹겹이 쌓아온 세월이 어느 덧 스무 해가 넘어간다. 어떻게 마음이 금방 뒤집히냐고,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단지 우리는 삶의 풍화과정을 거치고 있을 뿐이다. 서로의 모난 구석을 감싸안으며.